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섬세함·치밀한 전문성 겸비
"국부 창출에 한몫"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중앙부처 최초로 기술직 여성 1급 기관장에 오른 김혜원 기술표준원장을 만나기 전까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이다. 지난 3일 늦은 오후. 경기도 과천에 있는 기술표준원에서 만난 김 원장은 "아직 업무 파악도 다 못했는데 인터뷰가 너무 이른 것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20일 인사가 있었으니, 원장이 된 지 보름이 채 안된 것이다.
"아직 대전에서 짐도 다 가져오지 못했어요. 취임하자마자 일정이 빠듯하니 짐 정리할 시간도 없네요. 남자들은 부인이 다 알아서 해줄 텐데…." 취임 소감을 묻자 김 원장은 `1호'라는 타이틀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피력했다.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여성 우대나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라는 최근 정부 시책의 전폭적 수혜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간 흘려온 땀과 노력의 대가라는 당당함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그에게 `1호'라는 타이틀은 전혀 낯설지 않다. 특허청 내에서도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기술직 여성공무원의 신화를 창조한 주역이다. 김 원장은 이화여고ㆍ서울대 약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원자력연구소를 거쳐 1978년 특허청 1호 여성사무관으로 특채된 이후 1994년까지 17년간 `홍일점 여성심사관'으로 생활했다. 이어 1999년에는 최초 여성 부이사관 및 국장 승진, 2002년에는 최초 여성이사관으로 승진하는 등 최근까지 27년 간 특허 심사ㆍ심판분야에서 몸담으며 두각을 나타내왔다.
하지만 김 원장은 "겉으로 보기엔 승승장구한 듯 보이지만 여성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사무관 시절 고생한 얘기를 하려면 눈물이 앞선다고 했다. "여성심사관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여자에 대한 편견이 심했습니다. 연수 기회를 얻을라치면 여자는 승진도 못할텐데 연수과정엔 왜 들어가려 하느냐 등 사방에 온통 장애물 천지였어요."
그는 그 때부터 야근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업무에서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오기에서다. 일 하느라 10년 동안 휴가 한 번 안 갔고, 결혼도 3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보통 밤 10~11시까지 야근을 하니 처음엔 남편이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하루는 야근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남편이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관공서하면 떠오르는 회색 캐비넷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산더미 같은 서류에 파묻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대로 그만두게 하면 죽을 때 눈을 못 감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일 잘하라고 늘 격려해 주고 있어요."
눈물나는 시절을 이겨낸 뒤 과장이 되고 나서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하나둘씩 열리게 됐다고 한다. 그동안 여성에 대한 주변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고, 전문성이 중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계기가 잦아졌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의약ㆍ화학ㆍ생명공학 분야 등 수많은 특허분쟁을 처리하는 동안 상급법원인 특허법원 및 대법원 승소율이 거의 100%에 달해 `동방불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한 일 처리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1987년 `캡토프릴'이라는 고혈압 치료제를 둘러싼 한ㆍ미간 특허분쟁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보령제약이 자체 개발한 고혈압 치료제(캡토프릴)에 대해 미국 시퀴브사가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 정부에 보복조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한 사건을 맡아 보령제약의 승소를 이끌어 낸 것이다.
김 원장은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항상 자기관리와 책임의식이 철저하며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업무 스타일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기술표준원장이 되고서는 평소 자주 읽던 `CEO 징기스칸' `최고경영자 예수' `리더가 되는 길' 등 경영 및 리더십과 관련된 서적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집에서 싱크대 파이프가 고장나서 청계천을 돌아다녔는데, 오래된 미국 제품이라서 맞는 것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속으로 `국가 간에 표준규격이 있으면 이런 불편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지요. 공교롭게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 달쯤 지나 기술표준원장으로 오게 됐네요."
그는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그간 수행해 온 특허청 업무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어 한시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허심판도 산업 전 분야를 다루는 것이고, 표준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기준을 두고 맞느냐 안 맞느냐를 가리는 것들이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무역 확대를 통해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데 표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조직이 건전한 `긴장'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희종기자@디지털타임스
"국부 창출에 한몫"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중앙부처 최초로 기술직 여성 1급 기관장에 오른 김혜원 기술표준원장을 만나기 전까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이다. 지난 3일 늦은 오후. 경기도 과천에 있는 기술표준원에서 만난 김 원장은 "아직 업무 파악도 다 못했는데 인터뷰가 너무 이른 것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20일 인사가 있었으니, 원장이 된 지 보름이 채 안된 것이다.
"아직 대전에서 짐도 다 가져오지 못했어요. 취임하자마자 일정이 빠듯하니 짐 정리할 시간도 없네요. 남자들은 부인이 다 알아서 해줄 텐데…." 취임 소감을 묻자 김 원장은 `1호'라는 타이틀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피력했다.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여성 우대나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라는 최근 정부 시책의 전폭적 수혜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간 흘려온 땀과 노력의 대가라는 당당함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그에게 `1호'라는 타이틀은 전혀 낯설지 않다. 특허청 내에서도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기술직 여성공무원의 신화를 창조한 주역이다. 김 원장은 이화여고ㆍ서울대 약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원자력연구소를 거쳐 1978년 특허청 1호 여성사무관으로 특채된 이후 1994년까지 17년간 `홍일점 여성심사관'으로 생활했다. 이어 1999년에는 최초 여성 부이사관 및 국장 승진, 2002년에는 최초 여성이사관으로 승진하는 등 최근까지 27년 간 특허 심사ㆍ심판분야에서 몸담으며 두각을 나타내왔다.
하지만 김 원장은 "겉으로 보기엔 승승장구한 듯 보이지만 여성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사무관 시절 고생한 얘기를 하려면 눈물이 앞선다고 했다. "여성심사관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여자에 대한 편견이 심했습니다. 연수 기회를 얻을라치면 여자는 승진도 못할텐데 연수과정엔 왜 들어가려 하느냐 등 사방에 온통 장애물 천지였어요."
그는 그 때부터 야근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업무에서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오기에서다. 일 하느라 10년 동안 휴가 한 번 안 갔고, 결혼도 3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보통 밤 10~11시까지 야근을 하니 처음엔 남편이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하루는 야근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남편이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관공서하면 떠오르는 회색 캐비넷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산더미 같은 서류에 파묻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대로 그만두게 하면 죽을 때 눈을 못 감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일 잘하라고 늘 격려해 주고 있어요."
눈물나는 시절을 이겨낸 뒤 과장이 되고 나서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하나둘씩 열리게 됐다고 한다. 그동안 여성에 대한 주변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고, 전문성이 중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계기가 잦아졌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의약ㆍ화학ㆍ생명공학 분야 등 수많은 특허분쟁을 처리하는 동안 상급법원인 특허법원 및 대법원 승소율이 거의 100%에 달해 `동방불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한 일 처리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1987년 `캡토프릴'이라는 고혈압 치료제를 둘러싼 한ㆍ미간 특허분쟁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보령제약이 자체 개발한 고혈압 치료제(캡토프릴)에 대해 미국 시퀴브사가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 정부에 보복조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한 사건을 맡아 보령제약의 승소를 이끌어 낸 것이다.
김 원장은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항상 자기관리와 책임의식이 철저하며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업무 스타일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기술표준원장이 되고서는 평소 자주 읽던 `CEO 징기스칸' `최고경영자 예수' `리더가 되는 길' 등 경영 및 리더십과 관련된 서적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집에서 싱크대 파이프가 고장나서 청계천을 돌아다녔는데, 오래된 미국 제품이라서 맞는 것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속으로 `국가 간에 표준규격이 있으면 이런 불편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지요. 공교롭게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 달쯤 지나 기술표준원장으로 오게 됐네요."
그는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그간 수행해 온 특허청 업무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어 한시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허심판도 산업 전 분야를 다루는 것이고, 표준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기준을 두고 맞느냐 안 맞느냐를 가리는 것들이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무역 확대를 통해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데 표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조직이 건전한 `긴장'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희종기자@디지털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