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 2015 새해 새 비전
"꽁꽁 언 얼음을 깨고 새로운 항로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하는 쇄빙선처럼 한국과학창의재단은 민관의 과학기관, 여러 단체들 간의 경직된 소통 경로를 깨고 서로 협업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사회 곳곳에 과학문화를 널리 확산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해 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으로 새로 취임한 김승환 이사장은 과학문화의 확산과 창의적 인재 육성의 핵심이 '소통'과 '협업'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었다. 김 이사장의 이러한 가치관은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그의 행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포스텍 교수로 재임하던 시절, 그는 과학 커뮤니케이션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등에 몸을 담으며 과학과 세상과의 소통을 이어왔다.
김승환 이사장은 40여 년간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과학 대중화 운동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1967년 국민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과학기술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국과학창의재단의 모태가 된 '과학기술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재단은 약 반 세기 동안 과학문화 운동을 펼쳐왔다.
김 이사장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과학문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혁신적이고 놀라운 일"이라면서도 "그 후 47년이 지나 우리나라의 국력과 과학기술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지금, 우리나라의 과학문화 수준도 그것에 맞게 성장하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는 정부나 특정기관의 주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와의 협업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며 "과학정책·교육·언론 등 과학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주체들과 긴 숨으로 협업해나간다면 보다 체계적으로 과학문화를 확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대담=안경애 생활과학부 부장
-재단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과학문화의 확산이다. 우리나라의 과학문화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 국민들은 과학에 대한 관심도 높고, 과학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해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공상과학영화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는 과학과 상상이 결합해 영화라는 도구를 만나 문화로 구현된 것인데, 이를 찾는 관객들이 많다는 것은 과학문화를 소비할 만한 저변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과학문화를 창출할만한 수준에 있지 못하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세계적 석학인 물리학자 킵 손과 협업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협업을 통해 과학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과학문화 선진국이 가진 역량으로, 우리나라가 이러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문화의 소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창출까지 이루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있다면.
"2012년 백악관에서 '메이커페어'가 열린 적이 있다. 이 대회가 더욱 주목을 받았던 것은 한 소년 때문이었다. 조이 후디라는 이 소년은 오바마 대통령 앞에서 마시멜로를 쏘아 올리는 압축공기 대포를 시연했고, 이를 본 오바마 대통령의 경이로운 표정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 소년은 몇 년 후 인텔의 최연소 인턴으로 채용됐다.
미국의 메이커페어 등으로 대표되는 '창작문화'는 이제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차고에서부터 형성된 DIY(Do-It-Yourself) 문화가 자연스럽게 창작문화로 가고 있다. 미국인들의 57%가 자기 자신이 메이커라고 생각한다는 USA 리포트의 조사 결과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오픈소스 하드웨어나 정보통신기술(ICT)를 결합해서 보다 고도화된 창작물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미 수준의 것이 집단화되면서 새로운 펀딩이 형성되고 사업화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창작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과학문화 창출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창작문화 확산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맨로파크에 짐 뉴톤이 설립한 '테크숍(Tecshop)'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확산되고 있다. 테크숍은 3D프린터, 레이저 커터와 같은 고가의 장비부터 일반 목공구까지 갖춰진 일반인들을 위한 작업장이다. 일본에서도 카페형 창작 공간이 생겨나면서 창의적 활동이 이뤄지고 있고, 중국도 산업적으로 빠르게 창의 공간이 확산되고 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창작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창의 공간이 필요하다. 재단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무한상상실'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무한상상실은 국민의 아이디어를 개발·발굴하고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직접 제작하고 스토리 등으로 창작해보는 창의공간으로, 지난해까지 전국 광역시도에 13개의 거점 무한상상실을, 시·구·군에 29개 소규모 무한상상실을 개소했다. 향후 전국적으로 확대해 생활권 내에서 누구나 아이디어 활동을 하고 상상하고 제작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국민의 창의·상상 활동의 거점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재단은 무한상상실이 지속적으로 내실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창의성 증진 교육 프로그램(DHA, Develping Human CreAtivity)이나 아두이노 등 초소형PC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더불어 국내의 숨은 창작자들을 발굴하고, 오픈소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3D 프린터 등의 도구를 활용한 창작의 붐을 조성하기 위해 메이커 페어도 진행할 계획이다."
-어린 시절부터 '창작', '창의' 문화를 접하면서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 어떤 것들을 하고 있나.
"창의교육에서는 창의적인 활동이나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다. 올해부터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확대되면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융합인재교육(STEAM)과 같은 창의교육이나 기업과 연계한 진로 탐색 등이 좋은 툴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학이나 수학에 기술, 공학, 예술 등을 접목시킨 STEAM은 학생들이 과학, 수학을 공부하면서 상황제시, 창의적 설계, 감성적 체험의 단계를 거치면서 실생활 문제해결력과 융합적인 사고력을 향상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올해부터는 2016년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에 대비해 융합형 체험 탐구 활동을 강화하고, 진로 교육과 연계한 융합형 콘텐츠를 개발·보급하는 등 정부 정책과 연계시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다만, 이러한 콘텐츠들이 학교 현장에서 영재식 교육으로 흘러가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2018학년도부터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도입된다. 달라지는 점과 재단의 역할은?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의 주요사항 발표에 의하면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교육,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의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소양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 강화 방안으로는 문·이과 구분 없이 누구나 공통으로 들어야하는 고등학교 과학 과목인 '통합과학'과 '과학탐구실험'이 신설된다.
재단은 우선 수학과학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게 교육과정을 개발하고자 한다. 또한 과학적 창의성과 수학적 사고력을 배양해,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 스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미국은 '차세대 과학교육 표준(NGSS)'을 발표해 미국을 이끌 차세대 인재육성의 국가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영국 등 선진국들도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과학교육의 새 틀을 짜고 있다.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는 그런 과학교육 표준을 중장기적으로 연구하고 만들어야 한다."
-임기 중에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창의재단은 재단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뿌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체성을 바로 정립해 세계적인 과학기술진흥 전문기관으로 한 단계 질적인 도약을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가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과학문화 창달'과 '창의적 인재육성'이란 두 수레바퀴의 축을 우리 사업 속에 온전하게 녹아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특히 창의재단은 직접적인 연구개발업무를 하고 있지 않지만 연구자가 우대받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요구하는 내용 뿐 아니라 재단 스스로도 연구하고 기획하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직원들에게 주도적이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think different'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연구역량을 끌어올리고 외부 전문와 협업하면서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창의문화정책연구소'도 신설했다.
재단은 앞으로 국가의 미래인재들을 키우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선도플랫폼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
정리=백나영기자 100na@dt.co.kr
김승환 이사장은…
○약력
- 1974.3~1977.2 양정고등학교
- 1977.3~1981.2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
- 1981.3~1982.8 서울대학교 물리학 석사과정
- 1982.9~1987.8 펜실베니아 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박사
- 1987.8~1988.8 코넬대학교 응용수학연구소 연구원
- 1988.9~1989.8 프린스턴대학교 고등연구소 연구원
- 1989.9~1990.1 코넬대학교 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 1990.2~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 2004.4~2012.7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
- 2008.10~2010.12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수석전문위원
- 2014.3~2014.12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
- 2014.10~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 2015.1~ 한국물리학회 회장
○수상경력
- 2013 올해의 과학자상, 한국과학기자협회
- 2011 동아일보 선정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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