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디지털산책] 가상화폐 미래까지 막아선 안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01/2018011902102251607001[1].jpg "[디지털산책] 가상화폐 미래까지 막아선 안된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폐쇄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용단(?)이 후끈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가상화폐 거래소에 연기금 정부부처 수백억 투자'라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은근히 그 뉘앙스는 마치 중소벤처기업부를 포함한 정부기관이 투기와 사기의 온상인 곳에 정부 자금을 투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처럼 들린다. 정부 자금을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거래소는 문자 그대로 매수자와 매도자가 호가를 주고 받고, 합의된 가격에 거래를 체결하는 곳이다. 거래소가 있음으로 해서 거래되는 상품의 유동성이 보장되고, 상품의 적정한 가격도 형성될 수 있다. 너무나 투기꾼이 많아서 투기꾼이 몰리는 거래소가 문제가 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여 거래소를 폐쇄한다는 것은 마치 우범 지역을 운행하는 택시에는 너무나 자주 범죄자가 타기 때문에 아예 그곳의 택시 운행 서비스를 없애겠다는 발상과 같다. 이로써 범죄는 예방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곳은 계속해서 우범 지대로 남을 것이다. 더욱이 그곳에 거주하는 선량한 주민들은 암흑세계의 규칙과 타협하거나 아예 교통수단을 단념해야 할지 모른다.
거래소 폐쇄를 언급하며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붙을 만큼 거래가 비정상적이고, 마치 투기, 도박과 같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과 같다"는 표현은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얼마일까? BOA 같은 투자은행은 비트코인이 전자상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예측하며 비트코인당 1300달러를 적정 가치라고 제시하기도 했지만, 아직 비트코인이 본격적으로 지불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적정 가치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가치를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과 가치가 없다는 말은 동일하지 않다.
우리가 신뢰하는 법정통화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원화의 가치는 얼마인가? 오늘 1000원으로 빵 1㎏을 살 수 있다면 원화 1원의 가치는 빵 1g이다. 이 가치는 확정적인가? 어떤 이유로 경제적 환경이 급변한다면 원화 1원의 가치는 빵 0.5g이 될 수도 있고 빵 2g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이 같은 변동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한국은행이 능동적으로 물가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정통화 자체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자산은 아니다. 우리가 오늘날 신뢰하는 화폐는 대부분 은행의 예금으로부터 파생된다. 즉 은행 시스템을 통해 최초 발행된 통화의 몇 배에 달하는 통화가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일시에 모든 사람들이 예금을 찾는다면 법정통화의 가치는 한 순간에 위태로울 수 있다. 즉, 통화시스템은 안전하다는 우리의 믿음이 통화의 가치를 보증한다.
가상화폐는 이 같은 믿음을 알고리즘으로 대체해 버렸다. 즉 채굴량을 정해놓고 채굴량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무수한 익명의 참여자들이 채굴에 나서도록, 즉 공공이 소유한 과거의 거래 기록에 새로운 거래 기록을 추가하도록, 기록 경쟁을 벌이도록 설계했다. 그 경쟁의 승자는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인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는 새로 발행한 비트코인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시세는 익명의 채굴자들이 자발적으로 비트코인 거래의 완결성을 입증하게끔 독려하는 유인 신호이다. 비트코인 시세가 비쌀수록 더 많은 채굴자들이 몰리고, 더 많은 채굴자들이 거래를 검증할수록 비트코인의 안정성이 강화되는 구조다. 즉 비트코인 거래소는 유동성과 가격발견 외에 비트코인 메커니즘의 강화라는 추가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물론 가상화폐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야기할 사회적 해악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래 과열을 완화시킬 수 있는 거래시스템의 개선, 투기적 과열에 대응할 수 있는 위험헤지 상품의 도입, 투자자에 대한 홍보와 교육 등이 선행돼야 하지, 가상화폐 거래자를 모두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듯한 접근은 곤란하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한 정부기관도 이제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하는가?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관료들이 월가를 찾아 통사정을 하듯, 오늘날에는 전세계의 가상화폐 발행자들이 한국을 찾아 자신들의 가상화폐상장(ICO)에 동참해 줄 것을 읍소하고 있다. 일찌감치 가상화폐 인프라 구축을 위한 선도적 투자에 나선 것을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실수라도 찾아낸 듯 싸잡아 비난하려는 태도는 더욱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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