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대학 서열 경쟁, 이대론 안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601/20160115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대학 서열 경쟁, 이대론 안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서열 경쟁이 난무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서열경쟁은 대학에서 극에 달하며 각종 계급이 생겨나고 있다. 수능 입학 성적에 따른 학문의 서열화라는 반학문적 사태가 발생하는 가하면, 또 어떤 전형 방식을 거쳐 입학했는가에 따라 학생들 간에도 서열과 계급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서열 경쟁은 대학 간의 서열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최근 그 양상은 기괴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영미권 사설 평가업체들의 사업전략에 휘말리며 극한의 서열경쟁에 매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대학들이 대학랭킹 순위 상승을 위해 동원하고 있는 방법들을 보면, 과연 우리대학들이 최소한의 인문적 사회적 성찰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학에서 탐구되는 인문 사회 관련 학문들이 가장 경계해야하는 것은 식민주의적 지식 헤게모니의 침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지식헤게모니에 대한 비판은 유럽의 인문사회학자들의 역사적 참회에서 탄생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 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이 보편성으로 위장한 제국주의의 앞잡이에 불과했음을 처절하게 반성했다. 이후 유럽 인문 사회학자들은 탈식민주의라는 새로운 학문의 흐름을 창조해 각 문화권의 가치를 존중하며 문화 간 융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가장 발전한 최근 인문학은 경제적 헤게모니에 의해 휘둘리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비판한다. 대신 다양한 문화의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상호문화화(interculturalization)를 지향한다. 그리고 비서구권 학자들에게 서구 지식을 보편적 지식으로 위장하는 합리주의 인식론에 속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제 각국의 인문학은 학문적 탐구의 시선을 자신의 문화와 언어로 돌려 학문적 식민주의에 의해 파괴된 자신의 문화역량을 증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대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거 학문적 식민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우리나라의 대학은 영미권 사설평가업체에게 평가 주권을 신탁했다. 그리고 그 업체들을 세계적 평가기구로 권력화하고 스스로 종속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발표하는 대학 랭킹을 숭배하는 미개한 행태를 극단화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 사설업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영미권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을 양산하라는 압박이 학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영미권 지식 헤게모니가 요구하는 학문적 이슈에 사실상 학문적 조공을 상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상납행위로 우리 문화와 사회의 문제를 성찰하며 문화를 창조하는 자생적 인문학은 탄생의 기회를 잃고 만다. 이렇게 되면 자생적 인문학과 함께 발전해가는 우리의 모국어가 학문을 할 수 없는 저질 언어로 퇴화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이 퇴화의 과정이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 문화도 자생할 수 없다. 언어, 문화, 인문학은 서로를 탄생시키고 발전시키는 순환적 상생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각 문화권에서 탐구되는 인문 사회 관련 학문을 일개 사설 평가업체가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야만적 행위다. 설령 유네스코가 같은 국제기구가 나서 각국이 참여하는 국제 협약을 통해 서열을 매긴다고 해도, 상당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학은 영미권 사설 평가업체의 전 세계대학 서열화 비즈니스를 숭배하며 상호간의 무한경쟁 함정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는 인문학에 대해서는 학문적 식민주의의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대학들은 맹목적인 서열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 엄청난 속도의 지식 창조 시대에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대학들이 서로 가지고 있는 지식 창조 역량을 서로 공유하고 융합시켜야 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역내의 모든 대학들은 컨소시움을 구성해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다. 반면 우리 대학들은 외국 평가업체의 서열 경쟁 조장 사업전략에 말려들어 협력의 생태계 조성에 실패하고 있다. 오히려 이 대학 간 서열경쟁은 결국 사회 전반 만연된 잔혹한 서열경쟁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이란 비탄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는 우리 문화의 병적 징후이다. 우리의 인문학,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의 문제점을 치열하게 성찰하며 스스로 탄생해야 한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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