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진이(眞e)의 시베리아 여행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TSR)의 종착역은 모스크바였지만, 저는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 호수를 보려고 시베리아의 중심인 이르쿠츠크에서 내렸습니다.
이르쿠츠크는 유형지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도시입니다. 최근에는 이르쿠츠크와 우리나라를 잇는 가스관 공사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르쿠츠크의 풍부한 자원 중 하나인 가스가 중국 만주 지역과 북한을 지나 우리나라로 들어올 날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직 북한·러시아·중국 등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풀리지 않아 구체적인 건설작업이 시작되지는 않았지요.
■8월 24일 울란우데를 너머
하루종일 달렸습니다. 차창 밖 하늘, 타이가(울창한 침엽수림), 산과 강은 단조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게 조합돼 눈앞을 스쳐갑니다. 간간이 보이는 ‘다차’(러시아인의 시골 별장)를 보면 불쑥 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다차에 가서 러시아 사람들의 여유를 맛보고 싶어서지요. 오후 5시 TSR이 중국의 베이징과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거쳐오는 TCR(중국 횡단열차)와 만나는 울란우데역에 도착했습니다. 울란우데는 몽골의 피가 흐르는 소수민족 부리야트족이 많이 삽니다. 꼭 우리처럼 생겼군요.
■8월 25일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에 오니 다시 서울시간대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1시 데카브리스트(12월 혁명주의자) 기념관.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배경에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데카브리스트가 있습니다.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던 날, 반란을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들이 혁명에 실패한 후 이곳으로 유배됐거든요. 프랑스에 영향을 많이 받는 데카브리스트들이 이곳에 프랑스풍의 문화를 꽃피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감동스러운 것은 모스크바의 부귀영화 대신 사랑을 택해 시베리아라는 혹독한 유형지로 따라나선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이야기네요.
시베리아에서 해보면 좋을 것이 ‘반야’(사우나)에 가는 것입니다. 참나무로 만든 사우나에서 땀을 뺀 후, 자작나무 가지로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는 것이 시베리아 방식입니다. 그리고는 앙가라 강으로 뛰어들죠. 여행의 피로를 한번에 날릴 수 있는 즐거운 경험입니다.
■8월 26일 바이칼에 가다
나이 2500만살에 둘레 2000㎞, 길이 636㎞. 2600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 곳. 호수임에도 아른하게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바이칼호에 섰습니다. 우주선에서 보면 지구의 푸른 눈처럼 보인다데요. 사실 호수의 크기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입니다. 정수하지 않고도 바로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랍니다. ‘보꼬쁠라프’라는 새우처럼 생긴 갑각류가 물속의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먹어치운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보꼬쁠라프는 바이칼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좋습니다.
바이칼에선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오물’(Omul)이라는 생선이 있어요. 은어와 흡사하게 생겼는데, 맛이 무척 담백하고 값도 싸지요. 위치와 시간대마다 바뀌는 풍경, 깨끗한 물, 감칠맛 나는 오물 때문에 10년은 젊어진 느낌입니다.
바이칼에 오면 듣게 되는 전설이 있습니다. 호수 바이칼과 강 앙가라에 관한 전설입니다. 바이칼에는 336명의 아들과 외동딸 앙가라가 있었는데요, 바이칼은 앙가라를 이르쿠트라는 용감한 청년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앙가라는 북쪽에 있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사랑했다는군요. 앙가라는 바이칼이 잠자는 사이에 예니세이에게 도망을 쳤는데, 바이칼이 잠에서 깨어 딸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큰 바위를 던졌다고 합니다. 딸 앙가라는 그 바위에 맞아 죽었는데요, 이후 앙가라는 예니세이에 대한 연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이곳에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애틋하게 만드는군요.
저녁 시간엔 러시아 먹거리의 대표격인 ‘샤슬릭’(러시아식 바베큐)을 맛봤습니다. 양념한 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은 샤슬릭에 보드카를 한잔 곁들이니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군요.
■8월 27일
아침 7시50분 하바로브스크행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어,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새벽의 시베리아를 가르며 공항으로 갔지만 비행기는 9시간 후인 오후 4시50분에야 이륙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누구나 기다림을 배우게 된다더니, 오늘이 그 날입니다.
하루종일 기다리다 진이 다 빠졌습니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마지막 날이란 아쉬움에 하바로프스크에서 밤이 늦었음에도 아무르강으로 향했습니다. 유학중 방학을 이용해 여행가이드 일을 하는 샤샤와 고려인 에릭과 맥주를 주고 받으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시베리아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아침이 다가오고 있더군요.
■8월 28일
오후 3시 OZ 571편. 짧은 시베리아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여행 중에 세계 정치를 미국과 양분했던 강대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러시아의 잠재력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속의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러시아 여인이 레닌동상 앞을 지나는 광경도 가슴에 남습니다. 그렇게 시베리아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 여행을 마치며
진이가 시베리아에 간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느끼고 있던 세상의 틀과는 다른 새로움을 맛보고 싶어서였지요. 효과는 만점이었습니다. 다양성이 디지털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오프라인 세상도 퍽 여러 모습이더군요. 세상을 단 하나의 잣대로만 보아왔던 경직된 사고가 다소 풀어졌습니다. 이제는 오프라인 세상도 온라인 세상도 모두 좀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르쿠츠크는 유형지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도시입니다. 최근에는 이르쿠츠크와 우리나라를 잇는 가스관 공사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르쿠츠크의 풍부한 자원 중 하나인 가스가 중국 만주 지역과 북한을 지나 우리나라로 들어올 날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직 북한·러시아·중국 등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풀리지 않아 구체적인 건설작업이 시작되지는 않았지요.
■8월 24일 울란우데를 너머
하루종일 달렸습니다. 차창 밖 하늘, 타이가(울창한 침엽수림), 산과 강은 단조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게 조합돼 눈앞을 스쳐갑니다. 간간이 보이는 ‘다차’(러시아인의 시골 별장)를 보면 불쑥 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다차에 가서 러시아 사람들의 여유를 맛보고 싶어서지요. 오후 5시 TSR이 중국의 베이징과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거쳐오는 TCR(중국 횡단열차)와 만나는 울란우데역에 도착했습니다. 울란우데는 몽골의 피가 흐르는 소수민족 부리야트족이 많이 삽니다. 꼭 우리처럼 생겼군요.
■8월 25일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에 오니 다시 서울시간대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1시 데카브리스트(12월 혁명주의자) 기념관.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배경에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데카브리스트가 있습니다.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던 날, 반란을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들이 혁명에 실패한 후 이곳으로 유배됐거든요. 프랑스에 영향을 많이 받는 데카브리스트들이 이곳에 프랑스풍의 문화를 꽃피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감동스러운 것은 모스크바의 부귀영화 대신 사랑을 택해 시베리아라는 혹독한 유형지로 따라나선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이야기네요.
시베리아에서 해보면 좋을 것이 ‘반야’(사우나)에 가는 것입니다. 참나무로 만든 사우나에서 땀을 뺀 후, 자작나무 가지로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는 것이 시베리아 방식입니다. 그리고는 앙가라 강으로 뛰어들죠. 여행의 피로를 한번에 날릴 수 있는 즐거운 경험입니다.
■8월 26일 바이칼에 가다
나이 2500만살에 둘레 2000㎞, 길이 636㎞. 2600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 곳. 호수임에도 아른하게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바이칼호에 섰습니다. 우주선에서 보면 지구의 푸른 눈처럼 보인다데요. 사실 호수의 크기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입니다. 정수하지 않고도 바로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랍니다. ‘보꼬쁠라프’라는 새우처럼 생긴 갑각류가 물속의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먹어치운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보꼬쁠라프는 바이칼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좋습니다.
바이칼에선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오물’(Omul)이라는 생선이 있어요. 은어와 흡사하게 생겼는데, 맛이 무척 담백하고 값도 싸지요. 위치와 시간대마다 바뀌는 풍경, 깨끗한 물, 감칠맛 나는 오물 때문에 10년은 젊어진 느낌입니다.
바이칼에 오면 듣게 되는 전설이 있습니다. 호수 바이칼과 강 앙가라에 관한 전설입니다. 바이칼에는 336명의 아들과 외동딸 앙가라가 있었는데요, 바이칼은 앙가라를 이르쿠트라는 용감한 청년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앙가라는 북쪽에 있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사랑했다는군요. 앙가라는 바이칼이 잠자는 사이에 예니세이에게 도망을 쳤는데, 바이칼이 잠에서 깨어 딸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큰 바위를 던졌다고 합니다. 딸 앙가라는 그 바위에 맞아 죽었는데요, 이후 앙가라는 예니세이에 대한 연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이곳에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애틋하게 만드는군요.
저녁 시간엔 러시아 먹거리의 대표격인 ‘샤슬릭’(러시아식 바베큐)을 맛봤습니다. 양념한 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은 샤슬릭에 보드카를 한잔 곁들이니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군요.
■8월 27일
아침 7시50분 하바로브스크행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어,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새벽의 시베리아를 가르며 공항으로 갔지만 비행기는 9시간 후인 오후 4시50분에야 이륙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누구나 기다림을 배우게 된다더니, 오늘이 그 날입니다.
하루종일 기다리다 진이 다 빠졌습니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마지막 날이란 아쉬움에 하바로프스크에서 밤이 늦었음에도 아무르강으로 향했습니다. 유학중 방학을 이용해 여행가이드 일을 하는 샤샤와 고려인 에릭과 맥주를 주고 받으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시베리아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아침이 다가오고 있더군요.
■8월 28일
오후 3시 OZ 571편. 짧은 시베리아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여행 중에 세계 정치를 미국과 양분했던 강대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러시아의 잠재력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속의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러시아 여인이 레닌동상 앞을 지나는 광경도 가슴에 남습니다. 그렇게 시베리아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 여행을 마치며
진이가 시베리아에 간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느끼고 있던 세상의 틀과는 다른 새로움을 맛보고 싶어서였지요. 효과는 만점이었습니다. 다양성이 디지털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오프라인 세상도 퍽 여러 모습이더군요. 세상을 단 하나의 잣대로만 보아왔던 경직된 사고가 다소 풀어졌습니다. 이제는 오프라인 세상도 온라인 세상도 모두 좀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