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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성범죄 피해자 2차피해 막으려면

이민희 법률사무소 율평 변호사 

입력: 2018-01-11 18:00
[2018년 01월 12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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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성범죄 피해자 2차피해 막으려면
이민희 법률사무소 율평 변호사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한 두 건의 성범죄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가을, H기업의 여성 신입사원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자신의 SNS에 사내 성범죄의 피해자라는 글을 게시했다. 내용은 회식자리에서 동기 남자 사원이 여자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찍었고, 지난해 4월 당시 인사팀장이 본인에게 성폭행을 시도했으며, 지난해 1월 남자 교육담당자가 본인을 두번 강간, 폭행했다는 것이다.

여자화장실에서 몰카를 찍은 남자사원과 지난 4월 성폭행을 시도한 인사팀장은 모두 징계를 받고 회사에서 해고됐다. 여기에서 문제 삼는 사건은 남자교육담당자의 강간, 폭행 사건이다.이 사건은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됐다.

또한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15세 여중생에게 접근해 성폭행하고 임신·출산까지 하게 만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5번의 재판 끝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위 두 사건 모두 놀라움을 사기 부족하지 않은 사건인지라 인터넷에서 여론의 관심을 뜨겁게 받았으며 더러 피해자를 '꽃뱀' 또는 '정신이상자' 등으로 모욕감을 주며 2차 피해를 가하는 발언도 보였다.

위 두 사건의 공통점은 범행 전후 피해자의 행동들에 비추어볼 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이 신빙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H기업의 여성 신입사원은 강간이 있었다고 주장한 다음 날에도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교육담당직원과 카카오톡을 주고 받았다는 점, 위 여중생은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구속된 연예기획사 대표를 접견하러 간 점 등이 통상의 '성범죄 피해자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아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됐다.

성범죄는 행위특성상 매우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해 현실적으로 입증이 어려워 피해자의 진술이 거의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지 여부가 성범죄 판단의 결정적인 쟁점이 된다.

헌법 제27조 제4항과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재판상 원칙이 있듯이 피고인의 유죄 인정이 신중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이 자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동일한 상황 하에서도 같지 않다. 강간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평생 안고 어렵게 살아가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모멸적 기억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이어가기도 한다. 성별, 성격,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 등이 이러한 반응의 차이를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요소가 같다고 해 반드시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이다.

범죄에 직면한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과 피해를 입은 후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의 다양성을 보편적 지식의 틀 안에서 참작할 때 특정 사건에서 피해자 반응에 특이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 성별, 성격,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은 물론 범행 당시와 범행 이후의 여러 정황을 모두 고려해 이러한 반응의 특이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 반응의 특이성의 형식적 측면만을 들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가볍게 배척한다면 이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인간심리와 인간성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의 부족 때문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위 H기업의 신입사원은 어렵게 취업해 많이 기뻤을 것이고 어떻게든 회사에 잘 적응해 잘 다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 성범죄에 노출됐고 구조를 요청한 교육담당자, 인사담당자에게까지 성폭력을 당했을 때 참으로 참담했을 것이다.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SNS에 이러한 사실을 공개하게 되기까지 어쩌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을지 모른다. 40대 연예소속사 대표에게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는 15세 중학생 또한 연예인이 되고 싶은 꿈은 어쩌면 가장 간절한 꿈이고 힘든 현실을 돌파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자세한 심경까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들이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해 피해자 진술이 신빙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일종의 권력관계라는 상황의 특수성에 비춰 생각해보면 피해자 반응의 특이성이 조금은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이해될 수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범죄를 당한 후 신속하게 강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사람은 곧바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신고해 권리구제를 받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벌어진 범죄행위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결정을 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아직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다른 피해자보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에 감수해야 할 요소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평생 자신의 주홍글씨가 될지도 모르는 사건을 공개하는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피해 구제에 그치지 않고 후에 같은 일로 피해보는 다른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지 모른다. 이들의 용기에 손을 내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우리마저도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세상 밖으로 밀어내버리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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