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애도의 시간`과 이야기](http://contents.dt.co.kr/images/201512/2015121102102251607002[1].jpg "[디지털인문학] `애도의 시간`과 이야기")
얼마전부터 지인들이 부모님을 여의는 일이 잦아진다. 50대에 들어서니 이런 일들도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다. 요즘 상가의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밤을 새우며 화투판을 벌이는 장면을 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가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지도 못한다. 친한 친구의 부모상이라 할지라도 직장 때문에 장지까지 따라가 위로하기가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애도를 위한 충분한 자리가 허락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옛 법도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상을 치르도록 했다. 현대인들은 이처럼 ‘비경제적인’이고 ‘전근대적인’법도와 멀리 있는듯하지만 본질적인 것에는 실상 변한 것이 없다. 굳이 삼베옷을 입고,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살지 않는다 하더라도 3년이란 시간은 가장 소중한 대상을 잃은 슬픔이 삭여지는 최소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애써 슬픔을 잊고 이겨내려 한다면, 상실감은 영혼의 깊은 바닥에 머물다가 언제고 거대한 화산처럼 분출되어 자아를 파괴할 것이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아픔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자기 건강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회이다.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소설의 도입부는 도시에 사는 주인공 뫼르소가 시골의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노모의 부음을 받고, 내려가 장례를 치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례식날 작열하는 북아프리카의 태양 아래 운구차를 따라 장지로 이동하면서 뫼르소는 페레씨를 본다. 어머니와 각별하게 지내셨다는 페레씨는 다리를 절며, 눈물을 흘리며, 운구를 따라오다가 급기야 기절을 하고 말지만, 뫼르소는 그가 왜 그토록 힘들게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려 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힘든 장례식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온 뫼르소는 이제 실컷 잘 수있다는 안도감에 기뻐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날들을 보내던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날처럼 태양이 뜨겁던 어느 날 칼날처럼 눈을 파고드는 태양 때문에 권총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 다소 부조리한 설정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실상 중요한 것은 뫼르소가 작렬하는 햇빛 속에서 어머니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페레씨의 자리에 비로소 선다는 점이다.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가 아닌가를 윤리적 차원에서 판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애도의 부재가 그를 자기 파괴로 이끌고 있으며, 그 경험의 끝에 사형집행 직전의 정신적 발작이후에서야 비로소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천일야화>는 아내의 배신을 겪고 마음속에 큰 상처를 입어 여성을 혐오하게 된 왕의 이야기이다. 샤리아 왕은 배신한 아내를 죽인 후 수많은 처녀들을 아내로 맞이하지만 첫날밤을 지내고는 신부를 죽이는 잔혹을 행한다. 왕과 결혼한 총명한 신부 셰에라자드가 매일 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어 초야 후의 죽음을 면한다. ‘천 일 하고도 하루’동안 이야기는 계속되고 그 오랜 시간 후에 왕은 비로소 여성혐오로부터 벗어나 아내 셰에라자드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샤리아 왕은 부인의 배신으로 인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거의 삼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너무도 큰 상실의 경험을 겪은 우리 사회는 외면, 망각의 강요, 혐오, 일상으로의 복귀, 경제, 정치 등등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를 위한 애도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고 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회복하지 못할 만큼 안으로 조금씩 건강성을 상실하고 있다. 상실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과 이야기이다. 슬픔을 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슬픔 자체를 말하는 이야기들이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천일 하고도 하루’가 넘는 기간 동안, 이야기는 이어져야 한다.
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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