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데이터가 과학혁명을 주도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얼마 전 발표된 노벨화학상은 AI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 새로운 단백질 설계를 함으로써 신약이나 새로운 물질 개발이 가능하도록 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3차원 단백질 구조 예측에 기여한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존 점퍼 수석연구원 등 3명에게 돌아갔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예측 프로그램인 '로제타폴드(RoseTTAFold)', 허사비스 CEO와 점퍼 연구원은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AlphaFold)'를 각각 개발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지난 5월 기존보다 50% 이상 빠르고, 특정 상호작용에서는 정확도가 2배까지 높아진 '알파폴드3'를 공개한 바 있다. 이는 '신약개발의 게임체인저'라고 불리며,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으면서 연구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AI와 만난 바이오 데이터, 신약 개발 공식 바꾸다
2020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생명공학 기업인 모더나가 바이오 데이터의 기계학습을 이용해 단 2일 만에 메신저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의 염기서열을 완성했다. 이어 25일 만에 코로나19 백신 의 첫 임상용 제품을 출시했다.
AI와 바이오 데이터의 결합을 통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실험 주기를 크게 단축하고, mRNA와 DNA 염기서열을 설계하며 품질관리를 자동화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AI와 바이오 데이터의 결합은 생명공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넓히고, 신약개발과 유전체 연구의 혁신을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 이 흐름을 이끄는 곳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다.
과기정통부는 바이오와 디지털 융복합 기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생명연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 주관으로 지난 8월 28일부터 10월 24일까지 '2024년 생명연구자원 AI활용 경진대회'를 진행했다. 암 환자의 유전체 데이터 변이 정보를 활용해 암종을 분류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대회로, 총 940개팀, 1680명이 참가해 높은 호응을 얻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AI 모델 성능에 대한 순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겨뤘다.
◇생명연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 'AI+바이오 혁신'의 엔진 역할
이번 경진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사용한 유전자 변이 데이터는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을 구축·운영하는 KOBIC(코빅)이 그간 확보한 다양한 암종의 유전체 데이터를 연구자들의 편의를 위해 가공한 데이터들이다. KOBIC은 활용이 용이한 가공 데이터를 경진대회에 제공해 보다 많은 참가자들이 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회 진입 문턱을 대폭 낮췄다. 이를 통해 바이오 연구 데이터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를 높이고자 하는 대회의 취지를 살렸다.
참가자들은 제공된 학습 데이터의 특성을 파악하고, 인공지능 모델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외부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거나 다양한 학습 방식을 적용하는 시행착오를 통해 알고리즘을 개발해 제출했다. 그 결과, 1차 인공지능 모델 성능 평가 점수와 2차 발표 점수를 합산해 최종적으로 4개팀이 수상하게 됐다. 최우수상인 과기정통부 장관상에는 유전자에 대한 돌연변이의 정보에 각 유전자들이 연관된 생물학 기작에 대한 가중치를 적용한 모델을 개발한 KAIST(한국과학기술원) 'ti_esti' 팀이 선정됐다. 우수상인 생명연 원장상에는 전남대학교 'dalcw', 장려상인 KOBIC 센터장상에는 KAIST '푹신한 이불'팀과 국민대학교·중앙대학교 연합팀인 'GIGO'팀이 선정됐다.
대회에 활용된 데이터는 올해 연말,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K-BDS)에서 제공될 예정이다. K-BDS에 제공되는 데이터는 민감한 정보가 포함되지 않아 간단한 절차를 통해 내려받을 수 있으며, 인공지능 학습용 자료 등 데이터 기반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K-BDS, 유전체·단백체·대사체·화합물·바이오이미징 데이터 '한 곳에'
과기정통부는 데이터 중심 바이오 연구 환경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바이오 R&D를 통해 생산되는 범부처 바이오 연구 데이터의 통합 수집·제공과 선진적인 데이터 활용 환경 조성을 위해 2021년부터 바이오 연구데이터 활용기반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경진대회를 주관한 KOBIC은 이 사업을 통해 범부처 바이오 연구데이터 통합 플랫폼인 'K-BDS'를 2021년부터 구축·운영해오고 있다. K-BDS는 국가 바이오R&D 사업에서 생산되는 바이오 전 분야의 연구데이터를 통합 수집·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유전체, 단백체, 대사체, 화합물, 바이오 이미징 분야의 전문가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5개 데이터 유형의 품질선도센터를 통해 데이터의 품질검증, 연구 컨설팅 등을 수행하며 글로벌 수준으로 품질이 관리된 바이오 데이터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유전체 분야는 미국 NCBI, EU의 EBI, 일본의 DDBJ 등 해외 유수의 데이터센터와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단백체 분야는 프로테오믹스이스체인지 등 글로벌 컨소시엄들과의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등 바이오 데이터 유형별 특성에 맞는 국제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해외 주요 저널과 협력해 국내 연구자들이 논문 투고용 데이터에 'K-BDS 등록번호'를 인용(24년 10월 기준, 누적 62편)할 수 있도록 논문 데이터의 저장소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인 디지털 분자지도 등 데이터 기반 첨단바이오 연구 활성화
과기정통부는 데이터 기반 첨단바이오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참조데이터 구축을 위한 '한국인 디지털 분자지도 구축사업'과 국가 R&D를 통해 개발된 데이터 플랫폼의 지속적인 활용 및 빅데이터 분석 컴퓨팅 인프라 지원을 위한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분석·활용 시너지 플랫폼 개발사업' 등을 내년 신규 사업으로 착수할 예정이다.
권현준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경진대회에 참가한 인재들이 우리나라의 바이오 연구와 산업현장에서 활약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며 "과기정통부는 범부처 바이오 연구데이터 통합플랫폼인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K-BDS)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준의 바이오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해 우리나라를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본 기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