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DT광장] IP카메라, `기술피로도`도 고려해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711/2017111602102351607001[1].jpg "[DT광장] IP카메라, `기술피로도`도 고려해야")
최근 정부는 "IP카메라의 보안을 강화해 국민 안전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IP카메라는 기존의 폐쇄회로 TV, 즉 CCTV(Closed Circuit TV)와는 달리 인터넷으로 연결돼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기 또는 반려견을 기르는 가정이나 도난 사건을 막으려는 매장 등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이를 해킹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몰카 영상을 음란물 사이트에 올리는 등 관련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에 정부는 보안이 취약한 IP카메라를 식별하고 보안조치 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이 같은 정책을 일상생활의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사물인터넷(IoT) 기기 전반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물인터넷 기기의 경우 보안도 중요하지만 '기술피로도' 또한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피로' 또는 '기능피로'란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기들의 복잡함이 오히려 인간에게 피로와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뜻으로, 쓰기 어려운 첨단 기능들을 잔뜩 넣기 보다는 오히려 기능은 몇 개 없더라도 직관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람과 기계가 원활히 소통(일명, '휴먼-컴퓨터 인터페이스(HCI)')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술피로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의 게임업체, 닌텐도를 들 수 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닌텐도가 세계 게임업계의 리더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술피로도를 최소화시킨 게임기의 개발에 있었다.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는 성능 면에서 닌텐도의 게임기 '위(Wii)'보다 2~3배 높은 반면, 조작법이 너무 어려워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설명서를 여러 차례 읽어야만 했다. 반면 닌텐도의 위는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포기한 대신 위모콘이라 불리는 체감형 게임 조정기를 이용해 따로 조작법을 익힐 필요가 없이 누구나 직관적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는 곧 몰락해 가던 닌텐도의 부활로 이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당장 구현 가능한 기능이라 할지라도 편리한 사용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다음 버전으로 미뤘다고 한다. IP카메라와 같은 사물인터넷 기기의 경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중에는 IT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많다. 비밀번호 설정, 펌웨어 업데이트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복잡한 보안기능은 없는 것이나 똑같다. 외국에서는 이미 'usable security'라고 해 보안 수준은 유지하면서도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방식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으며,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해마다 관련 학술대회에 많은 돈을 후원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특별 대책을 당부할 정도로 몰카 범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관심 사안이라는 이유로 이를 조속히 처리하려고만 든다면, 자칫 실효성 없는 정책들이 남발될 수도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을 중심에 둔 정책을 마련코자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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