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남 KAIST 전자전산학과 석좌교수
사극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주인공을 형틀에 묶어 놓고 주리를 트는 끔찍한 장면과 함께 "국법의 존엄함을 아느냐"고 호통치는 장면을 흔히 본다. 사극의 이런 장면에 꽤나 노출되면서 어느새 세뇌가 되었는지, 국법이란 존엄하고 무서운 것이고, 없다면 더 좋겠다란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갖게 된다. 사실 우리 실생활에서도 무슨 무슨 법이나 규제라 하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이는 새로운 법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하든지, 내지 않던 서류를 써내야 하는 등 뭔가 불편함을 주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교통법규에 걸려 벌금이라도 몇 번 물어본 사람이라면 아예 교통법도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필자가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이런 저런 규정과 규제들이 많은데, 2~3년 전 생긴 법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공항 출입국 도장이 찍힌 부분을 복사해 출장보고서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몇 년 전 어느 국회위원이 이상한 제보를 받고 감사를 하면서, 교수들의 해외 출장내역을 조사한다고 해 시작된 이 전례가 어느새 규정화돼 옛날에는 없던 짓을 몇 년 째 하고 있다.
이러던 차에 새 정부가 들어서 `전봇대'로 대변되는 각종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을 때, 뭔지 모르지만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질 것 같아 환영하는 마음이었다. 지난 5월 초 이석연 법제처장이 "기업을 도울 수 있도록 모든 법령을 제로베이스에서 정비하겠다"고 하면서, "우선 폐지를 고려하고, 불가피한 경우 꼭 필요한 만큼만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정비하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무척 반가운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 기본권을 보장받고, 약자나 소수가 다수나 힘있는 자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서양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법의 기본 철학 중에 하나라 한다. 법이 있어서 억울한 사람은 호소할 데가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어 법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법의 덕을 보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법이나 규제를 없앤다고 하면, 내용을 모르더라도 개인의 권한이 확장되는 것 같고, 법을 없애주는 정부가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의 복잡한 경제사회에서 시대흐름에 맞게 마땅한 법과 규제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달한다. 환경오염, 청소년 성추행사건이나 식품 사고의 예에서 보듯이, 사건이 생긴 다음에 마땅히 규제할 법이 없어 천인공노할 파렴치한들을 처벌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지 않는가.
규제는 흔히 사회 문화적 통념으로 통제되지 않거나, 지도층 그룹들이 파장 큰 비상식적 물의를 일으킬 때 만들어지며, 또는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규제나 법은 만들 때도 신중해야 하지만, 그것을 없앨 때도 신중해야 한다. 법이란 일단 생기면 그것이 없어질 때 득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반드시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법 규제는 자꾸 생기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 딱히 법이라 할 수는 없으나 작은 규제가 없어진 예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 유학 시절, 공과대학 도서관을 드나들다 보니 작지 않은 도서관의 도서 출납과 정리를 포함한 모든 관리를 하루 종일 사서 혼자 하는 것이었다.
당시 책을 빌리기 위해 학생증을 제시하고, 도서 대출 기록증을 제시하면, 서너 사람의 직원 중 한 사람이 깊은 서가에 가서 책을 찾아 빌려주던 한국실정과 너무 달라 놀랐다. 궁금하여 "혼자 관리하면 책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는가" 물었더니, 놀랍게도 그 사서는 연간 평균 400권 정도가 분실된다고 답했다. 그 곳 단과대학 도서관의 한 해 예산이 600만달러 정도라고 했는데, 권당 100달러씩만 잡아도 4만달러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감안해 사람을 더 써 도서 통제를 강화하느니, 책 없어지는 것 각오하고 혼자서 일 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하나의 규제를 지키기 위한 비용과 규제를 없앴을 때 드는 비용를 각각 계산해 경영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조직에서 규제나 법을 완화 또는 폐지할 경우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우리가 법이나 규제를 완화 폐지코자 하면, 그 장단점을 따져 보되 규제시행 사례에 대한 통계적 자료를 축적하고, 규제를 지킬 때와 폐지했을 때 비용을 각각 계산해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비용에는 물론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규제를 폐지 완화했을 때 불이익을 받는 쪽에 이해득실에 대한 자료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사극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주인공을 형틀에 묶어 놓고 주리를 트는 끔찍한 장면과 함께 "국법의 존엄함을 아느냐"고 호통치는 장면을 흔히 본다. 사극의 이런 장면에 꽤나 노출되면서 어느새 세뇌가 되었는지, 국법이란 존엄하고 무서운 것이고, 없다면 더 좋겠다란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갖게 된다. 사실 우리 실생활에서도 무슨 무슨 법이나 규제라 하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이는 새로운 법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하든지, 내지 않던 서류를 써내야 하는 등 뭔가 불편함을 주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교통법규에 걸려 벌금이라도 몇 번 물어본 사람이라면 아예 교통법도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필자가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이런 저런 규정과 규제들이 많은데, 2~3년 전 생긴 법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공항 출입국 도장이 찍힌 부분을 복사해 출장보고서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몇 년 전 어느 국회위원이 이상한 제보를 받고 감사를 하면서, 교수들의 해외 출장내역을 조사한다고 해 시작된 이 전례가 어느새 규정화돼 옛날에는 없던 짓을 몇 년 째 하고 있다.
이러던 차에 새 정부가 들어서 `전봇대'로 대변되는 각종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을 때, 뭔지 모르지만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질 것 같아 환영하는 마음이었다. 지난 5월 초 이석연 법제처장이 "기업을 도울 수 있도록 모든 법령을 제로베이스에서 정비하겠다"고 하면서, "우선 폐지를 고려하고, 불가피한 경우 꼭 필요한 만큼만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정비하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무척 반가운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 기본권을 보장받고, 약자나 소수가 다수나 힘있는 자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서양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법의 기본 철학 중에 하나라 한다. 법이 있어서 억울한 사람은 호소할 데가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어 법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법의 덕을 보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법이나 규제를 없앤다고 하면, 내용을 모르더라도 개인의 권한이 확장되는 것 같고, 법을 없애주는 정부가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의 복잡한 경제사회에서 시대흐름에 맞게 마땅한 법과 규제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달한다. 환경오염, 청소년 성추행사건이나 식품 사고의 예에서 보듯이, 사건이 생긴 다음에 마땅히 규제할 법이 없어 천인공노할 파렴치한들을 처벌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지 않는가.
규제는 흔히 사회 문화적 통념으로 통제되지 않거나, 지도층 그룹들이 파장 큰 비상식적 물의를 일으킬 때 만들어지며, 또는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규제나 법은 만들 때도 신중해야 하지만, 그것을 없앨 때도 신중해야 한다. 법이란 일단 생기면 그것이 없어질 때 득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반드시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법 규제는 자꾸 생기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 딱히 법이라 할 수는 없으나 작은 규제가 없어진 예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 유학 시절, 공과대학 도서관을 드나들다 보니 작지 않은 도서관의 도서 출납과 정리를 포함한 모든 관리를 하루 종일 사서 혼자 하는 것이었다.
당시 책을 빌리기 위해 학생증을 제시하고, 도서 대출 기록증을 제시하면, 서너 사람의 직원 중 한 사람이 깊은 서가에 가서 책을 찾아 빌려주던 한국실정과 너무 달라 놀랐다. 궁금하여 "혼자 관리하면 책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는가" 물었더니, 놀랍게도 그 사서는 연간 평균 400권 정도가 분실된다고 답했다. 그 곳 단과대학 도서관의 한 해 예산이 600만달러 정도라고 했는데, 권당 100달러씩만 잡아도 4만달러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감안해 사람을 더 써 도서 통제를 강화하느니, 책 없어지는 것 각오하고 혼자서 일 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하나의 규제를 지키기 위한 비용과 규제를 없앴을 때 드는 비용를 각각 계산해 경영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조직에서 규제나 법을 완화 또는 폐지할 경우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우리가 법이나 규제를 완화 폐지코자 하면, 그 장단점을 따져 보되 규제시행 사례에 대한 통계적 자료를 축적하고, 규제를 지킬 때와 폐지했을 때 비용을 각각 계산해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비용에는 물론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규제를 폐지 완화했을 때 불이익을 받는 쪽에 이해득실에 대한 자료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