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독은 서스펜디드 경기 재개 시점을 1차전은 물론, KS 전체 흐름을 가를 승부처 중의 승부처로 판단했다.
KIA는 지난 21일에 열린 KS 1차전에서 0-1로 뒤진 6회초 수비 때 무사 1, 2루 추가 실점 위기에 놓였다. 이 경기는 폭우로 서스펜디드게임(Suspended Game·일시정지 경기)이 됐다. 22일 같은 장소에서 펼쳐질 예정이었으나 다시 우천 순연돼 23일 오후 4시에 시작됐다.
삼성 타자는 좌타 거포 김영웅이었고, KIA는 이틀 동안 내세울 투수를 고르고 또 골랐다.
이범호 감독의 선택은 오른손 불펜 전상현(28)이었다. KIA엔 좌타자를 상대하는 '스페셜리스트' 좌완 투수 곽도규가 있었지만, 이범호 감독은 경험 많은 전상현에게 임무를 맡겼다. 김영웅이 번트를 시도할 경우 곽도규 카드를 날리게 된다는 계산도 깔렸다. 전상현은 후속 타자 박병호를 상대로 올 시즌 2타수 무안타, 윤정빈을 상대로 1타수 무안타로 호투하기도 했다.
패기 대신 경험과 안정을 택한 이범호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전상현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기 공을 던지며 최대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김영웅은 1볼 0스트라이크에서 전상현이 던진 첫 번째 공에 번트를 시도했고, 공이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 떨어지자 KIA 포수 김태군이 3루로 송구해 2루 주자 르윈 디아즈를 잡아냈다.
무사 1, 2루 위기는 1사 1, 2루가 됐고, 부담을 덜어낸 전상현은 더욱 힘껏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박병호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이후 윤정빈에게 볼넷을 허용해 2사 만루가 됐지만, 전상현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재현을 상대로 1볼 2스트라이크에서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던져 투수 앞 땅볼로 유도, 직접 잡아냈다.
전상현은 0-1로 뒤진 7회초 수비에도 등판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선두 타자 류지혁을 유격수 실책으로 내보낸 뒤 김지찬에게 희생 번트를 내줘 1사 2루 위기에 놓였으나 더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이틀 전 홈런포를 날린 김헌곤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임무를 마쳤다.
KIA는 전상현의 역투를 앞세워 삼성 더그아웃에 찬물을 끼얹은 뒤 7회말 공격에서 대거 4득점해 5-1로 역전승했다.
전상현은 이날 가장 중요한 순간에 1⅔이닝을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데일리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그는 시상식 후 마이크를 잡고 "아구하면서 KS에서 공을 던진 건 처음이고, 서스펜디드게임 역시 처음이었다"며 "재밌는 경기였다. 승리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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