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르네상스적 인간’이 살아가는 법](http://contents.dt.co.kr/images/201604/2016042202102269607002[1].jpg "[디지털인문학] ‘르네상스적 인간’이 살아가는 법")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다시 꽃이 돋는 것은 반복되는 삶의 순환의 과정이지만 매번 마치 처음 맞이하는 듯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다시 생명으로 가득 차는 것을 목도하는 것이니 가히 기적을 바라보는 놀라운 기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태어남, 부활의 기적 앞에서 우리는 황홀하다.
부활은 한 개체의 죽음 그리고 다시 태어남과 관련되지만, 나아가 하나의 집단, 혹은 문명과 관련되기도 한다. 서구 문명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면서 고대적 인간을 재발견하는 시간을 다시(Re) 태어남(naissance) 즉 '르네상스Renaissance'라 불렀다.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라블레는 그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모험>에서 거인 가르강튀아가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가르강튀아는 어머니의 자궁 입구가 닫히는 바람에 횡경막을 뚫고 위로 향해 마침내 어머니의 귀를 뚫고 태어나는데, 세상에 나오면서 그는 "술을 다오, 술을 다오!"하고 외친다. 가르강튀아의 탄생은 금욕적인 중세로부터 탈피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르네상스' 인간이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의 축제를 선포하는 순간이다.
가르강튀아라는 르네상스 거인의 이 놀라운 탄생은 고대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의 탄생 신화를 반복하고 있다. 가르강튀아가 외쳤듯이 그는 생명의 물인 술의 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결국 가르강튀아의 탄생을 통해 라블레는 르네상스는 디오니소스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부활'의 테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오니소스'라는 존재의 상징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가 인간 세멜레로부터 얻은 아들이다. 그런데 세멜레는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간계로 제우스의 본 모습을 보고 타죽고 말았는데 제우스가 세멜레의 태반에서 태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어 길렀다고 한다.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한 허벅지 속에서 길러지고, 다시 그 몸을 찢고 태어나는 것이다. 또 다른 판본에서는 헤라에 의해 조각조각 찢겨 죽은 아이를 제우스가 다시 살렸다고도 한다. 디오니소스의 어원을 이루는 '디오고노스'라는 단어가 두 번 태어난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디오니소스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다시 태어난 생명의 축제의 선포이기도 하지만, 이 축제는 찢겨지는 죽음의 고통을 전제하는 것이다.
인간과 신의 사이에서 태어나 부활을 겪은 존재는 서구의 상징체계 속에서 디오니소스 뿐이 아니다. 기독교적 상징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또한 디오니소스와 같은 상징성을 지닌 존재이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겪고 다시 태어난 예수는 고대 그리스 종교 체계 속에서의 디오니소스를 기독교적 상징 속에서 연장, 변형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기독교 상징체계 속에서 '부활'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의미를 확장한다. 부활은 한 생명체가 죽음 이후에 다시 동일한 물질적 토대 속에서 삶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상징 속에서 부활은 '부재'를 통해서 '현존'을 깨닫는 사건이다. 예수의 무덤을 찾은 마리아에게 천사들은 예수의 부활을 다음과 같이 알린다.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다시 살아난 예수의 몸이 아니다. 그들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의 부재를 목도하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 부활을 그의 현존을 직접 봄으로써만 믿는 일화가 도마의 일화이다. 그는 예수를 만나 그의 상처를 손으로 만져본 이후에나 그의 부활을 믿었고, 그로 인해 예수의 책망을 받는다. 그러나 도마의 일화에서 정작 주목할 것은 그가 예수의 몸에 뚫린 구멍을 만져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현존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아니다. 도마는 '구멍' 즉 허공, 부재함을 감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부재를 감각하는 것은 예수의 고통의 흔적을 감각하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의 체험은 '기적'이다. 그런데 기적이란 단어 자체가 가진 뜻은 부활을 경험하는 양식 그 자체를 지시한다. 기적은 한자로 기이할 기(奇)에 흔적 적(跡)이라 쓴다. 기적은 현재형으로 물리적인 형태로 목도되는 것이 아니라, 흔적으로, 부재함으로서만 경험되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 우리에게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기쁨의 계절이 아니다. 다시 태어남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부재하는 이들이 겪은 고통을 감각해야 한다. 부활한 예수는 자신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던진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부재하는 고통스러운 몸들이, 그 흔적들이 그들을 부인하는 우리 사회에 정말로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지를 묻는다. 그들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들의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겪음으로서, 부재하는 그들을 우리에게서 살려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봄을 찬란한 소생의 계절로 만들어내는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회가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언이 될 것이다.
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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