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간섭ㆍ규제 여전… 단기ㆍ현안 연구 급급
창조적 R&D 역할 위해 `책임 운영체계` 필요
창조적 R&D 역할 위해 `책임 운영체계` 필요
■ 출연연 3.0시대 열자
(중) 자율적 혁신생태계 구축
"정부는 늘상 출연연에 자율과 책임을 주겠다고 해왔지만, 연구현장에선 오히려 간섭과 규제가 심해졌다. 정부는 출연연을 못 믿고, 출연연은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정부출연연에 몸담고 있는 한 연구자의 푸념 섞인 말이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에 자율과 책임의 기관 운영을 약속했다.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할 테니 출연연은 걸맞은 우수 연구성과로 국민에게 보답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출연연 연구자들에게 자율은 `선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산, 평가, 정원제도부터 기관장 선임, 연구회 운영 등 출연연 관련 전체 사항을 정부가 사사건건 규제하고 간섭하다 보니 자율성 보장 약속은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출연연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산은 `기타공공기관 지정'이다. 출연연은 공공기관에 준하는 관리 및 통제를 받는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이 때문에 연구기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력운용, 예산집행, 기관평가 등에서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관할 부처가 자율성을 주고 싶어도 힘든 구조다.
공공연구노조 한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도 결국엔 예산, 인력, 평가 등에 있어서 다른 공공기관과 같은 잣대로 간섭과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출연연 고유 미션에 맞는 장기연구를 하기보다 단기ㆍ현안 위주 연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출연연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세계적인 연구성과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출연연에 기관 운영과 관리에 대한 자율성을 주면서 방만한 운영 시 예산과 평가 등에 불이익을 줘서 책임을 부여하는 자율과 책임 운영체계로 바꿔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기관평가제도 개선을 통한 자율성 확보도 관건이다. 출연연들은 매년 하는 경영평가와 3년마다 하는 종합평가(경영+연구)를 받는다. 평가 결과는 기관의 경상운영비, 인센티브, 기관장 연봉 등에 반영되기 때문에 기관들은 사활을 걸고 평가에 올인한다. 그러나 경영평가 준비에 매년 막대한 행정력을 낭비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출연연 고유임무에 맞는 성과지표를 새로 마련하는 등 평가지표 개편도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달 미래창조과학부가 출연연 평가를 질적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출연연 평가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기관장 선임제도 개선도 자율성 확보를 위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다. 기관장 선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해 권력에 의존하는 `낙하산 인사' 선출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래야 기관장이 리더십을 갖고 책임경영을 할 수 있다. 성과가 우수한 기관장은 연임을 보장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올초 방한했던 세계적 기초과학연구기관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다니엘 자이프만 소장은 지난 2006년 소장에 취임해 5년 임기를 마친 후 지난 2011년 연임, 8년째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나 프라운호퍼연구소는 기관장 임기를 거의 종신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인력운용도 자율성 확보의 걸림돌이다. 정부가 출연연의 인력정원(TO)을 규제하고 있어 연구현장에선 원활한 인력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연구비가 늘어나도 정규직을 채용하지 못해 비정규직을 대체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데 비정규직 숫자마저 제한하고 있어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
출연연 한 관계자는 "연구비 증가에 비례해 인력을 자체 채용할 수 있도록 연구비 연동 인력채용 장치를 둔다면 우수 인력을 뽑으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인력 미스매치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오는 7월 출범 예정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출연연 자율성을 강화해줄 완충 조직으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이 나온다. 이전같이 출연연을 관리하는 `옥상옥 기관'이 아니라 기획ㆍ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출연연과 협력해 중장기 발전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예산ㆍ인력 자율성을 높이는 지원기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기타공공기관 해지가 출연연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면서 "통합 연구회도 출연연이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자율과 책임을 갖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창조ㆍ선도적 R&D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리더십을 갖고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
(중) 자율적 혁신생태계 구축
"정부는 늘상 출연연에 자율과 책임을 주겠다고 해왔지만, 연구현장에선 오히려 간섭과 규제가 심해졌다. 정부는 출연연을 못 믿고, 출연연은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정부출연연에 몸담고 있는 한 연구자의 푸념 섞인 말이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에 자율과 책임의 기관 운영을 약속했다.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할 테니 출연연은 걸맞은 우수 연구성과로 국민에게 보답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출연연 연구자들에게 자율은 `선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산, 평가, 정원제도부터 기관장 선임, 연구회 운영 등 출연연 관련 전체 사항을 정부가 사사건건 규제하고 간섭하다 보니 자율성 보장 약속은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출연연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산은 `기타공공기관 지정'이다. 출연연은 공공기관에 준하는 관리 및 통제를 받는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이 때문에 연구기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력운용, 예산집행, 기관평가 등에서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관할 부처가 자율성을 주고 싶어도 힘든 구조다.
공공연구노조 한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도 결국엔 예산, 인력, 평가 등에 있어서 다른 공공기관과 같은 잣대로 간섭과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출연연 고유 미션에 맞는 장기연구를 하기보다 단기ㆍ현안 위주 연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출연연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세계적인 연구성과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출연연에 기관 운영과 관리에 대한 자율성을 주면서 방만한 운영 시 예산과 평가 등에 불이익을 줘서 책임을 부여하는 자율과 책임 운영체계로 바꿔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기관평가제도 개선을 통한 자율성 확보도 관건이다. 출연연들은 매년 하는 경영평가와 3년마다 하는 종합평가(경영+연구)를 받는다. 평가 결과는 기관의 경상운영비, 인센티브, 기관장 연봉 등에 반영되기 때문에 기관들은 사활을 걸고 평가에 올인한다. 그러나 경영평가 준비에 매년 막대한 행정력을 낭비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출연연 고유임무에 맞는 성과지표를 새로 마련하는 등 평가지표 개편도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달 미래창조과학부가 출연연 평가를 질적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출연연 평가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기관장 선임제도 개선도 자율성 확보를 위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다. 기관장 선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해 권력에 의존하는 `낙하산 인사' 선출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래야 기관장이 리더십을 갖고 책임경영을 할 수 있다. 성과가 우수한 기관장은 연임을 보장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올초 방한했던 세계적 기초과학연구기관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다니엘 자이프만 소장은 지난 2006년 소장에 취임해 5년 임기를 마친 후 지난 2011년 연임, 8년째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나 프라운호퍼연구소는 기관장 임기를 거의 종신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인력운용도 자율성 확보의 걸림돌이다. 정부가 출연연의 인력정원(TO)을 규제하고 있어 연구현장에선 원활한 인력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연구비가 늘어나도 정규직을 채용하지 못해 비정규직을 대체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데 비정규직 숫자마저 제한하고 있어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
출연연 한 관계자는 "연구비 증가에 비례해 인력을 자체 채용할 수 있도록 연구비 연동 인력채용 장치를 둔다면 우수 인력을 뽑으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인력 미스매치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오는 7월 출범 예정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출연연 자율성을 강화해줄 완충 조직으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이 나온다. 이전같이 출연연을 관리하는 `옥상옥 기관'이 아니라 기획ㆍ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출연연과 협력해 중장기 발전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예산ㆍ인력 자율성을 높이는 지원기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기타공공기관 해지가 출연연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면서 "통합 연구회도 출연연이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자율과 책임을 갖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창조ㆍ선도적 R&D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리더십을 갖고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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