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오디션과 `연기왕`](http://contents.dt.co.kr/images/201610/2016102802102251607002[1].jpg "[디지털인문학] 오디션과 `연기왕`")
TV를 켜면 예능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룬다. 예능 중에서도 오디션 형식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지 오래다.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K 팝스타, 수퍼스타 K, 쇼 미 더 머니 같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지만, 요리, 댄스, 뮤지컬 연기 등등 다양한 장르로 오디션 예능은 확산되고 있다.
오디션 형식의 매력은 그 안에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폴 포츠나 수잔 보일처럼, 주목받을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놀라운 재능을 드러내는 장을 바로 오디션 예능이 제공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단지 신데렐라처럼 스타로 등극하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역경을 딛고 일어난 휴먼드라마가 함께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또 다른 매력은 그것이 민주적인 절차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공개된 방식으로 이뤄지며, 모든 이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되고, 오직 실력에 의해서 평가받는다는 점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호감을 갖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실력보다는 배경에 의해 좌우되고, 판단의 기준조차 공개되지 않거나 아예 접근조차 가능하지 않은 사회적 기회와 비교해 볼 때 오디션은 매우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절차다.
그런데 오디션이라는 형식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심사위원의 존재다. 그들은 때로 O, X로, 때로는 계량화된 점수로 오디션에 응시한 후보자를 평가한다. 그들의 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이기 위해서 해당 분야에서 그 능력과 소양을 인정받은 전문가를 위촉한다. 오디션 형식이 주는 드라마는 때로 심사위원들에 의해 증폭되기도 한다. 퍼포먼스가 약한 후보자에게 그가 지닌 가능성에 신뢰를 보내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퍼포먼스가 나쁘지 않지만 후보자의 잠재력의 최대치를 견인해 내기 위해 위기로 내몰기도 한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내든 간에,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임무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후보자들을 서열화하고, 그 중에서 가장 퍼포먼스가 좋은 단 한 명의 승리자를 선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경쟁의 과정을 극적으로 포장하고 최후의 일인을 선택하기 위한 위기감을 고조한다. 오디션 예능을 통해서 시청자들은 이와 같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오디션 예능을 보면서, 그 속에서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그리고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강제되는 경쟁과 선발과 배제가 그 과정의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가정 속에서 합리화된다.
그런데 어원상 오디션은 '듣다'라는 동사로부터 비롯되는 단어다. 오디션은 배우의 대사를 혹은 가수의 노래를 듣는 자리이다. 오디션의 심사위원은 그러므로 단지 '듣는 사람'이다. 오디션을 통해 한 명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가 오디션에 응시한 사람들 중에 최고의 배우이거나 최고의 가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디션은 콩쿠르가 아니다.
오디션에서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가 작품 속에서 고려하는 배역의 삶을 표현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디션의 심사위원은 최고를 가리는 심판관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와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자리에 배치하는 사람이다. 오디션 예능은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최후의 승리를 향한다면, 오디션 그 자체는 다수가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과정 속의 하나의 계기이다.현재 남산예술센터에서 <나는야 연기왕>이라는 연극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14명의 배우들이 오디션을 통해서 연기왕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포스터부터 흥미롭다. 이 작품의 포스터는 얼마전 유인촌, 윤석화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여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이 대거 관람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햄릿>의 포스터를 패러디하고 있다. <햄릿>의 출연자들은 역대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던 배우들이고, 그리하여 별다른 디자인 없이 너무도 잘 알려진 그들 각자의 면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포스터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그들의 경력 전체에 걸친 오디션에서 선발된 최고의 배우들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야 연기왕>의 포스터는 최고라 인정받은 적 없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배우들의 모습을 '나는야 연기왕'이라는 '도발적인' 제목과 함께 담고 있다. 이 작품에는 드라마가 없다. 경쟁을 거치고, 최종 일인이 남을 때까지 한 사람씩 탈락해 가고, 그 속에서 탈락하는 자의 슬픔과 선별되는 자의 환희를 포착하는 인간 드라마가 없다. 그저 14명의 배우가 2번을 반복하는 28개의 독백 대사의 오디션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낭송되는 배우 자신의 삶의 독백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배우로서 자신을 지속시키기를 바랄 뿐이며 이를 위해 자신과 맞설 뿐이다. 그들이 연기왕인 까닭은 오디션 속에서 단 한 명으로 선발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스스로를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금박의 종이왕관을 쓴다.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삶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오디션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왕들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우리 사회를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에게 왕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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