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前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4선의원·시인·의사… 만능 정치코멘테이터

김영환 前의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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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영환 前국회의원·前과학기술부장관


김영환 전 의원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정치 코멘테이터 중 한 사람이다. 문제점을 꼭 찍어 찾아내는 순발력과 어법은 자평 '진중권 이상'이다. 여의도를 떠나 있지만 25년간 정치를 하며 한국정치의 생태를 속속들이 경험한 데다 타고난 언어감각, 위트가 만난 결실이다. 최근에는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유튜브 팟캐스트 '김영환TV'를 10여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돕겠다는 목표에서다.

김 전 의원은 1970년대 유신반대 학생운동으로 제적, 투옥, 석방, 복학, 수배가 되풀이되는 길을 걸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주요 수배자 중 한 사람이었다. 치과대 마치기 6개월 전 구속돼 의사 면허도 15년 후에 받을 수 있었다. 그 기간 전기기술자 자격증 등 현장 기술노동자로 생업을 이어온 경험은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고 한다. 뒤늦게 병원을 개업해 덴티스트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쥐었다.

김 전 의원은 또 5만 부 이상 팔린 시집을 가진 베스트셀러 시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글발' 터전은 고향의 자연과 어릴 적부터 접한 선산 김씨 점필재(점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에서 왔다고 한다. 4선 의원과 장관도 지냈지만 그에게 따라다니는 것은 언제나 세상일을 뒤집어보고 달리 생각하는 '반골기질'이다. 그래서 지난 4번의 낙선은 실이 아니라 득이었다. 그는 '네 번의 당선을 한 번의 낙선과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풍부하고 튀는 아이디어와 다방면의 이력, 대화자를 연신 웃게 만드는 유머감각은 여느 정치인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그의 장점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바다에 물고기가 많듯 경계를 넘나든 그의 삶 속에서 배였을 것이다.

△1955년 충북 괴산 △연세대 치의대 졸업, 同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회 위원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1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2001년 제3대 과학기술부장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2013년 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2016년 2월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16년 5년 同 사무총장 △2017년 1월 同 최고위원 △2017년 2월 국민의당 대선기획단장 △2020년 2월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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