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디지털산책] 사람 향기 나는 디지털 세상의 과제](http://contents.dt.co.kr/images/201803/2018033002102351607001[1].jpg "[디지털산책] 사람 향기 나는 디지털 세상의 과제")
요새 직장인들은 정보가 필요하면 구글신(神)에게 물어본다. 동영상 콘텐츠에 열광하는 Z세대는 TV보다 유튜브가 더 친숙하다. 주말에 맛집이나 핫플레이스에서 보낸 즐거운 경험은 꼭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한다. 가까운 친구가 요즘 무얼 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알고 싶다면, 전화 걸지 않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확인한다. 길 찾을 때 택시 부를 때 쇼핑할 때 동료와의 점심식사 비용을 N분의 1로 정산할 때도 카카오 앱만 있으면 된다.
이런 IT서비스들이 우리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없었을 땐 불편해서 어찌 살았을까 싶다. 내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정보만 골라 추천해주는 맞춤 기능은 정보 검색을 위한 내 시간을 줄여주고, 온라인을 통해 만난 친구는 내 인맥을 넓혀준다. 때론 이런 온라인의 연결이 오프라인에서의 연결보다 더 강한 신뢰와 지지를 받기도 한다.
IT 기반 플랫폼 회사가 제공하는 이런 편의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무수한 개인정보와 데이터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IT 기업의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내 정보를 기꺼이 제공하고, 기업은 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우리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홍보가 필요한 기업에게 정교한 타깃팅 광고를 제공해서 수입을 벌어들인다. 페이스북에 글은 이용자가 쓰지만 돈은 광고로 페이스북이 벌고 있는 셈이다.
SNS와 디지털 환경이 발달할수록 피로도도 높아진다. 친절했던 맞춤 추천기능은 기업 광고로 도배돼 내 의사와 관계없이 수시로 팝업되고, SNS에서 소비되는 행복한 이미지는 다소 소모적이며, 때로는 팩트 체크도 안 된 뉴스가 무한 공유돼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을 담은 IT서비스가 눈길을 끌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 핫한 소셜미디어 베로(VERO)는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이 없다. 즉 광고가 없다는 말이다. 광고 대신 소셜미디어 본연의 목적인 소통과 공유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행복해 '보이는' 순간만을 '가짜 연결'하는 SNS 대신, 조금이라도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가까운 친구와 직장 상사, 모르는 사람에게 각기 다른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게 했다. 블록체인 소셜미디어 '스팀잇'은 글을 쓴 사람이 보상받는다. 좋은 글을 추천하면, 글쓴이가 75%의 수익을 가져가고, 추천한 사람들은 25%를 가져간다.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의 뉴스 배치 조작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블록체인 뉴스플랫폼 시빌(CIVIL)은 기자와 독자가 직접 뉴스를 거래한다. 때문에, 광고주의 입김, 외압에 따른 자기 검열, 기사를 선정해 메인 페이지에 배치하는 포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소수의 IT 플랫폼이 독점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광고, 가짜 인생, 가짜 뉴스가 없는 진짜 소통과 공유를 원하는 사용자의 갈증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페이스북은 "세상을 더 개방적이고 더 연결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구글은 "세상의 정보를 누구나 쉽게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시작됐듯이, 모든 웹서비스의 처음 목적은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과학기술의 본연의 목적이 사람과 지구, 생태계를 이롭게 하는 것이었지만, 때로는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처럼, 지금의 디지털 환경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얼마 전,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 캠프 쪽 컨설팅 회사에서 페이스북 이용자 5000만 명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해 이용한 것이 밝혀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사과하기도 했다. 개인 정보는 공공재라는 웃픈 말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내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우리는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 1990년대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확산을 겪으면서 디지털 혁명기 한복판에 살고 있다. 이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환경에서 온라인 연결을 끊고 살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주체적으로 디지털 환경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 향기 나는 디지털 환경은 사람에 의해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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