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구매력 평가 고려한 물가 수준 통계, 한국 147
정부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외식 등 물가 정조준
전문가 "물가 단기 대책 뿐만 아닌 구조적인 문제도 고쳐야"
실질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국의 음식료품 물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위스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치솟은 밥상물가를 잡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범부처 대책을 마련하고, 가공식품 가격 인상과 관련해서는 불공정행위가 있었는지 들여다 볼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농산물 등 유통 구조 전반에 대한 감시와 제도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5일 정부 등에 따르면 기재부를 중심으로 한 범부처 물가 대책이 마련 중이다. 정부는 계란과 가공식품 등 급등한 먹거리 물가가 핵심 타깃이다. 정부의 물가 대책 가운데 하나로, 농·축·수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대형마트, 전통시장, 온라인몰 등 유통 채널별 정부 지원 할인 확대 방안이 거론된다. 또 수급 불안 품목은 비축 물량을 조기 방출하고, 산지 공급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시기별 수급 불안을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할당관세를 확대 적용하는 대책도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식품업계의 가격 행태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회의에서 "라면이 진짜 2000원이냐"고 물으며 가공식품 업계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연이어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도 청문회를 거치기 전부터 식품 관련 협회와 소비자 단체를 만나 '밥상 물가안정 경청 간담회'를 주재하며 "거래의 불투명성을 이유로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와 시장의 합리화 방향에서 고쳐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권 초반부터 물가를 확실히 잡겠다는 강경한 기조가 분명히 드러난 대목이다.
글로벌 기준으로 봐도 한국의 물가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OECD의 구매력 평가(PPP)를 고려한 물가 수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비주류 음료 가격 수준은 2023년 기준 147로 OECD 평균(100)보다 47% 높았다. PPP 기준 물가지수는 경제 규모나 환율 차이를 보정해 국가 간 물가 수준을 비교할 수 있게 만든 지표로,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을 반영한 수치로도 해석된다.
이 지표에서 한국은 OECD 38개국 중 스위스(163)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음식료품 물가를 기록했다. 경제 규모가 큰 미국(94)이나 일본(126), 영국(89) 독일(107) 등도 한국보다 음식료품 물가가 낮았다. 한국의 의복과 신발 물가지수 역시 137로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했다. 의복·신발 부문 역시 137로 평균을 크게 웃돌았고, 교육 물가도 110으로 높은 수준이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먹고 입는 등 기본 생활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농축수산물 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과 함께 구조적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식품 공급망에서의 물가 결정요인 분석' 연구에 따르면 정부가 농산물 물가를 관리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로 '식료품 가격의 변동성'이 꼽혔다.
이어 '타 산업에 대한 물가 파급 영향', '가구당 식료품 평균 지출 비율' 등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농산물 가격은 단일 품목 문제가 아닌 산업 간 연쇄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정교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유창권 대전대 물류통상학과 교수는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인해 원유가 올라가고, 환율 변동 등 외생적으로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문제는 소비가 위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인데, 만약 소비가 진작되면 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할당관세를 낮추거나, 유류세 인하 등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물가를 잡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농업계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보고, 장기적으로 농업의 생산성을 끌어 올려 물가를 잡는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세종=강승구기자 kang@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