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이 2일 내놓은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 가이드라인에 대해 기업들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제성이 없는 자율공시 조항인데다가 기업 입장에서 페널티는 물론 인센티브도 뚜렷하지 않아 형식적인 공시로 '빛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의 골자는 상장기업이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 공시해 투자자와 소통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원활한 자금 조달과 투자자 효용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달 중 가이드라인을 확정 후 이르면 이달 말이나 6월 초부터는 자율 공시를 시작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기대다.
하지만 공시 자체가 기업의 자율성에 기대고 있는 만큼 실효성은 의문으로 남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기업의 밸류업이라는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일본의 경우 10년에 걸쳐 천천히 자리 잡은 제도를 한국에서는 너무 급하게 진행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코스피 대형사에 비해 코스닥 중소형사의 경우 사실상 공시에 대한 시간이나 비용적 부담이 있는 만큼 자율공시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당국의 정책이 오히려 테마주의 움직임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상장회사 IR 담당자는 "몇몇 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율공시 전 시장 눈치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한편으론 시장에서 먼저 공시에 나서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테마성 시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기업 입장에선 공시 가이드라인이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도 당장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양식의 공시를 위한 비용 지출 대비 이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 역시 불확실하다.
당국이 세제혜택으로 언급한 법인세·배당소득세 경감 등은 모두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세법 개정 사항이다. 이 외에도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표창 기업 대상에 대한 인센티브로 제시한 5종 세정지원(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R&D공제 사전심사 패스트트랙 등)과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 우대, 주기적 지정 감사 면제 심사 시 가점 부여, 거래소 추가·변경상장 수수료 면제 등이 기업 입장에서 확실한 유인책이 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밸류업 기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 패널토론에 코스닥 상장사 대표로 참석한 박현수 고영테크놀러지 경영기획실장은 "자율공시긴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어느정도의 강제성을 띄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며 "밸류업에 참여하는 기업은 선하고 훌륭한 기업이고 나머지는 아닌 것처럼 비춰지는 이분법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공시가 의무화되고 강제성을 띄면, 가령 'PBR 1배'만 맞추는 식의 최소한의 형식상 노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제도 도입 초반에는 (밸류업) 의지가 있는 기업을 위주로 인센티브를 제공해 좋은 선례를 만들고, 성과를 통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장사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에서 시장과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코스피 상장사 대표로 참석한 천기성 CJ제일제당 재경실 부사장은 "금융업이나 지주회사처럼 설비투자가 없는 기업과 제조업종은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업종별로 세분화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특히 주주환원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 관련해서도 종합적으로 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오후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