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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한자를 중국식으로 읽는 事大

위행복 한국인문학총연합회장·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18-08-29 18:01
[2018년 08월 30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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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한자를 중국식으로 읽는 事大
위행복 한국인문학총연합회장·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광개토대왕릉비를 관람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어 대화를 금지시켰다.' 얼마전 언론에 난 보도 내용이다. 그 기사는 중국의 행위를 '역사 갑질'로 규정했는데, 그러면서도 중국의 지명은 '지안(集安)' 등등 모두 중국식 독음(讀音)으로 적고 있었다. 한국어가 짓눌린 상황에 분개하면서도 기실은 중국어를 떠받드는 속내를 내보인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한국어를 존중한다면 그 곳의 지명을 '집안'으로 읽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어휘나 개념이 들어오면 그것을 수용할 우리말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게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고유명사는 그 특성상 원산지의 독음을 한글로 표기하면서 사용하기 마련인데, 이런 방법을 '원지음 표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빠리'가 아닌 '파리'로 적는 것처럼, <외래어 표기법>이 그 표기방식을 우리말 체계에 맞춰 순화시킨다. 그런데 지금 이 '원지음 표기'를 중국의 고유명사에까지 무분별하게 적용함으로써 의사소통과 정보전달을 방해하며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로마자를 기록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읽을 때는 '원지음'을 전혀 개의치 않고 자국의 독음을 고수한다. 'Paris'를 프랑스 사람들이 '파리'로 읽지만, 미국에서는 '패리스'로 읽고 독일에서는 '파리스'로 읽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한자어에도 적용되고 있으니, 각기 자국어 체계에 맞는 한자음을 만들어 온 한·중·일 3국은 같은 글자나 어휘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읽으며, 이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도 없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이름 '耿爽'을 예로 들면, 중국인들이 '겅솽'으로 읽지만, 한국인은 '경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은 그의 이름을 '겅솽(耿爽)'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발음하기 괴롭고 기억하기 어렵고 표의문자의 의미가 사라져버린다. 독자들이 '겅'과 '솽'을 한국식 독음으로 오해할까조차 염려된다. 엄연히 우리의 독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인가?

한자는 지역이나 시대가 달라도 의미는 동일하게 파악되니, '嫦娥'는 중국인이 '창어'로 읽든 한국인이 '항아'로 읽든 '달에 사는 미인'이다. 중국이 띄운 달 탐사 위성의 이름이 '항아'였고 달에 착륙시킨 탐사로봇의 이름은 '옥토'였는데, 우리 언론은 이를 '창어(嫦娥)'와 '위투(玉兎)'로 표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월궁항아' 이야기를 들어왔으니, '항아'와 '옥토끼'로 적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고, 더 많은 정보를 전달받았을 것이고,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중국식 독음을 채택했고, 그리하여 의미 영역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괄호 속에 적힌 한자의 의미를 모르는 독자는 본의 아니게 정보의 많은 부분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공자(孔子)를 쿵쯔로 읽어야만 문화주권이나 주체성이 회복된다'는 발언도 있었는데, 중국식으로 읽어야만 '타자화' 혹은 '대상화'된다는 주장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Julius Caesar'를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읽지 않고 '줄리어스 시저'로 읽는 것이 시저를 자기 조상으로 치부한 결과라는 말인가? 'Paris'를 '패리스'로 읽는 것은 파리를 차지하고 싶은 침략욕의 발로이겠는가? 중국식 독음으로 읽어야 주체성이 유지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연이어 일으키는 과정에서 일제가 일본식 독음을 강요함으로써 우리말과 민족혼 말살을 획책했음을 보면, '공자'를 '쿵쯔'로 읽는 방식은 거꾸로 '주체성 붕괴'라는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복 후 30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일본의 지명과 인명을 일본식으로 읽고 표기한다는 법이 공포되자 이숭녕 교수는 '주체성을 망각한 언어정책'으로 규정했고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중국인들도 한국어로 대화할 때는 '베이징'이라고 하지 않고 '북경'이라는 한국식 독음으로 읽는다. 중국에 사는 재중동포도 한국어 독음으로 읽고 표기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국땅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과정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고유명사들을 굳이 추려내 중국식이나 일본식 독음으로 읽는가? 중국어에서 일본어로, 일본어에서 영어로, 숭배하는 외국어를 바꾸더니, 이제 다시 중국어를 받들기 시작하는 것인가? 주권국의 국민이 관광지에서 모국어 사용을 제지당한 일이 황당한가? 그렇다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 온 한국식 독음을 우리 스스로 내치는 것은 그 황당함이 어느 정도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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