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 2015 새해 새 비전
"과학기술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과학기술이 국가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다가오는 50년 과학기술을 설계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부족한 부분을 반성하고 혁신을 통해 미래를 어떻게 꾸려 나갈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임기 중반을 향해가고 있는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의 눈빛은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빛에는 지난 50년 동안 과학기술계 선배들이 쌓아온 성과에 '과학기술 혁신'을 더해 미래세대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담겨있었다.
박 원장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조하면서 국가 과학기술정책 전반의 방향을 설정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KISTEP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창조경제 3년차로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원장은 "단순한 '지식창출형' 과학기술정책에서 벗어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가치창출형'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연구개발(R&D)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적 현안이 되고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임기 동안 우리나라 과학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현 정부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를 강조하면서 KISTEP의 임무도 막중해졌다. 창조경제는 국정패러다임이기도 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세계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성장, 기술혁신 전략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창조경제 시대의 과학기술 정책은 단순한 지식창출형에서 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한 가치활용형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의 '수단'을 넘어 경제혁신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R&D 성과의 기술이전·사업화와 창업 활성화가 키워드가 됐고,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에서 성장할 수 있는 큰 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졌다. 더불어 과학기술 분야에서 현장 기술규제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것도 최근 과기정책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KISTEP은 R&D 성과의 이전과 사업화, 창업 활성화를 위해 창조경제형 R&D시스템 구축, 현장 중심의 규제 발굴·개선에 나서고 있다. 그 예로 지난해 7월에는 '창조경제형 정부연구개발혁신방안'을 수립했고, '과학기술규제개선 방안'도 마련해서 시행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핵심 키워드로 '혁신'을 꼽았다. 이유가 있다면.
"최근에는 혁신이라는 말이 유행이 된 것 같다. 혁신이 화두가 된 것은 10여년 정도가 됐지만, 제대로 된 혁신이 이뤄지지 못하고 구호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들은 IMF라는 위기를 맞으면서 기존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혁신을 이뤄내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됐다. 반면 공적 부문, 특히 정부나 정부 산하 공공기관은 혁신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는 민간, 정부 모두 새로운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과거 혁신을 주도했던 기업들도 최근 혁신역량 개발에 소홀해지면서 중국 기업들의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계에서는 향후 50년의 과학기술정책을 그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 부문의 혁신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는 지엽적으로 혁신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전 분야에 걸친 거시적 관점에서 산·학·연·관이 함께 모여 진정한 혁신을 논의해야 한다. KISTEP도 올 한해 이런 부분에서 노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KISTEP이 이달 선정한 '2015년 과학기술정책 10대 이슈'에도 혁신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중 '젠더혁신'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데 어떤 의미인가.
"선진국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저성장, 고령화, 저출산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인력을 잘 양성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과학기술계는 여성인력의 참여가 높지 않은 분야로, 여성이 더불어 발전하고 공헌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세계 과학기술계의 화두였다.
최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일반적인 양성평등 수준의 논의가 아닌, 보다 깊이 있는 '젠더혁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 과정에서 성의 편견이 존재하면서 연구성과가 발전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 동안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퇴출당한 약 10가지 중 8가지가 여성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된 것이 원인이었다. 실험에서 주로 수컷 생쥐를 사용하고 임상시험 과정에서도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하면서 여성의 생리적 차이가 연구결과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볼보에서는 여성들이 연구인력으로 투입돼, 여성의 체형에 맞는 'YCC(Your Concept Car)'를 출시하면서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젠더혁신'을 통한 연구와 기술개발이 새로운 시장의 가치를 창출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젠더혁신이 이뤄지기 위해 선결돼야 할 점이 있다면.
"우리 정부는 2010년부터 '성인지(性認知) 예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산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남녀별로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 평등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과학분야에선 대부분 여성 과학기술인력 양성과 관련된 사업뿐이다. R&D를 기획·선정·평가하는 과정에서 젠더혁신이 포함돼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나 이와 관련된 예산은 거의 없는 셈이다.
젠더결함 없는 연구개발을 위해 R&D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과학기술 분야 성인지 예산 편성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R&D의 기획·수행·평가 과정에서도 성별의 영향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KISTEP은 오는 8월 젠더혁신을 논의하는 '과학기술 분야 아시아태평양 젠더서밋'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젠더혁신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그 내용들이 실질적으로 연구현장까지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과학기술정책 10대 이슈에서 '과학기술 중심의 통일'도 강조했다.
"최근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그에 대비한 준비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도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해 전략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통일준비위원회에 과학기술분과가 없고, 과학기술 분야의 인사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북한의 과학기술 인력, 발전 정도, 자원, 표준 등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하고 난 후 통일을 맞는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통일준비위원회 내 과학기술 분야 분과위를 설치해 북한의 과학기술실태를 조사하거나, 간접적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공업을 중심으로 개성공단에서의 남북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듯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특별한 지역에 R&D 협력센터를 만들어서 가벼운 부분부터 협력을 시작하는 것도 통일을 앞당기고 대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재난안전 체계 구축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재난안전과 관련한 기술 개발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이 규제개혁이다. 규제개혁의 필요성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규제를 잘못 풀게 되면 재난안전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발달의 측면에 따라서 규제를 풀어야 할 부분은 풀어야 하지만, 어떻게 규제를 풀고 선제적으로 대응할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무인자동차가 시장에 나왔을 때, 어떠한 사고들이 발생할 수 있고 사고가 날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느냐 하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새로운 혁신이 일어났을 때 그에 맞는 규제 개선이 이뤄져야 사전에 재난안전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시장을 창출하는 데도 시간이 지연되지 않는다. 재난안전 분야에서는 기술개발과 더불어 시장을 미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규제 개선 사항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관 내에서 올해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은 무엇인가.
"올 한 해 연구원들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연구원들과 끊임없이 협업하고 소통하면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혁신 이슈들을 만들고 확산하는 역할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계와 국가 전체가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만들고 선도형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고 싶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꾸준한 성장을 이뤄내면서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라, 후손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미래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백나영기자 100na@dt.co.kr
◇ 박영아 원장은 …
○ 약력
- 1979년 상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1983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물리학과 박사
- 1988년 2월~1989년 2월 포스텍 물리학과 객원조교수
- 1989년 3월~2013년 9월 명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2005년 1월~2006년 12월 명지대학교 교수협의회(자연캠퍼스) 부회장
- 2006년 4월~ 아시아·태평양 물리연합회 여성물리실무그룹 위원장
- 2007년 1월~2010년 12월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 2007년 7월~2008년 10월 세계물리연맹 제3차 세계여성물리대회 조직위원장
- 2008년 5월~2012년 5월 제18대 국회의원
- 2013년 10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취임
- 2014년 6월~ 중앙공무원교육원 정책자문위원
- 2014년 11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2기 자문위원
- 2014년 12월~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이사
○ 수상이력
-2012년 1월 제1회 과학기술백년대계상
-2012년 2월 제1회 의학교육 대의실천상
-2012년 2월 대한민국국회 과학기술 현인상
-2013년 4월 과학기술유공 훈장 웅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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