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삼시세끼`가 주는 매체미학적 단상](http://contents.dt.co.kr/images/201504/20150410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삼시세끼`가 주는 매체미학적 단상")
최근 TV 프로 가운데 장안의 화제는 단연 <삼시세끼>다. 얼마 전 '어촌편' 시즌이 끝나, 언제 다음 시즌이 시작될지 알 수 없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볼 때 인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차승원씨와 유해진씨, 두 주인공의 주가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본래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지만, <삼시세끼>를 통해 영화배우로서의 인기를 훨씬 뛰어넘었다.
<삼시세끼>는 사회문화적으로 흥미로운 파장을 낳았다. 특히 '차줌마'의 경이로운 요리 솜씨는 시청자들의 '찬탄'과 '한탄'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찬탄'의 이유는 거의 공통적이지만, '한탄'의 배경은 성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거칠게 말해서, 이기적인 남성들은 주로 '맛없는 집밥'을 떠올렸고, 여성들은 대부분 '말 많고 요리 못하는 남편'이 얄미웠을 것이다. 아울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자의 어울림은 '함께 밥 먹고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과 기쁨, 그 노동의 경건함과 보람을 한층 더 감칠맛 나게 만들어 주었다. 나아가 계속 늘고 있는 싱글족도 <삼시세끼>의 인기를 높이는데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매일매일 홀로 밥 세끼 해결하는 일이 절대 간단치 않으니까.
그런데 <삼시세끼>는 '매체미학(aesthetics of media)'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봐야할 지점이 있다. '매체미학'이란 용어는 처음 보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별로 어렵지 않다. 우리는 온갖 매체들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읽는 책도 매체고, 거의 매일 보는 사진, 영화, TV, 컴퓨터도 매체다. 더 넓게 생각하면, 우리가 입는 옷, 타는 차, 쓰는 돈도 매체로 봐야한다. 이렇게 인간의 삶 전체가 항상 매체와 함께, 매체를 통해서 펼쳐지고 있으니, 매체들이 인간이 지각하고 사유하는 방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바로 이 영향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반성하고 따져 묻는 분야가 매체미학이다. 그러니까 매체미학은 통상적인 미학보다 훨씬 더 넓고 근본적인 지각의 차원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인 미학은 아름다움이나 숭고함과 같은 '미적 체험'이나 '예술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에 비해 매체미학은 매체들이 매개하는 모든 '감각적 지각'에 주목한다. 무엇보다도 특정한 매체들 하나하나가 특유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표현형식'이 인간에게 어떤 독특한 '지각 방식'과 '사유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명확히 해명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매체미학이 기본적으로 매체를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하나는 매체가 본래, 특정 시기의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탄생한 것이므로, 매체와 매체의 '표현형식'이 인간이 이러한 조건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지각 훈련'을 제공한다고 보는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매체와 매체의 '표현형식'이 이러한 적응 훈련을 넘어서서, 삶의 조건에 대한 비판적인 진단과 지각의 확장 또한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는 시선이다. 매체와 표현형식이 동시대의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이 조건들을 '유희적으로' 넘어서는 지각의 실험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매체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삼시세끼>는 TV라는 매체가 만들어낸 독특한 표현형식이다. 좀 더 정확히는, 기존에 있던 여러 표현형식들(뉴스, 스포츠, 드라마, 음악, 예능 등) 가운데 적어도 '다큐', '예능', '요리', '리얼리티TV' 등 네 가지 형식이 복합되어 탄생한 '퓨전형식'이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꽃보다 할배>도 대동소이한 퓨전형식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두 프로를 제작한 PD가 같은 사람이란다. 그럼 <삼시세끼>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적응을 위한 지각 훈련을 제공하는 걸까? 밖에서는 어슬렁어슬렁 찬거리를 구하러 다니고, 안에서는 도인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필살의 요리 신공(神功)을 선보이는 게 뭐가 그렇게 흥미로울까? 밥 먹는데 한 시간 내기도 버거운 우리네 일상과는 너무도 먼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 바로 여기에 <삼시세끼>가 실행하는 역설적인 적응 훈련이 있다. 즉 <삼시세끼>는 일상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시공간의 '롱테이크'를 보여줌으로써, 시공간을 느낄 여유가 허락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을 '상상적으로' 뒤집고 보상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TV 매체의 특성상 화면과 현실 사이의 경계선이 흐릿한데다 <삼시세끼>의 다큐-체험적 특성이 환영성의 효과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시세끼>가 선보이는 간접적인 적응 훈련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백번 양보해도 <삼시세끼>는, 재밌지만 기만적인 '트루먼쇼'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내비치는 시골 사람들의 삶은 생기 없는 경관에 머물러 있으며, 우연적으로 보이는 리얼한 장면들도 실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삽입된 우연일 수밖에 없다. 또 <삼시세끼>에서 상투적인 관념과 추억을 뒤집거나 어떤 새로운 지각 가능성을 실험하는 측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삼시세끼>에서도 TV는, 약 주고 병 주는, 보상해주면서 기만하는 양면적인 매체로 드러난다. 물론 그렇다고 이 프로에 담긴 소소한 재미들과 이 프로의 최대 강점인 '느림과 여백'을 모두 무의미하다고 몰아붙일 순 없다. 니체가 말했듯이, 삶을 견뎌내려면 어차피 일정한 거짓과 환영을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선규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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