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있었던 수 차례의 해킹 사고, 개인정보 보호법의 제정과 그 시행, 최근 정보통신망법의 개정에 이르기까지 개인정보 보호라는 이슈는 봄날의 황사처럼 잊혀질 만하면 기억을 일 깨우는 사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작년에 발생하였던 사건 중 최근까지 회자되는 SK커뮤니케이션즈(이하 SK컴즈)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역시 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회원들은 단독으로 또는 집단으로 SK 컴즈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현재까지 약 20여건의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송이란 것이 한 번 시작하면 오랜 시일이 지나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갈 즈음에 그 결론이 내려지기 마련이고 특히 형사 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더욱 천천히 진행되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법원이 SK컴즈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관하여 선고한 판결은 사고의 추억이 휘발되기도 전에 1차 결론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특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시피 SK컴즈가 운영하는 싸이월드와 네이트온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 약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외부 해커의 침입에 의하여 유출되었다는 것이 알려진 대략의 개요이다. 그런데 SK컴즈가 운영하는 서비스의 회원이면서 변호사이기도 한 위 사건의 원고는 해킹 사고로 인하여 자신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3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총 3회의 재판(변론기일)을 거친 후 법원은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매우 무미건조하기는 하지만 위 법원이 동일한 소송이 제기된 다른 여러 재판부들을 제치고 가장 빠른 속도로 판결을 내리면서 어떤 논리구조를 구성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즉, 원고는 피고 회사의 회원이고 피고 회사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하여 원고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데, 관련 법에 따르면 피고가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피고는 재판 과정에서 과실을 입증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험칙 상 개인정보의 유출로 원고가 손해를 입은 것은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
일견 살펴보면, 1심 법원 판단의 논리는 잘 짜여진 3단 논법의 틀 안에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 같다. 과연 그러할까? 판결문의 논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련 법 규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전문가조차도 명칭 전부를 실수 없이 외우기는 어려운 이 법에서는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여 개인정보가 누출되어 손해를 입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원은 과연 피고가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였는지 여부를 따져 보았을까? 유감스럽게도 판결문에는 이 점에 대한 단 한 마디의 언급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즉,법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하여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회사가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지만, 그 전제로서 회사가 법에서 정하고 있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만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고 있기에, 적어도 회사가 자신이 응당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법원은 증거를 가지고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한 이후 경찰에서는 회사가 자신이 응당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지난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수사를 진행하여 왔고, 조만간 그 결론이 내려지리라 예상된다. 경찰에서 수사한 결과가 발표되면 구체적으로 회사가 어떤 의무를 지키지 않았는지, 아니면 모든 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잠정적이라도 그 결론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법원은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물론, 법원은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하여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용자들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였을 것이다. 재판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겠지만, 10~2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받기 위해서 낯선 법정에 수십 차례에 걸쳐 출석하기보다는 조금 적게 받더라도 재판을 짧게 하는 것이 이용자들이 더 원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용자들도 정식의 재판 절차를 통하여 자신들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고 싶지 않았을까.
무릇 재판은 당사자의 억울함을 공정한 판단을 통하여 해결하여 주는 절차이고, 각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재판 과정에서 모두 다 할 수 있고 또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법원에서 공판중심주의나 구술심리주의와 같은 원칙을 세워 서류가 아닌 법정에서 당사자들이 하는 말을 더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전자파일로 서류를 제출할 수 있게 하는 전자소송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모두 그와 같은 과정의 일환이다.개인정보의 유출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원고의 억울함을 한시라도 바삐 배상해 주겠다고 결정한 이 법원의 판단에서 단순히 위자료가 목적이 아니라 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이용자들의 희망에 대한 고려는 있었던 것일까. 동일하게 제기된 다른 20여건의 소송의 재판부 또한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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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시피 SK컴즈가 운영하는 싸이월드와 네이트온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 약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외부 해커의 침입에 의하여 유출되었다는 것이 알려진 대략의 개요이다. 그런데 SK컴즈가 운영하는 서비스의 회원이면서 변호사이기도 한 위 사건의 원고는 해킹 사고로 인하여 자신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3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총 3회의 재판(변론기일)을 거친 후 법원은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매우 무미건조하기는 하지만 위 법원이 동일한 소송이 제기된 다른 여러 재판부들을 제치고 가장 빠른 속도로 판결을 내리면서 어떤 논리구조를 구성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즉, 원고는 피고 회사의 회원이고 피고 회사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하여 원고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데, 관련 법에 따르면 피고가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피고는 재판 과정에서 과실을 입증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험칙 상 개인정보의 유출로 원고가 손해를 입은 것은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
일견 살펴보면, 1심 법원 판단의 논리는 잘 짜여진 3단 논법의 틀 안에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 같다. 과연 그러할까? 판결문의 논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련 법 규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전문가조차도 명칭 전부를 실수 없이 외우기는 어려운 이 법에서는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여 개인정보가 누출되어 손해를 입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원은 과연 피고가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였는지 여부를 따져 보았을까? 유감스럽게도 판결문에는 이 점에 대한 단 한 마디의 언급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즉,법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하여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회사가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지만, 그 전제로서 회사가 법에서 정하고 있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만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고 있기에, 적어도 회사가 자신이 응당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법원은 증거를 가지고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한 이후 경찰에서는 회사가 자신이 응당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지난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수사를 진행하여 왔고, 조만간 그 결론이 내려지리라 예상된다. 경찰에서 수사한 결과가 발표되면 구체적으로 회사가 어떤 의무를 지키지 않았는지, 아니면 모든 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잠정적이라도 그 결론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법원은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물론, 법원은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하여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용자들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였을 것이다. 재판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겠지만, 10~2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받기 위해서 낯선 법정에 수십 차례에 걸쳐 출석하기보다는 조금 적게 받더라도 재판을 짧게 하는 것이 이용자들이 더 원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용자들도 정식의 재판 절차를 통하여 자신들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고 싶지 않았을까.
무릇 재판은 당사자의 억울함을 공정한 판단을 통하여 해결하여 주는 절차이고, 각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재판 과정에서 모두 다 할 수 있고 또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법원에서 공판중심주의나 구술심리주의와 같은 원칙을 세워 서류가 아닌 법정에서 당사자들이 하는 말을 더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전자파일로 서류를 제출할 수 있게 하는 전자소송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모두 그와 같은 과정의 일환이다.개인정보의 유출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원고의 억울함을 한시라도 바삐 배상해 주겠다고 결정한 이 법원의 판단에서 단순히 위자료가 목적이 아니라 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이용자들의 희망에 대한 고려는 있었던 것일까. 동일하게 제기된 다른 20여건의 소송의 재판부 또한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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