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복수`의 슬픈 결말](http://contents.dt.co.kr/images/201508/20150821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복수`의 슬픈 결말")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의 한 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가 사는 피부>는 복수의 전형을 보여준다. 교통사고로 인한 화상으로 아내를 잃은 로베르 박사는 외동딸마저 친구의 결혼축하연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상상을 초월하는 복수에 착수한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로베르 박사는 딸의 폭행범을 납치, 감금한 것으로도 부족해서 성전환 수술까지 감행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범인의 얼굴을 죽은 아내의 얼굴로 성형하고, 수년에 걸쳐 여성화를 위한 세뇌교육까지 시킨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박사는 애초의 복수심을 잃고 자신이 만들어낸 여인에게 연정을 느낀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비센테라는 청년에서 베라라는 여인으로 성전환된 인물은 결국 박사를 죽임으로써 자신에 가해진 폭력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자유를 찾아 돌아간 집에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와의 해후를 통해 결코 평탄치 않을 베라의 미래를 암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의사가 왜 이런 무시무시한 복수의 칼을 들었을까?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외동딸인 노르마에 대해 남달랐을 부정을 생각한다면, 박사의 복수 방식이 지나치긴 했지만 그 동기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녹녹치 않은 내공을 지닌 감독은 영화 이곳저곳에 복선을 깔아놓고 관객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아내의 죽음은 박사의 이부동생인 제카와 연루되어 있다. 제카와 눈이 맞아 가출길에 올랐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인해 심한 화상을 입는다. 의식을 되찾은 후 화상으로 흉측해진 자신의 모습에 놀라 아내는 자살을 한다. 이 일련의 사건은 아마도 박사에게 깊은 충격과 함께 제카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을 키웠을 것이다. 마침내 박사는 베라 마저 겁탈하는 제카를 총으로 사살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왜 박사의 부인은 전도양양한 의사 남편을 두고 부랑자인 이부동생을 따라나섰을까? 그런 부인의 얼굴을 베라의 얼굴로 재현한 박사의 심리는 무엇일까? 후손이 없던 명문가의 주인과 하녀 사이에서 태어나 정식 아들로 받아들여진 박사는 어떤 방식으로 양육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결함이 배태되었을까?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던 노르마가 비센테의 폭행으로 실신 후 깨어나면서 아버지를 보고 소스라치며 발광하는 장면이나 자신을 병문안한 아버지를 피하는 모습에서 노르마의 정신적 위기는 엄마의 죽음만이 아닌 부녀 관계의 남모를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상상하다보면 영화는 매우 색다른 모습으로 풀어지고 이해되기에 이른다. 다양한 해석의 길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매번 확인되는 사실은 박사의 복수심이 많은 이의 불행과 죽음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마치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조항을 연상시키는 복수 방식을 통해 결국 로베르 박사는 마음의 지옥을 헤매며 심신이 피폐해진 끝에 슬픈 죽음에 이르게 된다.
복수의 슬픈 결말을 잘 보여주는 그림 중의 하나가 부게로가 그린 <오레스테스의 참회>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의 아들인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애인과 짜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두 사람을 죽인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지만 자신의 생모를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로부터 모진 추궁을 받게 된다. 복수의 여신들의 집요한 시달림에 지쳐 오레스테스는 반미치광이가 된다. 부게로는 포효하는 듯한 세 명의 복수의 여신과 이들의 추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귀를 막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의 오레스테스의 대비를 통해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오레스테스의 비극 역시 복수가 가져오는 심적인 고통과 불행한 결과를 암시하고 있다.
영화와 그림에서 보았듯, 복수는 내게 피해를 준 이를 없애고자 하지만, 결국 그를 없애는 과정에서 자신마저 잃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눈에는 눈'은 모든 세상을 눈멀게 할 것이다"는 간디의 말이나 "복수를 궁리하는 사람은 영원히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베이컨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보복운전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운전 중 우연히 일어난 경쟁과정과 그에 따른 보복 심리가 때론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분노를 촉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따른 구성원들의 분노조절 장애에서 그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소개되고 있다. 이와 함께 기본기를 충실히 교육하지 않고 면허증을 남발하는 면허취득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필요도 있다. 유럽의 운전면허취득 과정에 비해 그 기간이나 교육의 질과 방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우리의 시스템에서 이러한 결과는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제대로 된 운전면허 교육을 통해 우리의 도로가 더 이상 원시인들의 정글이 아닌 날이 올 때까지 임시방편으로나마 모든 차에 조용필의
중에서 다음 부분만 반복 재생시키는 것을 의무화함은 어떨는지...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김승환 조선대 미술대학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