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과기 발전이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위행복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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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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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과기 발전이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위행복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


대한민국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했다. 이 밖에도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등 국민들이 존엄하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선언들을 헌법은 풍부하게 담고 있는데, 그러나 '사람'이 존엄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원리와 제도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학문 발전에 관한 규정은 헌법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헌법 제127조는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과학기술 발전의 책무를 국가에 지웠다. 국민 생활의 풍요로움을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강력한 근거가 되어 왔으며, R&D 예산의 95% 이상이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되어 온 것 역시 이러한 법률 체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과학기술계는 '경제를 위한 과학기술'의 개념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보도에 의하면 이러한 의견이 받아들여져 '기초학문을 장려한다'를 헌법에 삽입하거나,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기존 조항에 '사람에게 이롭도록'라는 표현을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기초학문 발전을 적극 도모한다는 방침은 현 정부 출범 시점에 이미 발표되었고,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 규모가 실제 커졌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이 오히려 축소됐다는 것이다. 국가 R&D 예산의 4%를 약간 넘는 비율만 배정해 오던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다시 덜어낸 것인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인류사회의 변화를 보면 우리의 법체계와 국가 R&D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 극명히 드러난다.

2017년 한국은 경제규모에 있어 세계 12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는데, 그러나 우리는 15년여의 세월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제도를 혁신하지 않으면 소득 수준이 더 높아져도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며,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더욱 우려스럽다. '과학입국'의 시책이 경제성장에 공헌한 것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법적 제도를 신설하고 R&D 예산 역시 그렇게 재편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창안한 클라우스 슈밥은 기술발전이 초래할 불평등의 심화와 소외의 확대를 미래 사회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창출할 혜택이 소수의 개인이나 기업에 의해 장악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의학 발달의 혜택이 부유한 소수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조차도 초래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멈춰지지 않을 것인데, 이것이 계속해서 삶의 질을 높이는 토대가 되려면 인간존중의 이념과 사회구조의 창출이 수반돼야 한다.

인문사회 분야의 발전이 외면되면 기술발전이 오히려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 유지를 보장할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을 서둘러야 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고도의 정밀기계들이 운용되는 사회에서도 인간을 억압하거나 인류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결국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대폭 높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금번의 헌법 개정을 통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분야가 함께 발전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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