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美 맞서는 中 `기술굴기`…화웨이 R&D 산실 가보니

입력: 2025-05-26 17:31 김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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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의 화웨이 본사. 김나인 기자

'인공지능(AI)과 5.5G로 산업 혁신을 이루겠다.'

지난 23일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화웨이 반톈(Bantian) 캠퍼스'. 화웨이는 미국의 대중제재 압박에서 생존의 길로 '연구개발(R&D)'에 방점을 찍고 통신뿐 아니라 반도체 칩,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까지 기술자립도를 높이고 있다. 화웨이 반톈 캠퍼스는 R&D에 사활을 거는 화웨이의 핵심 철학이 실현되는 곳이다.

지하 1층에 위치한 '다윈홀' 전시관에는 화웨이의 제품과 솔루션, 활용 사업들을 전시해 초청받은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 2023년과 비교해 AI 서비스와 디지털전환(DX) 중소기업 적용 사례가 늘어난 점이 눈에 띄었다. 디지털 안테나 기반의 자동화된 네트워크 운영부터 AI 기반 서비스 고도화, 매시브 다중입출력(MIMO) 기술을 통한 커버리지 전략 등 통신 인프라의 발전 방향도 제시됐다.

화웨이는 자사 AI 모델 '팡구'와 '딥시크' 기술을 기반으로 자체 AI 어시스턴트인 '하모니 인텔리전스'를 통해 통합된 경험을 제공한다. 휴대전화에 시작된 음성명령을 차량에서도 구현하는 등 하모니 생태계를 활용해 멀티 디바이스 연동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모니 기반 AI 어시스턴트는 "이제 곧 퇴근이야"라고 말하면 콜택시를 불러준다. 평소 일정을 분석해 차가 막혀 집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저녁을 먹고가라'고 제안도 해준다.

유럽 도시를 본뜬 화웨이의 연구개발기지인 둥관 시춘 캠퍼스. 김나인 기자

'디지털 휴먼 스트리머' 서비스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시행하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사람이 아닌 가상 인물이 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가상인간인 만큼 24시간 스트리밍이 가능해 콘텐츠 제작이 용이하다는 설명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도 있다. 시간이 파편화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면 책 내용을 동영상으로 전달해 제공해준다. 아직 시도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향후 상용화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음성 기반 통신 서비스에서도 AI가 본격 도입되고 있다. 화웨이는 통신사들의 핵심 서비스인 음성 통화에 AI 통역, 자막 지원, 다중모달 영상 통화 기능을 접목한 '보이스+AI' 기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외국인이나 고령층,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사 앱 내 AI 개인비서, 클라우드 기반 사진 분류, AI 상담 챗봇 등의 기술을 통해 가입자당평균수익(ARPU)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실제 중국 차이나모바일은 이 기술 도입 이후 AI 기반 월간 음성 사용자 230만명, AI 앱 20종 이상을 운용 중이다.

5G 핵심 기술인 MIMO 기반 커버리지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700㎒ 저대역부터 3.5㎓ 중대역까지 전대역을 아우르는 매시브 MIMO를 통해 기존 대비 5배의 용량, 2배의 커버리지, 5배의 사용자 경험 개선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100개 이상 네트워크에 상용 적용 중이다. 특히 대형 실내 공간, 고층 건물, 외곽 농촌 등 환경별로 특화된 안테나 솔루션도 제시해 맞춤형 네트워크 설계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화웨이의 디지털전환(DX)이 그간 항만, 공장 등에 접목했다면 올해는 중소기업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가령 중국 편의점인 허마·샘스클럽에 소형 5G 기지국을 설치해 창고의 물건을 태그를 통해 실시간 관리가 가능하다. 창고 재고 관리를 자동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셈이다. 이용자 방문시 로봇이 필요한 물건을 바로 찾아주는 AI 안내를 할 수도 있다.

보안 위협에도 AI 분석으로 대응한다. 화웨이 관계자는 "AI 기반의 딥시크는 출시 당시 디도스 공격을 받은 바 있지만 보안업체 파트너십으로 공격 포인트를 자동 탐지하고 위협 발생시 메모리 백업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도시를 본뜬 화웨이의 연구개발기지인 둥관 시춘 캠퍼스. 김나인 기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화웨이의 DX는 막대한 R&D로 이뤄졌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실제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 기업은 미국 기업 다음으로 R&D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2024 유럽연합(EU) R&D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중국의 R&D 투자액은 2158억유로(약 336조원)로 미국에 이어 2위였다. 꾸준한 R&D 성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이 중 중국 대표 ICT 기업 화웨이의 최근 10년간 누적 R&D 투자액은 1조2490억위안(약 238조원)에 달한다. 화웨이가 미국의 고강도 제재에도 지난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매출을 기록한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유럽식 건물을 본뜬 화웨이 연구개발기지인 둥관 시춘 캠퍼스는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의 '서구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의지에서 조성됐다. 유럽의 고성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도 런정페이 회장은 흑조(블랙스완)를 사들여 예기치 못한 위기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블랙스완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악재'를 뜻한다. 화웨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는 리스크 대응 철학과 막대한 R&D 투자를 기반으로, 통신 장비 기업을 넘어 AI 반도체 칩까지 포괄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R&D 투자액은 425억유로(약 66조원)로 5위에 머무르는 실정이라 화웨이의 행보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전(중국)=김나인기자 silkni@dt.co.kr

화웨이 둥관 시춘 캠퍼스 모습. 야근을 하는 직원들이 야식을 먹는다는 공간. 김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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