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다름의 미학, `자세히 보면` 절로 아름다워지는 것들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김은아 라이프스케이프 크리에이터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다름의 미학, `자세히 보면` 절로 아름다워지는 것들

다름을 열등·우월로 나눠 경계심 유발
획일화된 공장형 시설·건축물로 통일
지역성·공간 특성 반영한 디자인으로
공간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 반영해야


모든 것에는 짝이 있다. 라면은 '계란 탁, 파 송송', 치킨에는 맥주, 파전에는 동동주…. 가구도 공간에 알맞은 위치와 용도가 있다. 식물도 싹이 트고 자라기 좋은 자리가 있고, 동물도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다. 적지적수(適地適樹), 맥락과 여건에 맞아야 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꼴뚜기는 젓갈로 만들어 갓 지은 따끈한 밥이나 콩나물국에 안성맞춤이고, 모과는 차로 만들어 마시거나 집안의 향기를 더하는 데 더없이 좋다. 망신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거죽이 못생겼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그 내용물이 천대를 당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뿐이다.

어린 시절 마른 멸치 손질하는 엄마 옆에서 우리 형제들은 꼴뚜기 찾기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멸치 손질하는 날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꼴값 못하는 꼴뚜기'가 어린 우리에게는 얼마나 특별한 먹거리였는지.

사회적 관념과 제도, 선입견과 편견에 익숙해지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려워진다. '다름'을 '열등'이나 '우월'로 딱지를 붙여버리면, 다름에 대한 차별과 무시, 심지어 두려움과 경계심마저 생기게 된다.

도시는 하나의 공간이자 물질로 이루어진 오브제이지만, 사실 도시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명사가 아닌 동사다. 물리적으로 수치화될 수 있는 거대한 부동산 덩어리이면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 곧 유기체로 계속 변화한다. 그러기에 도시는 그 내용과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다름의 미학, `자세히 보면` 절로 아름다워지는 것들
새마을운동으로 사라진 전통가옥이나 골목길 자리에는 깍두기처럼 반듯한 건축물과 콘크리트로 다져진 길들이 들어섰다. 근대화의 바람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흔적들을 만나게 되면 반갑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면 단위 소도시에서도 마을 가꾸기, 도시재생 사업을 한다. 인구 3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에서도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커뮤니티가 있는 삶을 제공하고 싶어 한다. 거리에 꽃을 매달아 놓거나 심어놓기도 한다. 꽃들은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육교나 가로등에 매달려 있는 것은 거의가 페튜니아고, 심겨 있는 것도 팬지, 데이지, 임파첸스 등이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공장형 식물들이다.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지역과 사람에게 어울리는 식물이 있다. 경관도 디자인도 결국 사람과 함께, 사람을 위해 녹아드는 것이다. 인기가 좋고 관리하기 편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보잘것없고 오래된 돌담 하나라도, 잘 다듬어 놓으면 아주 매력적인 도시공간이 된다. '다름'의 경쟁력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담벼락 밑으로 50센티쯤 되는 넓이로 화단이 늘어서 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담에는 소보루 빵 부스러기 같은 덩어리들이 오톨도톨 붙어있다. 족히 50년은 더 됐을 것 같은 낡은 담이다. 자갈로 정성스럽게 흙이 쓸려나가지 않도록 담을 쌓고, 덩굴이 타고 올라가기 좋도록 철망도 세워 놓았다. 굵은 나뭇가지들이 철망들을 이어주고 받쳐준다. 상추, 쏙 갓, 대파 같은 채소들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빨간 대야와 비료 포대에 채소들을 키워낸다. 담벼락 밑으로 비료 포대 텃밭들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땅값 비싸고 비좁은 대도시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면서도 정감 있는 경관이다. 공장형 디자인의 산물이 아니다. 현지의 재료와 환경에 알맞게 만들어낸,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근사한 '도시 디자인'이다.

서울 한복판에 비료 포대 텃밭을 만들면 꼴뚜기나 모과 취급을 받게 된다. 비료 포대 텃밭이나 자갈 화단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모습으로 디자인을 만들어 가느냐의 문제이다. 농촌에서야 비료 포대나 빨간 고무대야가 흔하지만, 도시에서는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니 도시와 농촌의 도시 디자인이 다를 수밖에 없고, 당연히 달라야 한다.

초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도 도시재생 사업이 한창이다. 여든, 아흔이 넘은 어르신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네에도 커뮤니티가 있는 공간을 만든다며 북카페를 만들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장형 식물들을 심고 걸어 둔다.

어딜 가도 다 마찬가지다. 같은 모습, 같은 느낌! 사람도 다르고, 삶의 이야기도, 공간의 성격도 다른데, 겉모습은 어찌 그리도 같은지. 그 지역만의 독특한 감성과 색채, 사람의 향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저 공장형 시설과 건축물들이 야속할 따름이다. 삶을 살아가고, 또 살아내는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와 고민의 흔적은 없다.

도시의 진정한 완성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닌,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즉 경험이다. 도시 디자인이라는 것이 반듯반듯 네모지게 공장에서 찍어내듯 획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공간의 여건과 환경 속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아름답고, 쓸모 있게, 개성 있게 만드는 것이다. 지역성과 공간특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꼴뚜기와 모과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대접을 해 주는 것처럼, 오래된 것들과 무심코 내버려 두었던 것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세월과 삶이 만들어 놓은 환경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만든 화단과 담장 밑에 투박하게 심어진 식물들이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들어 맨다. 그리고 웃게 한다. 다른 도시나 멀리 외국에 있는 화려한 꽃들을 심는다고 도시의 경관이 더 멋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풀꽃' 하나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절로 아름다워진다. 도시가 크든 작든, 그 공간에 잘 어울리는 '뚝배기'를 찾아야 제대로 된 '장맛'을 볼 수 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