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미국이 관세를 인하해도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0%대를 탈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놨다. 부진한 내수는 점차 회복되겠지만 그 속도가 더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한은은 경기 부양을 위해 일단 기준금리를 연 2.5%로 0.25%포인트(p) 인하했다. 그러나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우려에 금리를 대폭 낮추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은은 29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제시했다. 지난 2월 전망치보다 0.7%p를 단숨에 낮추며 거의 반토막을 냈다. 2000년대 이후 경제 성장률이 0%대를 기록한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과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0.7%) 등 두 차례뿐이다.
한은은 올해 전망치를 2023년 11월(2.3%) 이후 지난해 5월(2.1%), 11월(1.9%), 올해 2월(1.5%) 등으로 지속해서 낮춰왔다.
현재 한국 수출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견조하지만 자동차, 철강,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13대 주력산업 중 9개 산업에서 저조한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연간 수출은 전년 대비 2.1% 감소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내수도 민간소비·건설투자·설비투자 등이 모두 부진해 조기 반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간소비는 전년 대비 1.0% 성장세에 그쳤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마이너스 3.0%를 기록한 부진이 올해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내린 주요인으로는 건설부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며 "성장률 전망치를 0.4%p 정도 낮추게 했다"고 말했다. 민간소비가 성장률을 0.15%p 정도, 수출이 추가로 0.2%p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도 덧붙였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8%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 경제가 전례 없이 2년 연속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저성장이 고착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본 것이다.
한은은 성장률을 전망하면서 미국이 기본 관세율 10%, 품목 관세율 25% 등 현 수준을 대체로 유지할 것으로 가정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재점화하고, 미국 상호관세가 90일 유예 기간 후 절반 정도 다시 높아질 경우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0.7%, 1.2%로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 관세율이 올해 말까지 상당 폭 인하될 경우 올해 0.9%, 내년 1.8%로 성장률이 각각 높아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대미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돼도 올해 성장률이 1%를 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주형연기자 jhy@dt.co.kr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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