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角角] 푸틴의 소치, 김정은의 원산...독재자의 은밀한 아방궁](http://contents.dt.co.kr/images/202102/2021021102109969660001[1].jpg "[이규화의 지리角角] 푸틴의 소치, 김정은의 원산...독재자의 은밀한 아방궁")
소치와 원산은 독재자가 은밀히 모의를 하거나 쉬는데 최적의 장소다. 소치는 시간대가 11개나 되는 러시아에서 수도 모스크바와 같은 시간대이면서 모스크바와 항공 및 철도로 잘 연결돼 있다. 쉬면서도 모스크바를 원격 통제하기에 적합하다. 원산도 마찬가지다. 평양에서 140㎞ 떨어져 있으면서도 공항(갈마비행장)과 철도, 고속도로로 연결돼 있다. 안전과 비상시대비에 있어서도 두 곳은 최적지다. 소치 궁전과 원산 특각 모두 바닷가에 접해 있고 다른 면은 산과 계곡, 하천으로 차단돼 있다. 쿠데타 등 외부 침입을 막는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만약의 경우 바다로 탈출하는 데도 유리하다. 주변에 잠수함기지를 포함한 해군기지가 있는 것도 유사시 친위군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보다도 소치와 원산이 갖고 있는 지리, 기후적 매력이 푸틴과 김정은 뿐 아니라 그 윗세대 독재자들이 이곳들을 별장지로 삼은 이유일 것이다. 먼저 소치를 보자. 지구촌 사람들은 러시아 하면 추운 겨울을 연상한다. 선입견 또는 휴리스틱(heuristics, 어림짐작) 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소치는 그런 생각을 여지없이 배신한다. 소치는 아열대성 기후대다. 겨울에도 야자수가 싱싱하게 자란다. 1월 평균 기온이 제주보다 높다. 북위 43도35분의 지역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기후특성이다. 소치와 위도가 비슷한 블라디보스톡(43도08분)보다 겨울철 최저기온이 평균 18도 높다. 2월 10일 기온을 보면, 소치가 최저 섭씨 영상 6도 최고 16도인데, 제주는 최저 3도 최고 13도, 블라디보스톡은 최저 -7도 최고 -4도다.
그렇다면 왜 이런 국소적 기후 현상이 발생할까. 위도가 높음에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랭한 북풍을 해발 4000m 안팎의 카프카스산맥(유럽 최고봉 5642m의 엘브루스봉도 여기에 있다)이 막아주고 따뜻한 지중해로부터 유입된 흑해의 표층수 영향 때문이다. 옛 소련의 악명높은 독재자 스탈린도 이곳에 자주 내려와 온천을 즐겼다고 한다. 온난한 기후적 조건이지만 카프카스산맥의 지형적 조건과 충분한 강설 덕분에 2014년 22회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다. 기후를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위도, 수륙분포, 지형, 해류, 해발고도 등인데, 소치의 경우 지형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예다.
원산도 지형이 기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산은 위도가 39도14분으로 서울(37도34분) 보다 약 2도 높다. 위도상 거리로 치면 약 200㎞ 북쪽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1월 기온이 서울보다 따뜻할 때가 적지 않다. 특히 시베리아기단의 북서풍이 강하게 발달할 때는 서울보다 기온이 5도 이상 높고 같은 위도 상의 평양보다는 7~10도 높다. 2월 10일 기온을 보면 서울이 최저 -1도 최고 8도이고 원산은 최저 -1도 최고 9도다. 원산이 겨울철에 온난한 원인은 소치와 마찬가지로 산맥과 해류의 영향 때문이다. 원산은 북쪽에 2000m급의 낭림산맥 고봉들과 북서쪽에 1000m 이상급 마식령산맥의 산들이 매서운 북서풍을 막아준다. 동해에 유입되는 쿠로시오난류도 원산의 겨울을 춥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러한 기후적 특징으로 인해 원산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휴양지로 각광받았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원산 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알려졌다. 현재 원산은 스키장을 비롯해 해변을 중심으로 대규모 리조트시설을 지었거나 짓고 있다. 김정은은 외국 손님들이 오면 원산으로 안내한다고 한다. 2014년 미국 프로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원산으로 초대했다.
소치와 원산, 모두 천혜의 아름다운 휴양지다. 특히 겨울철 피한지로서 이만한 지역이 없다. 그러나 독재자만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구나 이 자연이 준 선물을 독재 강화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 개탄스럽다. 푸틴은 소치 올림픽과 소치 월드컵 경기를 유치함으로써 러시아 국민의 알량한 민족적 자부심을 자극해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 성공한 듯하다. 반(反)푸틴 인사들이 연이어 암살당하고 나발니도 독극물 테러를 당했음이 거의 확실한데도, 최근 러시아 국민의 푸틴 지지율(조작됐을 가능성이 높지만)이 64%나 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김정은은 절대 다수 주민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황인데도 원산을 스키, 승마, 요트, 경비행기 조정 등 개인적 취미생활을 위한 무대로 만들었다. 원산은 그의 전용 놀이터라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원산의 그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는 북한 주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소치와 원산이 독재자들의 은밀한 내실, 아방궁이 아닌 평범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쉬고 즐길 수 있는 진정한 낙원으로 복원되는 날이 빨리 오길 기원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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