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복제인간 그리고 옹고집

[디지털인문학] 복제인간 그리고 옹고집
    입력: 2018-08-22 18:00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복제인간 그리고 옹고집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어린 시절 TV코미디 프로그램은 주로 콩트형식이었는데, 서영춘, 배삼룡, 구봉서 등의 코미디언들의 단골 레파토리 중의 하나가 '옹고집전'이었다.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이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싸우는 이 이야기는 두 개의 정체성 속에서 소란이 벌어지는 전형적인 희극적 상황을 담고 있었다. 코미디가 '옹고집전'에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상황에 주목한다면, 어린이 동화에서는 '옹고집전'의 환타지적 속성을 활용하면서 도덕적 교훈을 주려한다. 어린이 동화가 제시하는 옹고집은 부유하면서도 타인에게 베풀지 못하는 욕심많은 인간이며, 그런 의미에서 놀부의 친구인 셈이다. '흥부전'에서는 제비의 보은이라는 환타지가 활용된다면, '옹고집전'에서는 복제인간이 등장하여 흥미를 유발하는데, 권선징악으로 그 의미가 귀결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옹고집전'은 매우 동시대적인 주제와 닿아 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은 물론 지적 능력을 대체하고, 혹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재생할 수 있는 우리 시대에 유효하게도 '옹고집전'은 진짜 인간과 그 인간을 복제한 가짜 인간의 대결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최근 방영되었던 '너도 인간이니?'라는 TV드라마도 사실 한 인물과 그 인물의 복제로봇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옹고집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제목은 '옹고집전'이라는 고전을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는 핵심적인 질문과 닿아 있다. 인공지능, 사이보그, 생체복제기술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대체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너는 (왜) 인간이니?"같은 질문 말이다. '옹고집전'은 예상치도 못하게 제법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남의 큰 부자 옹생원은 '고집'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옹고집전'의 서두에 "경상도 똥골에 사는 옹생원이 마음씨가 심술궂고 음흉하여 남을 해하고자 하였다"면서 놀부와 비견되는 익숙한 악행을 늘어놓고 있다. "남의 송아지 꼬리빼기, 호박에 말뚝박기, 초상난 집에 가서 춤추기, 해산한 집에 거적 들고 달려가기…." 하지만 이렇게 악행이 끝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의 이름 '고집'은 괴팍한 성질과 악행을 드러내는데 딱히 적합한 단어는 아니다. 옹'욕심', 옹'악행'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옹고집인 이유가 무엇일까? 옹고집을 벌하는 도승이 그에게 호통한다. "네 죄를 아느냐?" 옹고집의 죄는 욕심이 많고, 악행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집은 그것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그가 집착하고 바꾸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옹고집이 집착하는 것은 거짓된 삶, 가짜 삶이다. 그리하여 '옹고집전'은 옹고집으로 하여금,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가짜 삶과 진짜 삶을 식별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누가 진짜 옹고집인가를 식별하는 것은 어떤 삶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인가를 식별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은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옥신각신한 끝에, 원님 앞에 가서 송사를 한다. 원님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위해서 옹고집의 재산목록과 4대 조상까지의 이름을 묻는다. 결국 원님에 따르면 한 개인이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과 관련된 정보이다. 가짜 옹고집은 거의 한 페이지에 해당하는 재산목록을 한달음에 읊어내지만 진짜 옹고집은 마누라가 잘 알지 자신은 상세히 알지 못한다한다. 원님은 가짜 옹고집을 진짜로 판결한다. 옹고집은 자신과 관련된 정보들에 의해 스스로가 부인되는 것이다. 친구들도, 부인도 자식도 옹고집을 몰라보고 가짜 옹고집을 진짜로 선택한다. 결국 나의 재화, 지위, 그리고 내게 생득적으로 주어진 혹은 친교로 맺은 인간 관계는 나를 구성하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옹고집전'은 말하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거짓 삶은 한낱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푸라기 허수아비로 변하는 것은 가짜 옹고집이지만, 실제로 허수아비로서의 삶을 산 것은 진짜 옹고집이다. 바로 여기에 '옹고집전'의 주제가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은 인간이 한낱 지푸라기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는데에 있다는 것이다. 편의상 가짜와 진짜로 구분하였지만, '옹고집전'에서는 가짜 옹고집을 '헛'옹고집이라고 칭한다. 가짜는 진위의 선별과 관련되는 단어이지만, '헛'은 실재와 의미와 관련된다. 헛옹고집은 삶을 가상의 차원에서 바라보며, 그렇기에 실재하지 않고 의미없는 부질없는 환상을 사는 것이다.

헛옹고집의 정체가 드러나고, '옹고집전'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이 끝이 난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의식이 매우 구차하고 가난하게 되고 곳간집이 전혀 없더라. 백발이 원수이다. 흐르는 물같이 빨리 지나가는 세월은 잠깐이라. 풀잎의 이슬처럼 덧없는 인생이 죽게 되었으니, 슬프고, 가련하다." 결국 인간이란 시간 속에서 유한한 허망한 존재임을 말하면서 '옹고집전'은 끝이난다. 그런데 이 깨달음은 비단 상투적인 종교적 깨달음이 아니다. AI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처럼 허수아비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 유한한 존재, 다시 말해서 죽음을 겪는 존재라는 점이다. AI, 인간복제가 죽음을 물리적으로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과 대비되는 인간 본질을 지닌, 지속가능한 삶의 기초는 바로 '죽음' 그 자체에 있다. 죽음이 우리를 진정으로 인간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미스터 노바디'라는 영화는 장기 복제와 노화방지기술로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사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의 순간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미스터 노바디는 아무도 아닌 자, 허수아비와 같은 의미이며, 결국 옹고집과 같은 의미이다. 죽음의 순간에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회고하는 미스터 노바디의 인생의 이야기는 수많은 다른 삶의 이야기로 갈라져나간다. 죽음만이 의미있는 수 많은 삶의 이야기를 만든다.

AI에 대체되지 않는 미래의 직업을 찾는다면, 그것은 '죽음'을 매만지고, 이야기하며, 위로하며, 물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넘어서게 하는 직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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