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前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공직 알박기 인사 수백명… 그 폐해 극복에 40년 넘게 걸려"

헌법재판관·선관위·산하기관 '낙하산' 수두룩… 정상으로 가기엔 긴시간 걸려
민주화보상법 국민 입장선 형평성 안맞아… 매우 제한적으로 보상하는게 맞아
문재인케어 치료없이 약만 주고 가는 셈… 다음정권에 부담 넘기는 건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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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前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공직 알박기 인사 수백명… 그 폐해 극복에 40년 넘게 걸려"
김영환 前국회의원·前과학기술부장관.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영환 前국회의원·前과학기술부장관




김영환 전 의원은 기개, 소신, 책임 없는 정치는 허깨비로 본다. 선산 김씨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으로서 그의 신념과 용기를 늘 품고 정치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김영환 정치'는 '김종직을 세우는 것'이었다고 했다. 원칙에 반하면 거침없이 내놓는다. 여권 586 운동권 출신들이 또 민주화유공자 보상 법을 추진하자 그는 자신의 5·18 민주화운동유공자 자격을 내던졌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정치를 완전히 접은 건 아니지요?

"저는 낙선할 때 다 이유가 있었어요. 다 떨어질 걸 각오하고 나간 선거였으니까. 제 낙선은 당선과 바꾸지 않는다는 철학이 있습니다. 저는 '한 번의 당선을 네 번의 당선과 바꾸지 않는다'고 말합니다.(웃음) 첫 번째 17대 낙선은 노무현 정권의 열린우리당 창당을 반대하고 민주당에 남았다가 낙선한 거고, 그 다음 두 번의 낙선은 문재인 정권이 나라를 맡으면 나라 망친다는 생각에서 안철수와 같이 해서 399표차로 떨어진거고, 또 지난번에는 야권 통합한다는 명분으로 이쪽으로 건너왔으나 결국 또 떨어졌어요. 또 마지막에는 코로나 때문에 떨어졌고. 그래서 네 번의 낙선은 다 값진 거였다 생각합니다."

-시를 쓰시던 분이 어떻게 정치에 뛰어들게 되셨습니까.

"시집이 5만부나 팔리고 뜨니까 전 국민이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때 김근태와 같이 정치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나가보니까 하나도 저를 아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떨어질 뻔 했는데, 당시 경기도 안산에서 용케 당선됐지요."

-듣고 보니 대의와 명분이 다 있었네요.

"'김영환 정치'는 '김종직을 세우는 일'이라고 자부했어요. '남명 조식'을 세우는 거였고요. 제가 만약 네 번 다 당선되었더라면 8선이 돼요. 그러면 국회의장을 하기에도 버거워요.(웃음) 정계은퇴를 해야 돼요. 제가 4번 낙선을 했기 때문에 비록 '탈영'을 했으나 바른 말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 자격도 반납하고요. 문재인이 하는 정치를 비판하는 데는 다 그런 전력이 배경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마이크'를 갖고 있잖아요."

-의원님과 같이 정치한 분들이 지금은 다 중진에 원로급니다.

"저랑 같인 정치를 한 사람들이 추미애, 정동영, 천정배, 김한길, 설훈 등등입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비록 이빨을 뽑고 있지만, 나름 떠들고 있잖아요? 소리를 내고 있어요. 이게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통령 선거 나가면 뭘해? 국무총리 하고 국회의장 하면 뭐해요? 저는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추미애 이 분이 정말 안까운 사람입니다. 저랑 삼보일배했는데, 이제 이 선거 끝나고 정권 바뀌면 오체투지 해야 돼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오체투지 할 때 옆에 가서 서준다고 했어요, 힘드시니까."

김 전 의원은 이와 관련 페이스북에 농담 조로 '꿩 잡는 매'라는글에서 "꿩꿩꿩"하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잡는 역할이 추미애 전 장관에게 부여됐으니 추 전 장관은 꿩 잡는 매가 된 셈이라는 글을 올린 적 있다. 그의 다른 글처럼 SNS에서 동조와 비판이 달아올랐다.

-SNS와 유튜브 방송 외에 다른 정치 활동을 하시는 건 없습니까.

"유튜브를 얼마 전에 다시 시작했느느데, 이게 중노동이에요. 새벽 3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일주일에 5일을 진료를 하고 주말에는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어요. 고향 괴산에 옥수수와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어요. 한시도 쉬지 않고 있지요. 그렇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죠. 왜 즐거우냐면 제가 당직도 없고 직책도 없잖아요. 현역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말씀을 하고 그 말씀이 언론을 통해 국민한테 전달되고, 또 많은 분들이 그걸 주시하고 있고 있잖아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진중권보다 말발이 더 세다고."

-의원님도 문학적 배경이 두텁지 않습니까. 시인이고, 책도 많이 쓰셨고요. 게다가 4선 의원에 장관도 하셨잖아요. 그런 게 작용하지 않나 싶은데요.

"저는 괴산의 청천중학교라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공민학교 같은 데를 나왔어요. 텔레비전도 없던 데였지요. 두 반 있었는데 수석으로 졸업을 했어요. 청주고등학교도 2년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하는데 운 좋게 들어갔고 연세대도 겨우 들어갔는데, 학생운동 하다 잘려서 온갖 고생을 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요. 그런데도 저는 제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디를 보든 가난할 것 같지 않잖아요. 병원도 하고 의사이고, 재주도 있고, 제가 가난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에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가난의 축복을 주셔가지고 평생 저한테 가난이 따라다녀요. 그게 저한테 큰 축복이에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교만해졌을 텐데."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제게 너무나 다양한 삶이 허락된 겁니다. 시골 농촌, 중소도시, 대도시 삶을 경험했고 의사를 했고 전기기술자를 했고 시인을 했고 민주화운동을 했고 과학기술부장관을 했고 또 국회의원을 했잖아요. 경계가 많은 인생을 살아 왔어요. 제가 글을 쓰는데 누구도 나와 같은 비유를 쓸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최근 시적 표현의 내용을 올리셨더라고요. 성희롱 사건에 대한 코멘트였던데요.

"아, '섬진강에 제첩이 위험하다'는 글을 올렸어요. 제첩국이라는 게 있잖아요. 한강은 박원순이 성희롱으로 오염시켰고 낙동강에서는 오거돈이 흐려놓았고 금강에서는 논산 출신 안희정이 있고 영산강에서는 이번에 광주 양향자 의원 지역구사무실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잖아요. 4대강이 모두 성추행 성희롱으로 오염됐는데, 섬진강만 지금 남았단 말이에요. 제첩 많이 나는 섬진강마저 위험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잡다한 지식과 경계가 많은 삶을 산 사람한테 나오지요. 이런 생각도 했어요. 이빨을 치료하고 뽑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식생활에 개입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당신의 운명에 개입합니다'라는 시를 쓴 적도 있어요. 식생활을 통해 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이런 시는 윤동주도 이육사도 못 쓰는 거예요. 치과의사가 아니니까."



-수평적 사고를 많이 하시는데 정책에도 적용한 적은 없었나요.

"과학기술부장관을 할 때 MRC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메디칼리서치센터라고 의과대 치과대 학생들이 1000만원, 2000만원 받는 의사로 가지 않고 기초의학, 생명공학, 신약, 바이오를 연구하도록 했어요. 처음에는 아무도 신청을 안 하는 겁니다. 100만원, 200만원 주니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그 메디칼리서치센터에서 1500명이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전국 40개 대학에서 하고 있고요. 200만원밖에 안 주는데도요. 당시 연간 예산이 400억원이었는데 지금도 400억원이에요. 1000억이 되었더라면, 백신이나 바이오 연구자가 엄청 쏟아져 나왔을 거예요. 20년 전에 만든거니까. 선견지명이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기초과학 육성은 역대 정부에서 늘 강조했는데, 지금껏 만족할 만하게 토대가 잡히지 않았어요.

"아, 부산영재고등학교도 제가 장관할 때 만들었어요. 평등교육이니 뭐니 전교조가 난리치고 있지만 영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나와야 100만명 먹여 살릴 거 아니에요? 그런 기와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 애들을 길러야 되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고등학교가 서울대 입시학원이 돼버렸거든요. 또 의과대 가는 전문 과정 비슷한 것이 돼버렸어요. 이래서는 안 된다 싶어 과학영재고등학교를 만들었어요. 여기는 들어가서 처음부터 실험실습 교육과 논문식 수업을 하고 KAIST와 연계해 교육이 이뤄지도록 했어요. 그러니까 이 애들은 의과대에 거의 안 간다고요. 의과대에 뭐하러 가요. 의과대는 사실 그렇게 머리 좋은 애들이 가야 하는 대학이 아니에요. 하버드 의과대학에는 임상이 없어요. R&D대학이에요. 원천의학 기술을 배우는 곳이지요."

-이전 정권 정책 뒤집는 게 유행인데 MRC가 지금까지 이어온 것만으로도 용합니다.

"다음에 누가 대통령 되든지 나를 과학기술부 차관을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장관은 경쟁자도 많고 한번 했으니까. 차관보도 좋아요. 제가 요즘 후회하는 게 이준석이 하는 '나는 국대다' 있지요, 거기에 왜 신청을 안했나 싶어요. 그 생각을 못했어요. 탈락해도 뭐 인터뷰를 해주더만.(웃음)"

-문재인 케어는 건보적자를 누적시키고 있는데요, 의도는 좋지만 지속가능하겠습니까.

"문재인 정권은 약만 주고 가는 거지요. 병은 남겨놓고 (치료는 않고) 약만 주고 가는 거예요. 병만 주고 치료약을 안 주는 정책을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하잖아요. 좋은 것은 막 퍼주고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번 주고 나면 마약 같아서 안 받고는 못 살아요. 이번에 기본소득 논쟁도 그런 거고요. 계속 돈을 풀 수 있으면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문재인 케어 아니라 윤석열 케어든 적절하게 지속가능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집행해야지, 막 풀고 나서 다음 정권 니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죠. 무책임한 거고요. 오늘은 국민들 만족하겠지요. 그래봐야 지지율 30%를 40% 만드는 건데, 결국은 국민들에게 아주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거지요."

-차기 정부로 넘겨진 숙제가 됐습니다.

"오늘의 개혁이 아플지라도 내일 국민의 행복에 기여하는 개혁을 해야지, 오늘 국민들한테 시혜를 주고 내일은 젊은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정치를 해선 안 되잖아요. 지금 온 국민들은 물론이고 젊은이들 머리에다가 울산바위 같은 짐을 던져주고 가는 거지요."

-요즘 20대를 N포세대라고 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일자리 때문인데요. 알바까지 구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의원님은 제적당한 후 막막할 때 전기기술자 자격증을 따서 헤쳐나갔습니다. 청년들에게 조언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보는데요.

"저는 청년들에게 '절망이 희망이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가 희망을 안 가질 수 없잖아요, 살아야 되고,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잖아요. 하나 위로를 드릴 것은 1960년대부터 우리가 근대화가 시작된 거 아니에요? 그때부터 80년대까지, 우리 선배들 정주영 회장 같은 분 시대에 정말 우리가 전자제품, 배를 팔러 가면 파키스탄 사람들이 우리한테 반도체 팔러오는 것처럼 보지 않았겠습니까? 초창기 휴대폰 반도체 팔러다니는 건 생각도 못했던 시절에 다리가 후덜거리고 국가 브랜드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 선배들이 시장을 개척하고 나라를 이렇게 발전시켰어요. 지금 여러 가지 난관이 있지만 그때보다 나은 게 많잖아요. 굶어죽는다든지 하는 건 없잖아요.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버리지 말아야 해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결단, 이런 것을 잃지 않고 세계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기회가 열리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기술의 시대라고 할까요, 새로운 사회, 기회가 열리잖아요. 거기에 적응하는 노력을 해야 되지 않겠어요. 요즘 또 많은 청년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관심을 안 기울였던 분야를 새롭게 관심을 갖고 보는 거예요."

-의원님은 어떤 변화가 감지됩니까.

"제가 요즘 조금 놀라는 것은 젊은이들이 농촌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는 거예요. 전원으로 들어가는 기류가 있고 그렇게 되면 거기에 공간이 있고 주거와 환경이 생기는 거예요. 도시와 농촌이라는 게 이젠 재택근무도 가능하잖아요. 인터넷 다 연결돼 있고요. 도시에서 생각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있고요. 또 여기서 더 나아가면 세계로 진출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거고요. 발상을 전환하면 기회가 열리는 거예요. 취직이 안 되면 '창업을 하는 거구나' '내가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잖아요. 좀 사치스러운 생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저는 그렇게 했어요. 이병철과 정주영 같은 분들이 자기 이력서를 써봤겠어요? 창업을 했으니까.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해요."

-개인을 국가에 치환해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참 우여곡절 많이 겪고 지금 여기까지 온 거 잖아요. 우리 청년들도 나라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근현대사에 이승만도 박정희도 있었고 전두환 노태우도 있었잖아요. 지금 문제인도 있는 거고요. 그렇지만 어떻든 국격이 지금 높아졌거든. 그건 국민이 만든 거지 뭐 문재인 대통령이 만든 것은 아니니까. 또 자기 공이라고 할까봐 얘기를 하는 겁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혜택을 안 받겠다고 자격을 반납하셨는데요, 그 반면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주로 자신들이 혜택의 대상이 되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나 유가족에게 교육·취업·의료·대부·양로·양육 등을 지원하는 내용의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화보상법)' 이란 걸 발의해 '셀프입법'논란을 빚었는데요.

"어떻게 하다 보니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혜택을 다 던졌는데, 처음부터 다 던지려는 건 아니었어요.(웃음) 아니 지적한 것처럼 그것도 모자라 더 누리려고 하니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저는 수십 년 동안 그 혜택을 써먹은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유공자로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늘 부담을 느꼈어요. 이제 그만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런 차에 계기가 돼서 던진 겁니다."

-국가보훈처에서 순순히 받아주던가요.

"포기하는 거 그게 쉽지 않아요. 제가 유공자 자격을 반납한 후 무슨 절차를 생긴 것 같더라고요. 전에는 그런 경우거 없었나 봐요. 보훈처 관계자가 여기 왔었어요. 처음에는 보훈가족으로 남아달라고 설득을 하더라고요. 남아서 보훈가족을 위한 입법 활동 같은 것을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해요. 그러나 한입으로 두 말을 하게 되니 거절을 했어요. 철회하는 절차를 만들기 위해서 권리포기각서라는 것을 만들어왔더라고요. 거기에 다 사인을 했어요. 그걸 갖고 가서 무슨 위원회에서 회의를 했나 봐요. 유공자가 아니라는 결정문을 보내줘서 완결됐죠."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짜 유공자 분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 분들에게 본의아니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그렇게 한 것은 광주민주화운동 하신 분들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부상 당하거나 죽은 건 아니잖아요. 희생자들은 보상을 충분히 해야 되는 거고요.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은 늘 걸려왔어요. 천안함 장병이라든지 소방공무원이라든지 나라와 사회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피해는 너무 작고 혜택은 너무 길었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보시기에 이건 분명히 형평성의 문제가 있고요."

-그럼에도 셀프 보상입법을 하려는 국회의원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민주화운동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국민이 다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공로와 보상을 한다면 매우 제한돼야 한다는 거지요. 희생된 분들, 불구가 된 분들에게요. 옆에서 물 떠주고 돌 나르던 사람들까지 다 유공자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국가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니 이번에 광주 철거건물 붕괴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5·18 유공자 명단에 올라가 있는 조폭이 관련되는 거 아니겠어요? 광주민주화 유공자라는 완장을 차고서 입찰, 취업 등 이권을 갈취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유공자 지원 프로그램을 이제 중지하자는 말씀인가요.

"민주화운동이 40년이 지났고 또 보상도 많이 받아왔으니 이제 정리를 해야지요."

-문재인 정부 들어 수많은 파행적 재판과 비상식적 판결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법원 사당화'는 검찰 장악 기도와 함께 법치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대법관 하신 분한테 물어봤어요. 인사 대못박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번 중하위직 검찰인사도 대못인지 송곳인지 다 헤집어 놓았잖아요. 그래서 '그 폐해를 극복하는데 얼마 걸리겠습니까'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40년 걸린다고 해요, 40년! 대법관들은 바꿀 수 없잖아요. 헌법재판관 바꿀 수 없고, 선관위도 바꿀 수 없고. 또 산하기관들도 있잖아요. 얼마 전 기사 보니까 낙하산이 250명이 있었고 또 이번에 알박기 하는 게 400명 된다는 겁니다. 이들이 임기를 버틸 거란 말이에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걸 정상으로 되돌려놓는데만 5년이 걸릴 가능성이 있지요. 그러니까 이 정권의 폐해가 너무 오랫동안 간다는 겁니다."

-거기에다 최근에 공직자 임기는 보장돼야 하고 사퇴를 강요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도 나왔습니다.

"제가 하도 답답해서 대통령비서실장한테 전화를 했어요. 제가 유영민 실장 주치의니까. 전화해서 다른 걸 얘기하면 또 불편하고 싸우게 되니까, 먼저 원전 얘기를 했어요. 신한울 3, 4호기 그거만이라도 공사를 재개하라고 했어요. 그것만 해도 실장님이 큰 일 하시는 거라고 했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답변 못 하지요.(웃음) 공사 재개도 문제지만 1, 2호기가 완성됐으니까 빨리 전력 생산하는 게 필요합니다. 3, 4호기는 7000억원 투자해서 전기발생기가 지금 두산중공업 야적장에 놓여 있다니까요. 비와 와서 녹슬어 페인트를 칠해놨다는 겁니다. 정상으로 돌려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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