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에 이어 또 다른 중국 배터리 업체인 고션 하이테크(Gotion High-Tech)가 전고체 배터리 '젬스톤(사진)'의 파일럿 라인 가동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배터리에 못을 박아도 화재가 나지 않는 등의 안전 기술을 강조했지만, 업계에서는 기술적 완성도와 가격 경쟁력 등에서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21일 외신 등에 따르면 고션 하이테크는 0.2GWh 규모의 자사 전고체 배터리인 젬스톤의 파일럿 생산라인 가동에 돌입했다. 폭스바겐의 파트너사이기도 한 고션 하이테크는 모든 생산 장비를 국산화한 이 젬스톤을 이미 차량에 탑재해 공공도로에서 시험 주행을 마쳤다고 강조했다.
젬스톤 전고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350Wh/kg, 800Wh/l로 기존 NMC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약 40% 높다. 이번에는 여기에 365일간의 검증을 거쳐 젬스톤 셀의 용량을 150%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기준이 되는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고션 하이테크는 젬스톤이 완전한 '전고체(all-solid-state)' 배터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부 업체들이 젤형이나 반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반고체 배터리를 전고체로 마케팅하는 것과 달리 완전히 고체 전해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고션 하이테크는 젬스톤 셀이 개발 단계에서 못 찌르기, 과충전, 기계적 압착, 열 스트레스 테스트 등 필수 안전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배터리 셀의 안전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조치로 내년 7월 1일부터 적용될 전기차 배터리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통상 실도로 주행 테스크를 마친 후 파일럿 생산에서 소규모 양산까지는 1년에서 3년가량이 소요된다. 고션은 젬스톤을 2027년경에 소규모 양산에 돌입해 2030년부터 완성차업체에 정규 공급하는 대량 양산 단계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고션 하이테크의 전고체 배터리는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중국식 속도전의 단면으로 평가된다. 고션은 폭스바겐 등을 고객사로 둔 배터리 기업인 만큼 완성차 기업과의 협력, 정부 지원, 내수 공급망 등을 활용해 개발과 파일럿, 실증, 양산까지의 단계를 압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기술력과 폭넓은 포트폴리오와 안정적 연구 체계를 갖췄지만 상용화 속도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선두주자로 꼽히는 삼성SDI가 현재 2027년 황화물계 배터리의 양산을 목표로 파일럿 라인에서 샘플을 생산 중인 상황이다.
국내 업계는 이번 고션 하이테크의 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고션 하이테크가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가격 문제, 특허 문제, 기술 검증 과정, 글로벌 공급망과의 연계 부족 등 현실적인 벽이 많다는 것이다.
김영준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전고체 배터리를 자동차에 실증 테스트까지 했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연구용이나 소규모 파일럿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이라는 의미"라며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빠른 진행이라 좀 믿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전고체는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와 생산 공정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장비부터 재료, 수율까지 해결해야 할 기술 과제가 많다"며 "장비를 자체적으로 해결했다고는 해도 넘어야 할 벽이 많다"고 덧붙였다.
문장혁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도 "파일럿 라인이라고 해도 규모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며 이미 연구소 레벨에서는 수년 전부터 개발을 진행해왔을 것"이라며 "고션이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실제로 양산에 쓰려면 특허 회피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중국은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