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미학`에 대한 관심](http://contents.dt.co.kr/images/201510/20151002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미학`에 대한 관심")
'미학(aesthetics)'이란 말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은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면 여기저기서 쉽게 '미학'을 포함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서양미학, 동양미학, 한국미학과 같은 지역적인 분류도 익숙하고, 조형미학, 문예미학, 음악미학과 같이 개별 예술과 미학을 결합한 표현들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몸의 미학', '느림의 미학', '분위기의 미학'처럼 다소 추상적이며 모호한 합성어도 이젠 전혀 생경하게 들리지 않는다. 미학을 사랑하고, 또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미학이 이렇게 일상 속에 널리 자리 잡았다는 것은 일단, 반갑게 느껴진다. 다양한 삶의 현상과 예술을 미학적으로, 곧 감성적으로 섬세하게 이해하려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분명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학의 일상화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서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학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것은 단지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 경향일까. 혹시 이 확산의 저변에는 어떤 긴요한 소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말 못할 소망, 이루어지지 못한 소망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소망을 감지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소망은 인간의 개별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되살리고자 하는 소망이다. 미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중반 근대 유럽에서이다. 이 시기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이념이 시대정신으로 부상하고,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 권리가 처음으로 법적, 제도적으로 정착된 시기이다. 동시에 우리에게 친숙한 '아름다운 예술(fine arts)' 개념이 일반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미학은 이러한 계몽과 자유의 시대정신 속에서 탄생한 사상적 결실이다. 때문에 미학에 대한 관심 속에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고, 개개인의 자유로운 학예활동을 긍정하려는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두 번째 소망은 인간이란 존재를 폭넓게 이해하려는 소망이다. 미학은 어원적으로 희랍어 '아이스테시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말은 넓은 의미의 '감각적인 지각' 내지 '지각을 통한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경험'을 의미했다. 이를 계승한 미학은 근본적으로 이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감성적 인간, 지각하는 인간, 감정적인 인간에 주목한다. 인간을 추상적인 사유의 존재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느끼고 지각하는 존재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미학은 인간을 '가장 인간적으로' 끌어안으려 한다. 유한한 인간의 생생한 모습, 인간의 모든 흔들림, 허약함, 상처받기 쉬움을 억압하지 않고 최대한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소망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좀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소망이다. 미학이 관심을 기울이는 두 가지 중심 주제는 미적 경험과 예술이다. 이 두 가지 주제는 모두 인간에게 소중한 가치이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경험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건강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예술작품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을 격이 떨어진다고 여기며, 그저 그런 작품보다는 확실히 멋지고 탁월한 작품을 선호한다. 왜 그럴까. 미적 경험과 예술을 통해 인간의 삶과 문화가 좀 더 높은 수준으로 고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학 또한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며, 이를 좀 더 포괄적이며 섬세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미학적 관심의 저변에 있는 네 번째 소망은 삶과 사회의 상투성과 도식성을 깨뜨리고자 하는 소망이다. 인간의 삶은 언제든지 지루하고 진부해질 수 있다. 개인적 이유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회적 역할과 규범들이 일상적인 삶을 일정한 틀에 가두어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도 말했듯이, 인간의 삶은 생기 없는 반복을 원치 않는다. 삶은 끊임없이 다른 곳에 있기를,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원한다. 미학은 삶의 진부함을 넘어서려는 지각의 확장과 사유의 모험을 옹호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뒷받침하고자 한다.
인간의 개별성과 개성, 감성적 인간의 긍정, 삶과 문화의 고양, 지각과 사유의 모험. 그런데 미학을 떠받치고 있는 이 네 가지 소망들은 왠지 불안하고 외로워 보인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무한 경쟁사회가 매 순간 이 소망들을 경시하고, 또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과 효율성을 절대시하는 곳에서 어떻게 개성과 감성을 긍정하는 미적인 삶, 문화적인 삶이 어깨를 펼 수 있겠는가. 역으로 생각해서, 미적이며 문화적인 삶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는데, 과연 진정으로 건강하고 활기찬 삶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미학적 관심에 내재된 정치적 에토스가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네 삶의 과정에서 개성과 감성이 충분히 존중되지 못하는 한, 미학을 향한 관심과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학에 대한 관심은 개개인의 삶이 수많은 강압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하선규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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