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질병의 이미지`](http://contents.dt.co.kr/images/201507/2015071702102251607002[1].jpg "[디지털인문학] `질병의 이미지`")
전공 교수
우리 인간의 삶에 항상 따라다니는 불청객 중 하나는 질병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보면 각 시대와 사회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13세기의 나병과 14세기의 페스트, 15-16 세기의 매독,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 등이 그 실례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다'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사진기나 비디오카메라 등의 매체가 없었던 과거에 질병은 주로 글과 그림을 통해 기록되고 기억되었다. 서양미술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질병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질병의 양상과 그 병에 대응하는 당대 사회의 성격을 이해해 볼 수 있다.
플랑드르 출신의 조스 리페랭스는 1497년에 <역병 희생자를 위해 탄원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렸다. 성 세바스티아누스회의 주문에 따라 그려진 이 그림은 원래 프랑스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 있는 한 교회의 제단을 장식하기 위한 8폭 제단화 중 하나였다. 그림의 전경에는 하얀 천으로 감긴 시체를 매장하는 인물과 장례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보인다. 시체를 매장하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병에 전염된 듯 쓰러진다. 그 뒤로 시체 한 구를 메고 묘지 문을 들어서는 남자와 시체를 한가득 싣고 성문을 빠져 나오는 수레, 텅 빈 광장에서 시체를 수습하는 두 사람, 천사와 악마의 치열한 싸움, 온몸에 화살이 꽂힌 채 무릎을 꿇고 페스트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주십사 신께 간청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의 위력과 공포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역병의 수호성인에게 위안과 구원을 갈구하던 당대인의 다급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그로부터 약 300년 후인 1780년에 같은 도시 보건국의 주문에 따라 그려진 그림이 다비드의 <성모에게 페스트로부터의 구원을 기도하는 성 로슈>이다. 조스 리페랭스의 작품처럼 이 그림 역시 외국인의 출입이 잦은 항구 도시의 특성상 전염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보니 이러한 주제를 통해 교훈과 경계를 삼고자 주문되었을 것이다.
성모에게 기원을 드리는 성 로슈의 주위에 페스트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보인다. 특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역병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이들 가운데 불안과 번민으로 가득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심해 보이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노골적으로 이들로부터 등지고 있는 이 남자의 태도로 말미암아 이 그림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양분됐다. 전통적인 종교화의 신성함을 잃었다는 측과 인간의 불행에 대한 저항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향한 고민과 모색으로 읽힐 수 있다는 측으로 나뉘었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두 번째 해석이 더 힘을 얻게 되면서 이 그림 속의 남자는 다가올 혁명의 선구자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다비드의 종교화는 이제 사람들이 전염병의 퇴치와 위로를 더 이상 종교에 의지하지 않게 되었음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할 것은 무엇인가.
다비드의 제자인 그로의 1804년 작품인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하는 나폴레옹>이 그 해답을 제공한다.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이 시나이 반도에서 페스트에 걸린 병사들의 격리병동을 방문하고 있다. 몸을 사리는 수행원들과 달리 나폴레옹은 장갑을 벗은 맨 손으로 병사의 병든 몸을 만지고 있다. 장군의 용감함과 인간애를 잘 그려낸 보상으로 화가는 남작의 작위를 받는다. 실제로 치료소를 방문하지도 않고 위로는커녕 전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전염병에 걸린 병사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장본인이 나폴레옹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 그림은 아베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심심치 않게 행하는 역사왜곡의 원조 격이다.
메르스의 광풍이 잠잠해지고 있다. 거의 한 달 넘게 언론 매체에 그려진 메르스의 이미지는 원형에 징그러운 빨판이 돋은 초록색 병원체, 마스크를 쓰고 불안해하는 시민들,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진실을 숨기는 보건 당국자들, 나폴레옹처럼 이미지 정치를 보여준 정치인들, 치료소가 아닌 전염원으로 전락한 병원 응급실들, 보호 장구를 입고 환자 치료와 간호에 몸을 사리지 않는 의료인들 등이었다. 첨단 의과학을 내세우는 시대에도 질병에 대한 확고한 대책이 없을 경우, 우리는 다시 이미지의 왜곡에 휘말린다. 메르스의 광풍에 익숙해 질 무렵 새롭게 등장한 이미지는 경기 부진, 관광객 급감과 관련된 이미지이다. 한 때 사회 위기의 국면전환용으로 자주 사용되던 반공방첩 이미지가 요즘엔 민생과 경제로 옮겨간 모양이다.
스위스 출신의 의학사학자인 헨리 지거리스트에 따르면, "질병은 문명과 사회의 모순이 깊어질 때 대규모로 발생하며, 대체로 문명과 사회의 개혁에 의해 감퇴"되었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순된 의료,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승환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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