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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고교생때 현장돌던 억척청년… "윈윈하자 만든 노조탓에 규제 더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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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택배 비노조연합 대표
10년전부터 택배 일로 한때 월 1000만원 수익… '흙수저' 벗어나 자수성가
'택배노조 만들자' 첫 제안… 노조 결성됐지만 부상·피로도 증가 구조 만들어
대선때 尹대통령 지지 찬조연설… "여전히 현장은 자유롭지 않아 안타깝죠"
[오늘의 DT인] 고교생때 현장돌던 억척청년… "윈윈하자 만든 노조탓에 규제 더 늘어나"
김슬기 택배 비노조 연합 대표.

"제 고향은 서울시 만한 면적인데 신호등이 없었어요. 그리고 눈이 한 번 오면 길게는 2~3주까지 고립되기도 했어요. 3살땐 형이랑 망치 들고 냇가 가서 얼음 깨고 수영하고, 흙탕물이 묻은 상태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다가 엄마한테 맞기도 했죠. 하하하."

김슬기(33·사진) 택배 비노조 연합 대표는 유년시절 경북 영양에서 살 때를 회상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학교 가는 데 40~50분이 걸리고, 마을에 광산이 있었고, 집 뒤에는 지금은 문화재가 된 광물을 분류하는 선광장이 있었다.

그가 살던 시골은 '법'이 없었다. 김 대표는 "워낙 시골이다 보니 음주운전이 일상이고, 무면허도 많았다. 경찰이 잡지도 않았다"면서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형들 스쿠터도 타보고, 7살에 아버지 차 운전도 해봤다. 물론 아버지와 같이 타기는 했지만, 그 때부터 운전을 시켜보려고 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법이 없으니 폭력의 수위도 셌다. 김 대표는 "동갑내기 친구중에 아버지에게 삽으로 머리를 맞아서 바보가 된 친구도 있었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고 처벌 받지도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저렴한 집을 물색하다 수원에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이 그를 이른 나이에 노동시장으로 이끈 것이다. 하지만 수도권에 올라와 한 일에서도 그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김 대표는 "고1 때 처음 한 일이 측량 보조였다. 당시 숙식 제공에 일당 7만원을 준다고 해서 갔는데, 정작 한 달을 다 채우니 일당 5만원을 주더라"면서 "그냥 받으라고 얼버무려 그땐 정말 화가 났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주민등록증도 없고 부모의 동의를 받은 것도 아닌 나에게 월급을 줘야 하는 머리 아픈 상황에서 소장이 융통성을 발휘해 조금이라도 챙겨준 게 아닌가 한다.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그는 "현장에서 힘이 제일 좋았고, 일도 잘하고 빨리 배우는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할 이유가 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힘이 나보다 약한 사람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돈을 제대로 받아가는데 억울했다"고 했다.

그가 '흙수저'의 삶을 털어낸 것은 24세 때 쯤 대기업인 CJ대한통운으로 이직하면서부터다. 그는 CJ대한통운이 낮은 단가로 신규 시장 창출에 매달렸고, 그 결과 택배 물량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나면서 수익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많이 벌때는 월 1000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리면서 2021년 집도 마련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대기업과 시장경제 시스템이 그를 흙수저에서 건져준 것이다.

그런 그는 "사실은 24살때 쯤 택배 노조를 처음 만들자고 한게 저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 차를 샀을때 용차(대타 기사)를 하면서 대리점이 어떤 식으로 무너지는지 알게 됐는데 내용은 대부분 같았다"면서 "보통 누군가 아파 쉬게되면, 그 물량을 다른 사람이 나눠 소화하는 과정에서 여러명에 무리가 가면서 골병이 들고 결국 단체로 도망가면서 망하는 건데, 노동조합을 만들어 빈 곳을 적기에 메꿔줄 수 있다면 대리점과 택배 기사가 모두 윈-윈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택배노조보다 2년 이른 2013년 경 노조 결성을 추진했으나 회비인 월 3만원이 아깝다는 반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결성된 택배 노조는 김 대표가 구상하던 노조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고 했다.

택배 기사에게 불리한 제도가 오히려 부쩍 늘었다고 했다. 그는 "노조가 생기고 오후 10시까지 배달 시간에 제한이 생겼다"면서 "그전에는 중간에 다른 업무를 볼 수도 있었는데 시간 제한이 생겨 이른바 '타임어택'을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물량에 제한이 없었고 근무 시간도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이 덜 힘들었다" 고 했다. 개인사업자여서 출근 시간을 자율로 해야 할 택배기사가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해도, 오후 1시에 일을 시작해도 마감시간이 10시로 고정되면서 이후 처리한 물량은 수수료를 받지 못하거나 물어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새로운 제도가 오히려 더 급하게 일하면서 다칠 확률이나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구조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는 노조가 노조원들의 이익만 노골적으로 대변하면서 택배 기사들을 갈라친 것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노조 전용 휴가'나 '노조 전용 사무실'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택배 기사 전체의 권익 보장과 전혀 상관 없는 요구 아니냐"라고 짚었다. 또한 택배노조 파업 이후 조합원이 아닌 택배 기사가 일부 물건을 대신 배송한 경우 불만을 품고 폭언을 하거나 차량을 가로막는 업무방해 행위를 한 사례도 상당했다고 한다. 한 택배기사가 2021년 8월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정서를 냈으나,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개인 사업자인 택배기사는 직장 내 괴롭힘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해 행정 종결 처리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이를 두고 회사와 대립할땐 '노동조합', 같은 택배 기사를 괴롭힐 땐 '개인사업자' 지위로 사실상 법위에 군림한 행태나 다름 없다고 표현했다.

여기에 파업까지 일삼으면서, 회사는 법이 없는 노조의 행태를 수용하기 위해 신규 인력을 계속 채용하고 고용보험·산재보험비 등을 대납했다. 결국 고정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택배비의 증가로 이어졌고 그의 수익도 크게 악화돼 지금은 과거처럼 벌지 못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노조가 생겼음에도 사고율이 여전히 높은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여름 물류터미널에서 더워서 웃옷을 벗고 일하다 감전으로 아르바이트생이 죽는 사고가 있었다"면서 "그런데 노조는 사후 대책으로 아르바이트생에게 더위를 식힐 '쿨 조끼' 대신 안전용 형광 조끼와 안전모를 씌웠다. 더위에 쓰러질 위험은 늘어난게 아니냐"고 했다. 과속을 줄이겠다며 터미널 출입구에 과속 방지턱을 설치한 것도 보기에만 좋아보일 뿐, 실제로는 차량 내부 상품이 충격을 받아 다 망가지는 시설물을 설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이런 규제들은 현실에 안 맞는다"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일하려는 청년들이 바라는건 이상한 규제를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택배 터미널 관련 규제를 꼽았다. 터미널 부지는 사실상 이제 도시에 지을 수 없고, 기존 터미널도 지자체의 철거 요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 금천구의 경우 1시간 넘는 거리의 오이도에서 물건을 받아 배달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벌어진다고 했다.

김 대표는 "황당하지만 현실"이라며 "대선기간중 윤석열 대통령이 되면 자유로워질거라고 믿고 찬조연설도 했는데, 여전히 현장은 자유롭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했다.

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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