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시론] 웃음거리 된 `비정상의 정상화`](http://contents.dt.co.kr/images/201611/2016112502102351607002[1].jpg "[시론] 웃음거리 된 `비정상의 정상화`")
우리말 '정상(正常)'과 영어 'normal'은 같은 말이나 풍기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우리말 '정상'은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강조. 그래서 '정상적'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바람직한 모습'을 떠올린다. 정상적인 것은 추구의 대상, 비정상적인 것은 회피의 대상이다.
반면 영어 'normal'은 '흔해서 보편적이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바람직한 게 'normal', 바람직하지 않은 게 'abnormal'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어로 'norm', 즉 규범은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행동양식"을 말한다. "바람직한 행동양식"만 지칭하지는 않는다.
한때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을 "바람직한 관행"으로 바꾸자는 것. 그런데, 어떤 이는 이를 냉소적으로 해석했다.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을 널리 보편화하자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구호를 "잘못된 것을 널리 퍼뜨리자"라는 구호로 비꼰 것이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 민주화의 봄 이후 우리는 매 정권마다 '비정상'의 더러운 치부를 봤다. 그리고 예외없이 그 비정상이 다음 정권에서 단죄되는 모습도 봤다. 그러기를 벌써 여섯 차례. 이만큼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해 왔으면, 지금쯤 우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어야 맞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우리는 또 한번의 추악한 '비정상'을 보게 됐다. 고구마 줄기 캐듯 엮여 나오는 비정상의 모습에 우리는 분노하고 좌절하고 실망했다. 정권마다 거듭된 '비정상의 정상화'가 정상화를 가장한 '비정상의 보편화'가 아니었나 의심됐다. 전 정권의 비리 단죄가 새로운 비리 탐닉의 위장술이라는 음모설이 오히려 설득력있게 들렸다.
이제 정말로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더이상 정상을 가장한 비정상이 정치권에, 공무원사회에, 기업경영에, 교육현장에, 그리고 개인의 사회생활에 기생하게 놔두어선 안 된다. 그러자면,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내가 표출하고 있는 분노도 혹시 자기기만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나는 과연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국회의원은 겉과 속이 다른 연기자라고, 그래서 국정감사장이 공연장으로 전락했다고, 국민을 위한다면서 지역구만 챙긴다고, 정치적 소신은 없고 계파정치에만 몰두한다고, 국가예산의 효율적 배분보다 쪽지예산확보에 치중한다고, 자신이 한 말을 수시로 뒤엎는다고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기는 쉽다.
청탁없이는 취업이 어렵다고, 인맥 줄타기를 하지 않으면 출세가 어렵다고, 권력층과 결탁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고, 경쟁력만 가지고 대기업에 납품계약을 따기는 불가능하다고, 권력기관에 밉보이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어렵다고 열악한 기업경영환경을 토로하기도 쉽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남 탓하고 남을 비난하며 부당한 정치현실, 기업현실, 사회현실에 분노하고 토로하는 것만으로 뭐가 달라지겠는가. 배설은 변화의 동력을 약화시킬 뿐. 진정한 변화의 힘은 배설이 아니라 참회에서 나온다. 내 안의 '비정상'부터 몰아낸 후 우리의 비정상을 함께 몰아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맹목적 분노는 새로운 '비정상'의 단초를 제공할 뿐이다.
'정상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의 결단이 현실에서 진정 법과 제도와 규범과 관행의 정상화로 이어지는지 두 눈 크게 부릅뜨고 끈질기게 지켜봐야 한다. 이번 최순실 사태가 정상국가를 향한 우리의 열망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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