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시장 국산제품 버티고 있으면 가격부터 낮아져… 外産과의 경쟁 자신
'K큐브 R6' 5년만에 버전 UP… '비대면 소통' 사람 냄새나는 직장 만들것
특정 주거단지용 '레지던스 포털' 1분기 밑그림 … 연내 전체 공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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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파이오니어를 만나다
②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
1999년.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인터넷의 열기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뜨거웠다. 인터넷 포털이 처음 등장해 미국 야후가 승승장구하고, 구글은 강력한 검색엔진을 무기로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막 설립돼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도 그 열기 속에 있었다. KT 우면동 연구소에서 신사업개발팀을 이끌던 그는 인터넷 포털 '한미르'를 개발해 1999년 오픈했다.
이후 '포털'은 김 대표의 일생을 관통하는 용어가 됐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나와 2000년 3월 11일, 누구에게나 개방된 범용 포털이 아니라 특정 기업 내에서 직원들끼리 지식과 업무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하는 업무포털SW 기업 날리지큐브를 창업했다. 한미르 개발자 3명이 함께 했다. 20년 간 한 우물을 판 끝에 회사는 400여 개 고객사를 둔 국내 업무포털SW 1위 기업이 됐다. 서울 도곡동 날리지큐브 사무실에서 김 대표에게 창업과 경영, 비전 얘기를 들었다.
대담=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포털에 일생을 걸었는데, 안정된 KT를 나와 창업에 도전한 계기가 궁금하다.
"공들여 개발한 한미르 포털은 사용자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통신사업으로 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KT에서는 힘을 받기 어려웠다. 한미르라는 이름에도 서글픈 사연이 있는데, '큰 용'이란 의미도 있지만 '한번 밀어달라'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서 지은 것이다. 서비스 오픈 후 콘텐츠 정제부터 운영인력까지 필요한 게 많았는데 후속투자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동료 개발자들과 속앓이를 하다 퇴사를 결심했다."
-한미르의 포털과 날리지큐브의 포털은 무엇이 다른가.
"누구나 쓰고 다양한 영역의 정보가 모이는 수평적 포털이 한미르라면, 우리가 공급하는 포털은 전문영역과 특정한 그룹이 쓰는 수직적 포털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고객사 직원들은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우리가 구축한 포털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소통하며 업무시스템에 접속해 일하고, 선배들이 익힌 지식과 노하우를 대대로 전수받으면서 경쟁력을 키운다. 각 기업에 그들만의 전용 네이버 같은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회사가 지향하는 업무포털의 차별점과 키 포인트는 무엇인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사람 중심 업무포털'이다. 기능은 기본이고, 사람들이 시간을 절약하고 다른 이들과 더 쉽게 소통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게 설계부터 메뉴 구성까지 공을 들인다. 사람도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어야 하듯이, 서비스도 매력포인트가 필요한데 우리는 사람에서 그걸 찾았다.
포털 구축에 필요한 엔진은 하나지만 각 기업의 업무스타일과 문화에 맞춰 20% 정도는 맞춤 개발을 해 준다. 그러면서 기업의 업무환경과 소통, 지식공유 방식에 대해 컨설팅도 해 준다. 기업의 가치는 매출이나 이익 같은 숫자만 보고 매기기 힘들다. 직원들의 충성도와 주인의식, 일하는 문화와 스타일이 가치를 결정하는데, 우리는 포털을 통해 그 부분을 돕고자 한다."
-복잡한 기업 내 IT시스템에 접속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면, 포털 구축 과정이 매우 까다로울 것 같은데.
"그렇다. 대기업이나 대형 공공기관은 업무시스템이 50개가 넘는 곳도 있다. 수많은 업무시스템을 연동해 직원들이 하나의 관문으로 접근하게 하는 게 포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그 때문에 직관적이면서도 기술적으로 우수한 포털은 기업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기업의 CIO(정보화책임자)와 CTO(기술책임자)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힘들어하는 게 회사 내 생산 관련 시스템, ERP(전사적자원관리) 등 IT시스템들이 서로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시스템 운영자와 사용자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다. 우린 포털로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단순히 SW(소프트웨어)만 설치해주는 게 아니라 컨설팅을 통해 여러 자원과 지식이 연결되도록 설계하고 촘촘하게 바느질해주는 게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차별점이 확실히 부각된다."
-경쟁이 치열한 IT시장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IBM, 오라클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도 포털 솔루션을 공급한다. 이들 기업과 주로 경쟁하는데,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금융권과 대기업들이 2~3년 전부터 불편한 외산 대신 우리 솔루션을 찾는다. 우리에게는 행운인 것이, 외산 솔루션은 고객이 수많은 기능을 일일이 찾아서 써야 하고 UX(사용자경험)도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삼성생명·KT·포스코·SK하이닉스·국민연금·한국철도시설공단 등 국내 대표 기업과 기관들이 우리 업무포털SW '케이큐브'를 쓰고 있다.최근 기업 내부와 외부를 막론하고 지식공유와 협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업무포털에 대한 관심도는 더 높아졌다."
-IT 산업에 클라우드가 화두로 등장했다. 아마존, MS 등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영향은 없는가.
"또 하나 우리에게 행운인 것이 업무포털은 클라우드가 100%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클라우드 플랫폼 위에서 매월 사용료를 받는 방식의 SaaS(SW서비스) 포털솔루션도 있지만 한계가 클라우드 밖의 기업 내 IT자원은 연결해 주지 못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클라우드 도입 기업도 업무포털을 통해 기업 자체 시스템과 클라우드 앱을 연결하고 융합하도록 해 준다. 종합 IT인테리어 역할을 하면서 자체 시스템과 클라우드 전체를 아우르는 연결해 주는 것이다."
-SW업계에서 직원들에게 남다르게 잘 해주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치열한 경쟁 시대에 유독 느리게 가는 기업이기도 한데, 날리지큐브에 있어서 경영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제품과 경영을 관통하는 일관된 키워드는 '사람'이다. 20년간 직원들에게 경영목표를 요구하거나 제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원들에게는 실적이나 목표를 제시하는 대신 무조건적인 자율성을 부여한다. 20년간 자체 정규인력으로 대부분 사업을 소화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교육훈련을 통해 직원들이 실력을 키울 수 있게 서포트하고, 출퇴근부터 회의, 휴가까지 직원 친화적인 기업문화를 고집하고 있다. 다른 기업보다 앞서 시차 출퇴근제를 도입하고 매월 출근시간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7년 이상 근속자에게는 30일간의 휴가를 준다. 그런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잘 해준다고 하는데, 잘 해주는 게 아니라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창업 후 놀란 게 SW기업들이 채산성이 안 좋다면서 프로젝트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의 절반 정도를 프리랜서로 쓰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 봤다. 그리고 우린 무조건 정규직이란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그런 경영철학과 기업문화가 20년 쌓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단기적인 수익은 줄었을 지라도 20년간 고집한 원칙은 인력과 문화, 역량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80명 직원 중 개발인력이 70%이고, 10년차 이상이 40%가 넘는다. 전체 직원의 절반 가까이가 회사 역사의 반 이상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제품의 히스토리를 꿰뚫는 직원들이 허리에 포진해 있다 보니 기술변화에도 유리하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그들이 경험과 지식을 충실히 전달해 주고, 그런 기업문화를 아는 인재들이 회사의 문을 두드린다. 맛집의 경쟁력은 좋은 재료를 쓰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경쟁력 있는 SW를 만드는 재료는 사람이다. 관리하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고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니 필요한 일과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더라. 안정적 근무환경 덕분에 여성 인력이 40%에 달한다."
-그런 기업 분위기가 사업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는가.
"고객들이 알아보고 인정해 준다. 많은 고객사 담당자들이 여러 IT기업과 일해봤지만 날리지큐브가 깔끔한 일 처리에서 최고라고 평가해 준다. 포털SW를 선정하면서 참여인력의 근속연수를 보고 회사의 안정성에 믿음이 가 날리지큐브를 선정했다는 고객사도 있다."
-SW 후진국에서 포털만큼은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도 안 밀리는 기업이 있으니 몹시 든든하다.
"특히 포털을 통해 기업 내 자원을 연결해주는 능력은 미국 기업들이 못 가진 부분이다. 포털 영역에서만큼은 IBM, 오라클도 못 따라오는 독보적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신한다. 이런 기업들이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해 저가 전략을 불사하지만 제품을 비교해본 고객사들이 날리지큐브를 선택한다. 외산 제품이 시장을 평정하면 그들이 부르는 게 값이지만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이 버티고 있으면 가격부터 낮춘다. 포털은 우리가 지킨다. 외산과의 경쟁을 걱정하지 않는다."
-글로벌 사업 전략은.
"세계 시장에서 승부하려면 글로벌 기업보다 확실히 잘하는 'IT분야의 BTS' 같은 품목을 키워야 한다. 이미 미국 기업들이 한창 앞서가는 클라우드 시장에서 승부 하면 백전백패다. 우리가 잘 하는 영역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그게 포털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습관과 업무스타일은 차이가 있지만 우선 동남아 시장부터 진출할 계획이다. 초기 진입이 힘들고 레퍼런스 확보가 중요한 일본은 4~5년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다."
-솔루션 진화 계획이 궁금하다.
"포털솔루션 'K큐브 R5'를 5년 만에 업그레이드한 'R6'를 하반기 중 내놓을 예정이다. 그동안 새로운 기능을 끊임없이 추가해 왔지만 R6는 전혀 새로운 플랫폼으로 진화시킨 제품이다. 핵심은 역시 '사람'이다. 좀더 사람 냄새 나고, 사람의 자존감을 북돋워 주는 SW를 선보이겠다. 주 52시간제와 워라밸 문화 확산, 직장 내 세대차, 비대면 소통 확대로 갈수록 건조해지는 기업 현장에 IT로 온기와 정을 더하는 게 목표다. 직원들이 업무포털에서 일종의 익명 메신저를 이용해 번개모임을 갖거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취향이나 가족관계를 물어보는 퀴즈를 내고 응모하는 이에게 쿠폰을 주는 식이다.업무 외에는 별 소통이 없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도록 하고, 서로를 더 잘 알게 해서 친밀감을 높이도록 하고 싶다. 사내 아이디어를 모으고 가능성 있는 기능은 특허를 출원하기도 하면서 구체화해 가고 있다."
-클라우드 전략은.
"차근히 추진하고 있다. 그룹웨어와 근태관리시스템은 클라우드 버전을 개발했고, 포털SW도 기능별로 클라우드 버전을 내놓고 있다. 차기 버전인 R6도 내년 중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신사업 전략도 추진하는 것으로 아는데.
"특정 주거단지에 사는 이들에게 주거 관련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커뮤니티와 주거공유 기능까지 제공하는 레지던스 포털을 구상 중이다. 전국 13만명의 의사 중 11만명이 메디게이트란 포털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소통하듯이, 거주자들이 시설 이용·관리부터 공용공간 활용, 각종 사용료 고지·결제, 소통까지 하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 건설사와 협력 중이다. 포털에는 검색광고를 접목하면 쓰레기 정보가 넘쳐난다. 회원 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검증된 사람들만 멤버십을 갖게 하고 순정 정보만 오가도록 할 계획이다. 출퇴근이 필요 없는 은퇴자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고, 왕성하게 일하는 젊은 층은 출퇴근에 하루 몇시간을 보내는 문제도 레지던스 포털을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1분기 중 시설이용 기능부터 선보이고, 올해 중 전체 포털을 공개하겠다."
-국내 SW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하자면.
"SW에 제값을 안 주는 문제는 돈 안 되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패키지 솔루션을 사면서 개발자를 상주시키는 문화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주52시간제를 안 지키는 기업의 대표를 처벌하듯이, 보다 강력한 개발인력 상주금지 규정을 만들면 10년 걸려야 바뀔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을 것이다.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 수익성이 좋아지면 연봉협상 대신 직원 개개인이 자신의 연봉을 정하고, 7년 근무 시 주는 리프레시 휴가를 4개월로 늘려 직원들이 회사에 나와 일하고 싶을 때까지 쉬게 해주는 게 바람이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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