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계 과기계에 부는 ‘핀란디즘’

금동화 KIST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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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3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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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계 과기계에 부는 ‘핀란디즘’
금동화 KIST 연구위원


지난 주 핀란드 공학한림원은 유도진화(directed evolution)기술을 발전시킨 공로로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의 프란시스 아놀드 교수에게 2016년 밀레니엄기술상(Millennium Technology Prize)의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상은 세계 최고의 기술상으로, 핀란드에서 2000년부터 제정돼 상금이 100만 유로에 달하는 기술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고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인구 547만여명의 북유럽의 작은 나라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권위 있는 시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서구의 양대 정치 세력 사이에서 국체(國體)를 유지하고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비슷하게 위치한 작은 나라가 적절한 크기의 경제력과 국방력을 바탕으로 정치·외교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런 외교노선을 흔히 핀란디즘이라 한다. 밀레니엄기술 상은 이러한 핀란디즘(Finlandism)이 과학기술 측면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2004년, 첫 번째 밀레니엄기술상은 월드와이드웹(WWW)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이후 이 상은 매 2년마다 현재 및 미래에 인간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키는 혁신 기술에 주어지며, 노벨상 혹은 여타의 다른 상과 차별되는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류의 생활과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기술적 혁신을 대상으로 한다. 둘째, 해당 기술의 최초 발명자보다 삶의 질 향상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게임 체인저를 수상자로 선정한다. 이런 철학은 WWW에 이은 청색 및 백색 발광다이오드(LED), 약물투여제제(DDS), 연료감응형 태양전지(DSSC), 개방형 OS인 리눅스, 만능유도줄기세포(iPSC)와 고용량 데이터 저장기술 등 그간의 선정된 기술들을 보면 잘 드러난다. 이 기술들은 이미 우리의 생활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정보화 확산, 질병 퇴치와 건강 증진, 신·재생 에너지 활용 확대라는 측면에서 미래 파급효과 또한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아놀드 교수의 수상 역시 밀레니엄기술상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모든 생물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염기서열 일부가 바뀌고 이에 따른 유전형질의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한다. 유도 진화란 이러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 현상을 인위적으로 모사하되 이중에서 유효한 형질(또는 생화학적 성질)을 선택적으로 강화시키는 반응기술이다. 아놀드 교수는 효소(enzyme) 단백질을 자연친화적으로 합성하는 생화학적 공정기술을 개발한 선구자이다. 유도진화 기술로 형질을 변화시킨 효소는 자연적으로 화합물의 전환 반응을 촉진시키므로, 기존 촉매제의 반응효율을 크게 높이거나 유해한 공정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 수명이 다한 후 폐기해야 하는 값비싼 원료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석유화학 제품, 제지, 제약, 섬유 및 농업용 화학제품 산업에 자연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청정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잠재력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직 '밀레니엄기술상'은 일반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간 선정된 기술이나 수상자를 살펴보면 이 상이 기술 분야의 노벨상으로서 그 가치와 위상을 갖추어 나갈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머지않은 장래에 과학기술 분야의 핀란디즘이 보이게 될 이유다.

핀란드에서 배워야 할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 핀란드는 우리의 창조경제가 지향하는 혁신 생태계가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대표적인 나라 중에 하나다. 대표적으로 노키아를 예로 들 수 있다. 1985년 모바일 폰으로 세계 정보통신 시장의 신기원을 열었고, 핀란드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수년전 스마트 폰 시대의 주도권을 놓친 이후 승자의 덫에 걸리는 고난을 겪었지만 이를 잘 극복해 통신기기 네트워크와 솔루션 부분의 강자로 부상하며 창의성과 혁신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일자리를 잃었던 수많은 근로자들도 이러한 노키아의 정신을 이어받아 크고 작은 수많은 벤처기업가로 재탄생하며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제2의 실리콘밸리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이렇듯 핀란드는 기업가 정신이 존중되고 젊은 세대에게 창업의 꿈이 왕성한 나라다. 핀란드의 기술혁신의 생태계가 핀란드 경제를 회복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다음으로 핀란드는 인구는 적지만 국민소득은 4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이다. 경제 인구 한 사람이 생산해 내는 가치가 월등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인재를 지속해서 길러내기 위한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핀란드는 최근 21세기가 요구하는 학문과 기술의 융·복합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 공학과 기술 교육을 확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2010년에 이미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는 세 개 대학(엔지니어링, 예술과 디자인 및 경영)을 합쳐서 알토대학교로 재설립했다. 기술, 디자인, 경영의 융·복합 교육뿐만 아니라, 강의중심 교육을 문제해결 능력 중심으로 바꾸는 등 대학의 교육·훈련 방법을 혁신하고 있다. 또한 외국의 우수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인해 산업인력과 혁신문화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이란 당면과제에서도 수수방관하는 우리사회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필자는 일전에 핀란드 공학한림원 이사장 마르하 마카로우 박사와 만난 자리에서 밀레니엄기술상의 제정 배경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마카로우 박사는 기술 발전이야말로 핀란드 번영의 근간이며 시상을 통해 핀란드 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자 함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이 상의 제정을 통해 세계인들이 핀란드가 과학기술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게 하고 21세기 기술 흐름을 주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러한 선언적인 답변은 필자로 하여금 한국이 창조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다시금 고민해보게 하였다. 핀란드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우리도 이제 혁신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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