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개편 단일법인이 해법…연구소 이기주의 설득해 갈것
기업, 대학ㆍ연구소 지원 늘려야
과제 기획ㆍ연구비 배분도 연구자가 해야 의욕적 활동
기술이전ㆍ성과확산 주력할것
기업, 대학ㆍ연구소 지원 늘려야
과제 기획ㆍ연구비 배분도 연구자가 해야 의욕적 활동
기술이전ㆍ성과확산 주력할것
■ 월요초대석 -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국가 미래경쟁력은 결국 과학기술에서 결정되는 만큼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뛰겠습니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23일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 위원장은 초대 위원장 내정 소식이 전해진 후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각오를 밝혔다. 새로 발족하는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수장으로서 어깨가 무겁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선봉장이 되겠다는 의지가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3일 서울 신문로 에스타워에 위치한 국과위 19층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국과위 출범의 단초가 됐던 정부출연연구기관 개편을 이뤄내기 위한 정부출연연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사흘 전인 10일 아예 열리지 않았고, 인터뷰 다음날인 14일은 열렸지만 출연연법 개정안 상정이 안건에서 빠졌다. 결국 출연연법 개정안은 다음 국회로 넘어가게 됐고 통과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1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때문인 듯 다소 피로해 보였지만 김 위원장은 `융합'과 `개방'을 키워드로 하는 과학기술계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꼭 필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을 인용하며 과학기술의 시스템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대담=이근형 정경과학부 부장
-과학기술 행정조직체계를 완성하는 컨트롤타워로서 국과위가 출범한 지 1년 가까이 됐다. 지난 1년간 많은 변화를 준비하고 추진해왔다. 그 소회를 듣고 싶다.
"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것은 작년 3월28일이었지만 한달 전인 2월28일 울산에서 올라와 3월1일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위원회의 일이 아주 중요한 업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1970년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였다. 2010년에는 2만달러로 늘었다. 40년 사이에 100배로 커진 것이다. 그런데 2006년부터 5년간 계속 2만달러에 머물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오다가 2만달러의 트랩에 걸린 위기의 시기인 것 같다. 다행히 2011년은 2만2000달러라고 하는데, 과거에 비하면 상당한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서 있는데 그에 걸맞게 사회 전반에, 특히 과학기술계에 패러다임 시프트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과거 잘 하던 것만 잘해서는 안 되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변화해야 진짜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국과위 위원장으로서 여러 노력은 기울이는데 과학기술, 특히 R&D는 1∼2년 사이에 혁신적으로 바꾸기 힘들도 바꿔서도 안 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 16조원에 이르는 국가R&D 예산 중 75%를 배분ㆍ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개방'과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는데.
"일을 맡으면서 과연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지 생각했고 그걸 견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의 과학은 융합이라고 한다. 융합을 통해야 새로운 시장과 가치가 만들어지고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융합이라는 말에서 소통의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융합이 과거 정체성을 다 무시하고 새로운 틀에 넣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갖는데 사실 융합은 그게 아니다. 융합의 의미는 여태껏 잘해오던 두 분야가 협력하는 것이라고 본다. 과학기술계가 보다 개방하고 협력했으면 좋겠다. 과기 행정은 비밀이 있을 게 없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과 협력시스템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가시적 성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정부체계도 아직 개방에 흔쾌히 나서지 않고, 과기계에서도 이것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는 소통이 아직 잘 안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
- 정부출연연 개편을 위한 출연연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보는지.
"출연연 체제 개편은 지난 3년간 해온 얘기다. 전문가 논의를 3번이나 거치고 정책연구를 통해 단일법인화라는 결론을 얻었다. 부처 이기주의의 높은 벽을 없애야 한다는 연구현장의 공감이 무엇보다 컸다. 그런데 그것을 무너뜨리고 연구소간 벽도 무너뜨리자고 하니 부처와 마찬가지로 연구소 이기주의가 드러나는 것 같은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해가야 할 것이다. 이 일은 정권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것이고, 출연연은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추진하고 설득해 나가겠다."
- 연구자들은 지식경제부 산하에 존속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대한 형평성 문제와, 법인 해체로 인한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데.
"어떤 제도를 바꾸더라도 빛만 있고 그림자가 없을 수는 없다. 당연히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그런 그림자 부분에 대한 지적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림자가 옅어지고 올바른 일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회 문제에서 총론은 동의했다가 각론에서 입장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있다. 각 연구소가 가장 우려하는 게 정체성 문제다. 동의한다. 정부안은 최대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기계연구원이나 전기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을 없애서 뭘 하겠는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연구소간 문을 열고 덩치를 더 크게 하면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차원이다.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이 27개인데 가장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기술이전이다. 연구실과 시장간에 놓인 계곡을 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각 연구소마다 2∼3명, 많게는 7∼8명이 기술이전팀을 이루고 있는데, 그들을 모아 100명이 하면 훨씬 경쟁력이 커진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전문가들이 그러한 결론을 냈을 것이다.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 정치적 상황이 녹록치 않다.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
"5월에는 국회의원들도 다급한 현안에서 물러나게 되니 좀더 대승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본다."
- 그 방향으로 바뀌면 출연연의 경쟁력이 강화될까.
"어쨌든 출연연은 정부에서 좀 멀어져야 한다. 지금같이 27개의 작은 연구소 체제로는 각 부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정부에서 멀어질 수 없다. 모이고 더 커지면 멀어질 수 있다. 연구과제 기획이나 연구비 배분을 지금 부처에서 하는데 이제 그럴 일이 아니다. 연구자들이 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자들도 신이 날 수 있다. 덩치가 커지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연구소는 정부에서 멀어지고, 과학기술은 정치에서 좀 멀어졌으면 한다. 정권과는 상관없이 가야 한다. 연구소 체제가 정권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정권 바뀌는 것과 자꾸 연관을 짓는데 그것만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학기술자들이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면 누가 과학기술자의 의견을 존중하겠는가."
- IT를 연구하는 ETRI가 융합연구의 핵심임에도 통합에서 제외된 게 문제로 지적되는데.
"과학기술적 접근방법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100점을 찾는 게 아니다. 지금 정부안은 절대 100점이 아니다. 70점 정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80, 90점으로 차츰 높아질 것으로 본다. ETRI를 포함하는 것과 제외하는 것 모두 당위성이 있다. 판단의 몫이다. 지금은 70점 짜리 안이지만 잘 굴러가면 당연히 ETRI도 들어올 것으로 본다. 지금 ETRI가 안 들어온다고 시작도 못하면 그것은 더 뒤로 가는 일이다."
- 그렇다면 50점 짜리 안은 어떤가. 법인은 그대로 두고 국과위 산하로 일원화하는 방안 말이다.
"정부로서는 단일법인화해서 사람이 연구조직간에 자유롭게 왔다갔다하고 함께 모여 일하도록 연구소간 벽을 낮추는 게 가장 큰 포인트다. 그걸 안 하면 한 곳에 모은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처의 벽을 허물어도 연구소간 벽은 그대로 두면 큰 의미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결정은 국회에서 할 것으로 본다."
- 앞으로 연구원들과의 추가적인 소통계획은.
"5월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연구원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는지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게 많은 장을 만들고자 한다.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도록 하고 공청회도 가질 계획이다. 정부안에 대해서는 느낌에 연구원들이 다 아는 것 같다."
- 이번 개편안과 관련, 정부와 연구현장간에 신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연구자들이 정부의 목소리를 못 믿는 것 같다.
"그렇다. 신뢰가 가장 큰 문제다. 과기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과기계 내에서도 과학기술자는 정부를 못 믿고 정부는 출연연을 못 믿는다. 지난 세월동안 쌓인 불신 때문이다. 어느 쪽에선가 해소가 돼야 한다. 우리는 40년 만에 굉장한 나라가 됐고 여기서 한번 더 나아가야 한다. 얼마 전 코닥이 파산했는데, 130년 역사의 코닥이 망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기업이 부도나면 경영자들은 그동안 해오던 일을 똑같이 했는데 왜 망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계도 지난 40년간 잘해왔지만 똑같이 해서는 안 되는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이미 여러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분야에 앞서서 과기계가, 과기계니까 패러다임 변화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본다."
- 출연연 정체성 위기가 맞는 말인 것 같다. 연구자들은 대학으로 이직하고 대학과 출연연의 연구에 구분이 모호하다.
"R&D야말로 평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경쟁이다. 과학자 개개인뿐만 아니라 연구소간에도 경쟁이 있어야 한다. 서로 문을 열어야 경쟁이지 자기 것은 지키려 하면 경쟁이 아니라고 본다. 코닥이란 브랜드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나. 연구소들이 브랜드 얘기를 하는데 지키겠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 경쟁에서 잘 하면 저절로 지켜진다. 좀더 넓은 무대에서 경쟁하고 더 잘하는 연구자와 더 중요한 연구소가 지원을 많이 받는 개방체제가 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 되는 게 산학연 협력인데, 그중 기업은 세계와 경쟁하느라 오픈돼 있다. 기업이 학과 연을 리딩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해 기업이 대학과 연구소에 주는 연구비가 매우 적다. 인력양성과 연구활동 강화를 위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기업이 더 많이 기여했으면 한다."
- 출연연의 연구환경 조성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매우 중요한 이슈다. 연구자 처우 개선은 오히려 두번째 이슈다. 연구자들이 신나게 일하려면 자신이 연구과제를 기획해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소가 정부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연구과제중심(PBS) 제도를 완화하고 있다. 현정부 들어 출연연이 연구과제를 수주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고유연구 사업 비중을 2011년 40%, 올해 50%로 높였다. 2013년은 60%, 2014년은 70%로 올릴 계획이다. 연구비 100원 중 70원은 연구자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쓰라는 것이다."
- 중요한 변화인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나본 출연연 연구자들이 프레젠테이션 잘 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더라.
"그런데 그런 고민은 계속 해야 한다.(웃음) 연구자들은 자신의 과제에 대해 평가하지 말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연구자도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고 알려야 한다."
- 기술이전 활성화도 중요한 과제인데.
"대한민국은 기술이전이 참 안 되는 나라다. KAIST와 미국 MIT를 비교해 보면 특허출원 수는 KAIST가 MIT의 3배다. 그런데 기술이전 수익은 70분의1이다. 양적 성과만 지향한 결과다. 특허가 기술이전돼서 수익으로 돌아오는 게 진짜 성과인데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앞으로 집중적으로 할 일이 기술이전과 성과확산이다. 지금까지 그 분야에 예산투입이 안 됐는데 이제 할 예정이다. 변리사, 변호사, 자금담당 등 전문인력도 늘려야 한다. 출연연이 단일법인화되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게 기술이전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도 중요하다. 이공계 졸업생들에게 기업가 정신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공계대학에 가면 학생들에게 취업과 진학이라는 두가지 길만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더 많은 학생이 졸업 후 모험을 해봤으면 한다. 물론 엄청나게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2∼3번 실패하면 일어서는 학생이 있지 않겠는가. 100세까지 살텐데 젊어서 5∼6번 실패하는 게 어떠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다. 대기업에 취직해 그만둔 후 실패하면 되겠는가. 학생들에게 그런 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교과부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
- 교육현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지.
"특히 대학의 이공계 교육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기계과는 40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제 대학이 과거와 똑같이 해도 되는가 하는 고민이라도 심각하게 해야 할 때다. 공대와 자연대에 입학한 학생이라도 잘 교육시키고 흥미를 갖게 해야 한다. 이 분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도록 대학교육이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 기업이나 정부의 이공계 인력 활용도 낮은 것 같다.
"기업은 워낙 세계와 경쟁하다 보니 최고경영자도 이공계 출신이 많다. 그런데 정부는 행정, 입법, 사법 전체에 걸쳐 이공계 출신이 너무 적고 소외되는 것 같다."
- 정권 교체를 앞두고 과기부 부활 등 정부 직제개편 논의가 시작했다. 국과위 조직의 문제도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가.
"정부 조직이 바뀌어도 국과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기부가 새로 만들어지는 차원이 아니다. 정부R&D 예산이 16조원이 넘는데 청까지 합치면 30개 부처가 나눠 쓰고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중복된 부분을 찾아내고 빠진 부분을 채워넣는 역할이다. 국가 과학기술 R&D를 종합 조정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 과기부는 부활해야 하나.
"그건 별개 이슈인 것 같다. 부활해도 R&D를 주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부처가 될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 교과부가 출범한 데 대해 서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초ㆍ중등교육은 지자체로 보내고 대학과 과학기술만 남기는 전제조건 하에서 말이다. 대학 지원의 대부분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고 인력양성도 중요하다. 정부가 초ㆍ중등교육 기능을 놓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국민이 허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국회에서 교과부 장관을 질타한다. 결국 국민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2년 남은 임기기간 중 가장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과학기술 행정만은 좀더 많이 개방됐으면 한다. 개방과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그 얘기를 하고 만들어 가겠다. 많은 분들이 총론에서는 공감하니까 우리가 노력하면 한두 발자국 나아가지 않겠는가."
- 과학기술이 부처 입김에서 멀어질 수 있을까.
"독일ㆍ일본ㆍ미국이 그렇게 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가야지 않겠는가.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지난 40년은 모방과 추격이었다. 이루려는 목표가 뚜렷했고, 공무원들이 목표를 더 잘 잡을 수 있었다. 관 주도의 연구가 가능했다. 이제는 선두대열에 서서 앞이 잘 안 보인다. 이제 뭘 할 지는 연구자가 정해야 한다. 정부는 멀어져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체제가 돼야 한다. 계속 노력하면 10년 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법인통합이 그런 출발이 될 수 있다. 물론 출연연에서는 지금 그대로 둬도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려면 힘과 덩치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확실히 벽을 낮춰야 한다. 지금은 태양광만 해도 7∼8개 연구소가 연구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서로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경쟁할 때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연구소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전세계와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 즐기는 일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농사짓는 것이다. 한 때 안 길러본 작물이 없을 정도다. 주말은 꼬박 농사에 매달리기도 했다. 임기 후에는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 특히 여름날 낮에 땀흘리며 일하다 마시는 막걸리 맛은 최고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직접 담가보기도 했는데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 사먹는 게 훨씬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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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미래경쟁력은 결국 과학기술에서 결정되는 만큼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뛰겠습니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23일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 위원장은 초대 위원장 내정 소식이 전해진 후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각오를 밝혔다. 새로 발족하는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수장으로서 어깨가 무겁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선봉장이 되겠다는 의지가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3일 서울 신문로 에스타워에 위치한 국과위 19층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국과위 출범의 단초가 됐던 정부출연연구기관 개편을 이뤄내기 위한 정부출연연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사흘 전인 10일 아예 열리지 않았고, 인터뷰 다음날인 14일은 열렸지만 출연연법 개정안 상정이 안건에서 빠졌다. 결국 출연연법 개정안은 다음 국회로 넘어가게 됐고 통과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1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때문인 듯 다소 피로해 보였지만 김 위원장은 `융합'과 `개방'을 키워드로 하는 과학기술계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꼭 필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을 인용하며 과학기술의 시스템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대담=이근형 정경과학부 부장
-과학기술 행정조직체계를 완성하는 컨트롤타워로서 국과위가 출범한 지 1년 가까이 됐다. 지난 1년간 많은 변화를 준비하고 추진해왔다. 그 소회를 듣고 싶다.
"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것은 작년 3월28일이었지만 한달 전인 2월28일 울산에서 올라와 3월1일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위원회의 일이 아주 중요한 업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1970년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였다. 2010년에는 2만달러로 늘었다. 40년 사이에 100배로 커진 것이다. 그런데 2006년부터 5년간 계속 2만달러에 머물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오다가 2만달러의 트랩에 걸린 위기의 시기인 것 같다. 다행히 2011년은 2만2000달러라고 하는데, 과거에 비하면 상당한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서 있는데 그에 걸맞게 사회 전반에, 특히 과학기술계에 패러다임 시프트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과거 잘 하던 것만 잘해서는 안 되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변화해야 진짜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국과위 위원장으로서 여러 노력은 기울이는데 과학기술, 특히 R&D는 1∼2년 사이에 혁신적으로 바꾸기 힘들도 바꿔서도 안 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 16조원에 이르는 국가R&D 예산 중 75%를 배분ㆍ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개방'과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는데.
"일을 맡으면서 과연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지 생각했고 그걸 견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의 과학은 융합이라고 한다. 융합을 통해야 새로운 시장과 가치가 만들어지고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융합이라는 말에서 소통의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융합이 과거 정체성을 다 무시하고 새로운 틀에 넣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갖는데 사실 융합은 그게 아니다. 융합의 의미는 여태껏 잘해오던 두 분야가 협력하는 것이라고 본다. 과학기술계가 보다 개방하고 협력했으면 좋겠다. 과기 행정은 비밀이 있을 게 없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과 협력시스템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가시적 성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정부체계도 아직 개방에 흔쾌히 나서지 않고, 과기계에서도 이것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는 소통이 아직 잘 안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
- 정부출연연 개편을 위한 출연연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보는지.
"출연연 체제 개편은 지난 3년간 해온 얘기다. 전문가 논의를 3번이나 거치고 정책연구를 통해 단일법인화라는 결론을 얻었다. 부처 이기주의의 높은 벽을 없애야 한다는 연구현장의 공감이 무엇보다 컸다. 그런데 그것을 무너뜨리고 연구소간 벽도 무너뜨리자고 하니 부처와 마찬가지로 연구소 이기주의가 드러나는 것 같은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해가야 할 것이다. 이 일은 정권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것이고, 출연연은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추진하고 설득해 나가겠다."
- 연구자들은 지식경제부 산하에 존속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대한 형평성 문제와, 법인 해체로 인한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데.
"어떤 제도를 바꾸더라도 빛만 있고 그림자가 없을 수는 없다. 당연히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그런 그림자 부분에 대한 지적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림자가 옅어지고 올바른 일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회 문제에서 총론은 동의했다가 각론에서 입장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있다. 각 연구소가 가장 우려하는 게 정체성 문제다. 동의한다. 정부안은 최대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기계연구원이나 전기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을 없애서 뭘 하겠는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연구소간 문을 열고 덩치를 더 크게 하면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차원이다.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이 27개인데 가장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기술이전이다. 연구실과 시장간에 놓인 계곡을 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각 연구소마다 2∼3명, 많게는 7∼8명이 기술이전팀을 이루고 있는데, 그들을 모아 100명이 하면 훨씬 경쟁력이 커진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전문가들이 그러한 결론을 냈을 것이다.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 정치적 상황이 녹록치 않다.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
"5월에는 국회의원들도 다급한 현안에서 물러나게 되니 좀더 대승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본다."
- 그 방향으로 바뀌면 출연연의 경쟁력이 강화될까.
"어쨌든 출연연은 정부에서 좀 멀어져야 한다. 지금같이 27개의 작은 연구소 체제로는 각 부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정부에서 멀어질 수 없다. 모이고 더 커지면 멀어질 수 있다. 연구과제 기획이나 연구비 배분을 지금 부처에서 하는데 이제 그럴 일이 아니다. 연구자들이 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자들도 신이 날 수 있다. 덩치가 커지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연구소는 정부에서 멀어지고, 과학기술은 정치에서 좀 멀어졌으면 한다. 정권과는 상관없이 가야 한다. 연구소 체제가 정권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정권 바뀌는 것과 자꾸 연관을 짓는데 그것만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학기술자들이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면 누가 과학기술자의 의견을 존중하겠는가."
- IT를 연구하는 ETRI가 융합연구의 핵심임에도 통합에서 제외된 게 문제로 지적되는데.
"과학기술적 접근방법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100점을 찾는 게 아니다. 지금 정부안은 절대 100점이 아니다. 70점 정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80, 90점으로 차츰 높아질 것으로 본다. ETRI를 포함하는 것과 제외하는 것 모두 당위성이 있다. 판단의 몫이다. 지금은 70점 짜리 안이지만 잘 굴러가면 당연히 ETRI도 들어올 것으로 본다. 지금 ETRI가 안 들어온다고 시작도 못하면 그것은 더 뒤로 가는 일이다."
- 그렇다면 50점 짜리 안은 어떤가. 법인은 그대로 두고 국과위 산하로 일원화하는 방안 말이다.
"정부로서는 단일법인화해서 사람이 연구조직간에 자유롭게 왔다갔다하고 함께 모여 일하도록 연구소간 벽을 낮추는 게 가장 큰 포인트다. 그걸 안 하면 한 곳에 모은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처의 벽을 허물어도 연구소간 벽은 그대로 두면 큰 의미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결정은 국회에서 할 것으로 본다."
- 앞으로 연구원들과의 추가적인 소통계획은.
"5월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연구원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는지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게 많은 장을 만들고자 한다.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도록 하고 공청회도 가질 계획이다. 정부안에 대해서는 느낌에 연구원들이 다 아는 것 같다."
- 이번 개편안과 관련, 정부와 연구현장간에 신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연구자들이 정부의 목소리를 못 믿는 것 같다.
"그렇다. 신뢰가 가장 큰 문제다. 과기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과기계 내에서도 과학기술자는 정부를 못 믿고 정부는 출연연을 못 믿는다. 지난 세월동안 쌓인 불신 때문이다. 어느 쪽에선가 해소가 돼야 한다. 우리는 40년 만에 굉장한 나라가 됐고 여기서 한번 더 나아가야 한다. 얼마 전 코닥이 파산했는데, 130년 역사의 코닥이 망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기업이 부도나면 경영자들은 그동안 해오던 일을 똑같이 했는데 왜 망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계도 지난 40년간 잘해왔지만 똑같이 해서는 안 되는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이미 여러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분야에 앞서서 과기계가, 과기계니까 패러다임 변화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본다."
- 출연연 정체성 위기가 맞는 말인 것 같다. 연구자들은 대학으로 이직하고 대학과 출연연의 연구에 구분이 모호하다.
"R&D야말로 평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경쟁이다. 과학자 개개인뿐만 아니라 연구소간에도 경쟁이 있어야 한다. 서로 문을 열어야 경쟁이지 자기 것은 지키려 하면 경쟁이 아니라고 본다. 코닥이란 브랜드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나. 연구소들이 브랜드 얘기를 하는데 지키겠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 경쟁에서 잘 하면 저절로 지켜진다. 좀더 넓은 무대에서 경쟁하고 더 잘하는 연구자와 더 중요한 연구소가 지원을 많이 받는 개방체제가 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 되는 게 산학연 협력인데, 그중 기업은 세계와 경쟁하느라 오픈돼 있다. 기업이 학과 연을 리딩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해 기업이 대학과 연구소에 주는 연구비가 매우 적다. 인력양성과 연구활동 강화를 위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기업이 더 많이 기여했으면 한다."
- 출연연의 연구환경 조성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매우 중요한 이슈다. 연구자 처우 개선은 오히려 두번째 이슈다. 연구자들이 신나게 일하려면 자신이 연구과제를 기획해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소가 정부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연구과제중심(PBS) 제도를 완화하고 있다. 현정부 들어 출연연이 연구과제를 수주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고유연구 사업 비중을 2011년 40%, 올해 50%로 높였다. 2013년은 60%, 2014년은 70%로 올릴 계획이다. 연구비 100원 중 70원은 연구자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쓰라는 것이다."
- 중요한 변화인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나본 출연연 연구자들이 프레젠테이션 잘 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더라.
"그런데 그런 고민은 계속 해야 한다.(웃음) 연구자들은 자신의 과제에 대해 평가하지 말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연구자도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고 알려야 한다."
- 기술이전 활성화도 중요한 과제인데.
"대한민국은 기술이전이 참 안 되는 나라다. KAIST와 미국 MIT를 비교해 보면 특허출원 수는 KAIST가 MIT의 3배다. 그런데 기술이전 수익은 70분의1이다. 양적 성과만 지향한 결과다. 특허가 기술이전돼서 수익으로 돌아오는 게 진짜 성과인데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앞으로 집중적으로 할 일이 기술이전과 성과확산이다. 지금까지 그 분야에 예산투입이 안 됐는데 이제 할 예정이다. 변리사, 변호사, 자금담당 등 전문인력도 늘려야 한다. 출연연이 단일법인화되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게 기술이전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도 중요하다. 이공계 졸업생들에게 기업가 정신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공계대학에 가면 학생들에게 취업과 진학이라는 두가지 길만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더 많은 학생이 졸업 후 모험을 해봤으면 한다. 물론 엄청나게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2∼3번 실패하면 일어서는 학생이 있지 않겠는가. 100세까지 살텐데 젊어서 5∼6번 실패하는 게 어떠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다. 대기업에 취직해 그만둔 후 실패하면 되겠는가. 학생들에게 그런 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교과부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
- 교육현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지.
"특히 대학의 이공계 교육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기계과는 40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제 대학이 과거와 똑같이 해도 되는가 하는 고민이라도 심각하게 해야 할 때다. 공대와 자연대에 입학한 학생이라도 잘 교육시키고 흥미를 갖게 해야 한다. 이 분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도록 대학교육이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 기업이나 정부의 이공계 인력 활용도 낮은 것 같다.
"기업은 워낙 세계와 경쟁하다 보니 최고경영자도 이공계 출신이 많다. 그런데 정부는 행정, 입법, 사법 전체에 걸쳐 이공계 출신이 너무 적고 소외되는 것 같다."
- 정권 교체를 앞두고 과기부 부활 등 정부 직제개편 논의가 시작했다. 국과위 조직의 문제도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가.
"정부 조직이 바뀌어도 국과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기부가 새로 만들어지는 차원이 아니다. 정부R&D 예산이 16조원이 넘는데 청까지 합치면 30개 부처가 나눠 쓰고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중복된 부분을 찾아내고 빠진 부분을 채워넣는 역할이다. 국가 과학기술 R&D를 종합 조정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 과기부는 부활해야 하나.
"그건 별개 이슈인 것 같다. 부활해도 R&D를 주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부처가 될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 교과부가 출범한 데 대해 서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초ㆍ중등교육은 지자체로 보내고 대학과 과학기술만 남기는 전제조건 하에서 말이다. 대학 지원의 대부분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고 인력양성도 중요하다. 정부가 초ㆍ중등교육 기능을 놓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국민이 허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국회에서 교과부 장관을 질타한다. 결국 국민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2년 남은 임기기간 중 가장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과학기술 행정만은 좀더 많이 개방됐으면 한다. 개방과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그 얘기를 하고 만들어 가겠다. 많은 분들이 총론에서는 공감하니까 우리가 노력하면 한두 발자국 나아가지 않겠는가."
- 과학기술이 부처 입김에서 멀어질 수 있을까.
"독일ㆍ일본ㆍ미국이 그렇게 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가야지 않겠는가.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지난 40년은 모방과 추격이었다. 이루려는 목표가 뚜렷했고, 공무원들이 목표를 더 잘 잡을 수 있었다. 관 주도의 연구가 가능했다. 이제는 선두대열에 서서 앞이 잘 안 보인다. 이제 뭘 할 지는 연구자가 정해야 한다. 정부는 멀어져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체제가 돼야 한다. 계속 노력하면 10년 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법인통합이 그런 출발이 될 수 있다. 물론 출연연에서는 지금 그대로 둬도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려면 힘과 덩치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확실히 벽을 낮춰야 한다. 지금은 태양광만 해도 7∼8개 연구소가 연구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서로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경쟁할 때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연구소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전세계와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 즐기는 일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농사짓는 것이다. 한 때 안 길러본 작물이 없을 정도다. 주말은 꼬박 농사에 매달리기도 했다. 임기 후에는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 특히 여름날 낮에 땀흘리며 일하다 마시는 막걸리 맛은 최고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직접 담가보기도 했는데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 사먹는 게 훨씬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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