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괴물과 인간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  
  • 입력: 2018-04-23 18:00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디지털인문학] 괴물과 인간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괴물을 보았다는 목격담, 달려드는 괴물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증언이 도처에서 들려온다. 이 괴물들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존경받아온 대가들이었고, 또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인기인이었으며, 때로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이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을까.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과도하게 성적욕망이 넘쳐나서 괴물이 된 것일까. 아니라면 우리 사회에서 한 분야의 대가가 되거나 대중의 사랑을 받거나 지도자가 된다는 것과 괴물이 되는 것에 상관관계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 우리가 괴물을 어떻게 식별해낼 수 있을까.

2017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2018년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성폭력을 주제로 삼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리의 질문에 의미 있는 대답을 주는데 그것이 이 영화가 괴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형상을 지닌 수중생명체가 남미에서 잡혀, 미국의 항공우주연구소로 이송된다. 사람을 닮았지만 이 '괴물'은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가졌고, 양서류처럼 눈에는 투명막이 있으며 지느러미가 달려있고 피부호흡을 한다.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 중이기 때문에 우주 환경에서 더 잘 견딜 수 있는 육체적 조건에 관심을 갖는 미국 군대는 이 생명체를 관찰하고 판단하고 정의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정작 괴물은 이 수중생명체가 아니라 그를 관찰하고 판단하고자하는 자들임을 보여준다. 이 괴물에 대한 과학 연구 프로젝트의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는 항상 전기 충격장치가 달린 단단한 몽둥이를 들고 다닌다. 청소부인 여주인공이 그들 처음 만난 곳은 그녀가 청소하는 화장실에서였다. 그는 용변을 본 후가 아니라 용변을 보기 전에 손을 씻는 독특한 습관이 있는데 그것이 진정한 남자들의 습관이라고 그는 말한다. 용변을 보기 위해 세면대 위에 올려놓은 그의 몽둥이에는 수중생명체를 구타해 생긴 피가 흐른다. 피 묻은 몽둥이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것은 단지 '성기'의 상징만이 아니라, 폭력의 상징이다.

그가 폭력적인 것은 물리적인 폭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폭력성은 타인과의 일방적인 의사소통 그 자체이다. 그는 말하는 자이지 듣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부인과 침실에서 사랑을 나눌 때조차 그는 부인이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때문에 그는 듣기는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인 여주인공 일라이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반면에 일라이자는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수중생명체와 전혀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을 한다. 일라이자가 수중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고통과 갈망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몽둥이와 마찬가지로 남성성을 상징하는 또 다른 오브제는 캐딜락 자동차와 장군의 어깨 위에서 빛나는 5성의 계급장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60년대 초반은 미국인들이 되돌아가고 싶은 영광의 시기다.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사태에 맞서서 소련을 무력시위로 굴복시켰던 시절이 바로 이 때이며 자동차 산업 등의 발전으로 세계경제를 제패하는 하던 시대다. 이 시기는 바로 강한 남자들의 시대였다. 그들은 결정하고 명령하는 이들이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승리자다.

이 영화에서 강한 남자가 아닌 존재들은, 청소부인 주인공 벙어리 일라이자와 흑인 친구, 옆집에 사는 늙은 게이 화가 등이다. 육체 노동자, 장애인, 유색인종, 성소수자, 이들은 강한 남성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약자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햄릿의 대사에서 '여자'의 현대적 의미는 이처럼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개념으로서의 '여성'이다. 중심이 남성의 동의어라면 주변이라는 단어의 동의어는 '여성'이다. 그러므로 미 투(Me too)란 억압적 권력관계의 인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분야의 대가가 되거나 대중의 사랑을 받거나 정치지도자가 된 '남성'들은 한 분야에서 아직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못해서, 대중의 인지도를 갖지 못해서, 정치적인 힘을 갖지 못해서 고군분투하는 대중이라는 '여성'이 말하는 바를 듣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승리를 위해 소리를 높여 주장하고 그 권력 아래 있는 타자에게 상처내며 그 존재를 지워버린다. 이것이 이 영화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괴물의 모습이다. 벼락이 치는 삼지창을 든 제우스, 전기고문 몽둥이를 든 스트릭랜드 앞에서 한낱 작은 인간은 고통스럽다.

그런데 괴물이라 여겨진 수중생물체는 남성이지만, 외면적으로 성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몽둥이, 캐딜락, 장군의 계급장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남성성을 지니고 있다. 수중생명체가 스트릭랜드의 손가락을 물어 잘라버린 사건은, 그가 '강한 남자'라는 괴물스러운 남성성을 거세하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잘려나간 스트릭랜드의 손가락은 봉합 수술을 받았지만 치유되지 않고 썩어버린다. 그릇된 남성성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복원하려할 때 그 사회는 썩어갈 것이다.

수중생명체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그의 손이 닿으면 대머리인 옆 집 화가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고, 손톱에 할퀸 상처가 아문다. 타인을 주변화시키지 않는 것, 주변화 된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것, 그것이 괴물로서의 남성성이 아닌, 진정하게 인간다운 남성성이다. 이를 이제 남성성이 아닌 괴물의 대립어로서의 '인간성'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수중생명체는 '그 것', '그 괴물'이 아니라 주인공에 의해 '그'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형 소유형용사 '그녀의', 여성단수 인칭대명사 '그녀'를 '그'라는 인칭대명사가 대체해 나가고 있다.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하는 것, 그리하여 위드 유(with you)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남성, 여성을 뛰어넘어 '그', 즉 '인간'이 되는 길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