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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사십일의 고독을 기억하며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입력: 2018-03-12 18:00
[2018년 03월 13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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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사십일의 고독을 기억하며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이스라엘의 한 청년이 허허벌판으로 나갔다. 가족과 친구를 떠나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곳,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있는 곳으로 간 것이다.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일자, 고독한 그의 모습은 뜻 깊어진다.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인생, 흙먼지 바람을 맞으며 깃대처럼 우뚝 서 있지만, 언젠가는 먼지처럼 흩어지고 말 육신이 아니던가. 그의 허름한 옷이 깃발처럼 나부낀다. 그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40일을 그렇게 몸을 깎아내며 지냈다. 처절한 외로움으로 정신을 비웠고, 가혹한 허기로 육신을 굶겼다.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 묻고 또 묻고, 깊이 생각하며 또 생각했다.

삶의 언제쯤, 누구나 한 번은 그렇게 그처럼 고독할 필요가 있다. 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사순절(Quadragesima)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한다. 오늘이 28일째 되는 날이다. 40일의 이 절기가 시작되는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부른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인생임을, 생명을 태워 죽음이 닥치는 순간, 이 세상에 한줌 재를 남기고 사라질 존재임을 잊지 말고 절절히 느끼라고 그렇게 그 날을 부른 것이다.

단식(斷食)은 하루하루 그의 몸을 비틀어 짰다. 피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퀭한 눈, 거칠게 말라 터져가는 입술, 생기가 온몸에서 거의 빠져나갔다. 목숨이 마지막 잎새처럼 그의 몸에 간신히 붙어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 그의 몸에 부딪힌다면, 목숨은 낙엽처럼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이 위태로웠다. 기진맥진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에게 찾아온 가장 강렬한 유혹은 떡(artos)이었다. 죽기 전에 달콤한 포도주에 폭신한 떡 한 조각 흠뻑 적셔 한 입 가득 먹을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돌을 집어 떡을 만들어 씹어 먹고 싶을 지경이었다. 죽을 만큼 처절하게 배고프자, 떡이 곧 제 살처럼 값진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겨우 떡의 가치를 알기 위해 여기로 왔단 말인가? '역시 먹고 사는 데에는 떡이 최고야, 그 이상은 없어,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고작 이 따위 결론을 내려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광야에서 굶고 고독했던가? 연명하기 위해 떡을 찾는 삶을 함부로 욕하지 말라고 외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던져 버리고 아무도 없는 이 허허로운 곳으로 와서 40일을 견뎌 왔단 말인가? 허탈함에 오싹했다. 주저앉아 울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배를 움켜지면서도 허기에 굴복하지 않고 그는 생각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는 없다. 이렇게 절박한 떡의 가치를 넘어설 수 있는 뭔가가 있을 텐데, 그 숭고하고 고결한 가치는 무엇일까? 그 고독의 절정에서 그는 어떤 답을 얻었을까? 아니 궁극의 답을 얻지 못한 채, 물음만을 더 날카롭게 벼렸을까? 그래서 그 이후의 삶이란 그때 얻은 답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물음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채워나갔던 것은 아닐까?

삼년 후, 그는 당대 종교 정치 지도자들의 음모에 걸려 죽을 위협에 직면해야 했다. 곧 엄습할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는 가장 사랑하던 제자 열둘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그것이 그가 그들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광야에서 곡기를 끊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그를 내내 동행했던 제자들을 위해 그가 마련한 것은 조촐한 만찬이었다. 둘러앉은 제자들에게 떡(artos)을 떼어 나눠주며 말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아마도, 죽음을 견뎌내며 떡의 간절한 가치를 깨달았던 그가 그때 그 떡에 부여한 만큼의 의미를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직 그처럼 처절하게 배고파 본 자만이 떡의 진정한 가치를 알 것이므로. 떡의 가치를 간절하게 깨닫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떡을 넘어서는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맛 본 자만이, 다시 그 떡의 참된 가치를 알 것이므로.

어쩌면 그는 광야에서의 40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 죽는 순간까지도 내내 고독했을지 모른다. 그의 고독이 우리를 깨운다. 일 년에 한 번쯤,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심으로 얽힌 삶의 번잡한 그물에서 벗어나 조용히 그의 고독을 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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