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9시50분쯤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시사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를 찾았다. 제작·출연을 맡은 이영돈 PD와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가 윤 전 대통령의 양옆에 착석해 영화를 함께 관람했고 지지자들도 몰렸다. 윤 전 대통령은 전씨의 초대에 응해 시사회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며 옹호,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부정선거론을 설파하는 장외 집회를 벌여왔다. 이 PD는 영화에서 이번 6·3 대선에 투·개표 조작 부정선거가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총선 참패로 미래통합당 대표를 사퇴한 뒤 부정선거론에 집중해온 황교안 무소속 대선후보도 같은 상영관을 찾았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총출동했다.
부정선거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종식 후 주장해온 계엄선포 명분 중 하나다. 지지자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영상이 스크린에 비치자 박수치며 환호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4·10총선과 지난 2023년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스크린을 집중 응시했다. 국민의힘이 참패했던 선거다.
이날 윤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선 국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아연실색했다. 이날 오전 영화관람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의원 단체방에서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가능하신 의원들께서 간곡하게 만류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동훈 전 당대표는 '윤 어게인' 외에도 '부정선거 음모론' 극단세력과 결별을 촉구했다.
친한동훈계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제발 윤석열을 다시 구속해달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국민의힘 당내 강성파와 장외 자유통일당·유튜버들의 전유물에 그치지 않는다. 유권자에게 사전투표 거부감을 넘어선 '투표 포기·무용론'을 불러와 대선 총력전 중인 제도권 정당에 '겹악재'인 셈이다.
국민의힘은 집권 2~3년차부터 '윤석열 리스크'에 짓눌려왔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5월 집행유예 확정으로 직을 상실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그해 8·15 특사로 사면·복권시키고 10월 보궐선거 여당 후보로 재출마하게 했다. 이는 2022년 지방선거 때와는 정반대의 참패를 불러왔다. 이어진 수도권 위기론으로 윤심(尹心)으로 불리던 김기현 지도부의 사퇴로 이어졌다.
대안으로 2023년말 한동훈 법무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차출했지만 '윤 리스크'는 끊이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 수뢰 의혹 대응과 '한동훈 사퇴' 압박,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강행, '채 해병 순직 수사 은폐 의혹' 출국금지 중이던 이종섭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수석비서관 '언론인 회칼' 발언, "대파 한단 875원" 발언 등이 이어졌다.
총선 결과는 범야권에 192석을 안긴 대패였다. 정작 패배의 일등공신인 윤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 탓을 하며 비상계엄까지 내달렸다. 그 결과 본인은 탄핵되어 내란죄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 신분이 되었고, 국민의힘은 갑자기 열린 조기대선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탈당을 선언하면서도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백의종군한다"며 비상계엄에 대한 사죄 한 마디 하지 않아 국민의힘을 떨게 했다.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신하며 국민의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세간에서 '이재명의 수석선대위원장'이라 조롱받고 있다. '비명횡사' 공천으로 위기에 빠진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총선에서 살려낸 것도 윤 전 대통령이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한 이 후보를 살려내고 졸지에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선 후보로 밀어준 것도 윤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12·3 비상계엄 위헌으로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영돈 PD, 윤 전 대통령,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공동취재·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