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찬 지음/부키/9000원
“제 2 금융권의 경우 설립초기 상당한 자율권이 주어졌다. 시장 여건도 좋았다. 수요 초과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것을 실현할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점이었다. 위로는 인맥이나 학맥등 생산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기 보신에는 필수적인 방어 수단으로 무장한 은행이나 재벌 그룹 출신 인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실무를 담당한 중·하위직에는 겨우 기초적인 지식만 습득한 직원들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서양인들이 말하는 ‘멕시칸 군대’(장교가 졸병보다 많은 군대) 그대로였다...〈생략〉...”
금융기관 임원 출신의 저자는 우선 이 책의 서두에서 한국 금융의 부실화는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라고 솔직히 시인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뒤 한불종합금융과 프랑스 소시에테 제너럴 은행에서 다년간 금융전문가로 활동하며,직접 체험한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해 실패자의 입장에서 담담하면서도 뼈를 깎는 자세로 파헤친다.
흔히 역사란 승자의 역사라고 말한다. 책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출간된 책의 대부분은 승자의, 혹은 승자에 관한 기록이다. 그 안에는 실패가 담겨 있지 않다. 설사 실패가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것은 승리에 이르기까지의 분투와 노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책은 드물게도 철저한 실패한 금융인의 가슴 아픈 자화상이다. 그 것도 실패자 스스로가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자서전적 논픽션이나 다름없다.
이 책은 흡사 한편의 금융 역사소설 같이 느껴진다. 한국 금융산업이 태동기를 거쳐 세계 금융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8·3 사채 동결조치’의 결과로 제 2금융권이 탄생하는 장면, 1970-1980년대의 고도 성장기에 금융기관들이 고속 질주하는 모습, 신설 금융기관들의 양산과정, 자본 시장 개방과 해외투자 자유화 조치등으로 인해 점차 악화돼 가는 금융환경속에서 결국에는 IMF 사태로 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시대 순으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 금융사 입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성만을 놓고 본다면 ‘금융기관 경영 실패 사례집’ 내지는 ‘금융 정책 난맥상에 대한 현장 조사 보고서’라는 편이 나을 성 싶다. 무분별한 경쟁을 일삼던 금융기관들의 행태와 함께 무원칙적하게 집행된 금융정책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가 상당히 말을 아낀다는 느낌. 글을 읽다보면 뭔가 밝히고 싶은 부분이 있는 듯 한데 애써 이를 생략한 흔적이 역력하다. 심지어 기업체 이름이나 사람 이름 조차도 밝힌 경우가 드물다. 아마도 명예훼손과 관련된 법률 조항을 의식해서인 듯 싶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파헤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 특히 화이트 칼라 계층이 많이 소속된 분야의 경우 특별한 사회적 관계가 함의되지 않는 이상, 개인의 내부 고발은 좀체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저자의 용기있는 자성으로 충분히 평가될 만 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성일권기자>
“제 2 금융권의 경우 설립초기 상당한 자율권이 주어졌다. 시장 여건도 좋았다. 수요 초과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것을 실현할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점이었다. 위로는 인맥이나 학맥등 생산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기 보신에는 필수적인 방어 수단으로 무장한 은행이나 재벌 그룹 출신 인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실무를 담당한 중·하위직에는 겨우 기초적인 지식만 습득한 직원들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서양인들이 말하는 ‘멕시칸 군대’(장교가 졸병보다 많은 군대) 그대로였다...〈생략〉...”
금융기관 임원 출신의 저자는 우선 이 책의 서두에서 한국 금융의 부실화는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라고 솔직히 시인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뒤 한불종합금융과 프랑스 소시에테 제너럴 은행에서 다년간 금융전문가로 활동하며,직접 체험한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해 실패자의 입장에서 담담하면서도 뼈를 깎는 자세로 파헤친다.
흔히 역사란 승자의 역사라고 말한다. 책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출간된 책의 대부분은 승자의, 혹은 승자에 관한 기록이다. 그 안에는 실패가 담겨 있지 않다. 설사 실패가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것은 승리에 이르기까지의 분투와 노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책은 드물게도 철저한 실패한 금융인의 가슴 아픈 자화상이다. 그 것도 실패자 스스로가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자서전적 논픽션이나 다름없다.
이 책은 흡사 한편의 금융 역사소설 같이 느껴진다. 한국 금융산업이 태동기를 거쳐 세계 금융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8·3 사채 동결조치’의 결과로 제 2금융권이 탄생하는 장면, 1970-1980년대의 고도 성장기에 금융기관들이 고속 질주하는 모습, 신설 금융기관들의 양산과정, 자본 시장 개방과 해외투자 자유화 조치등으로 인해 점차 악화돼 가는 금융환경속에서 결국에는 IMF 사태로 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시대 순으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 금융사 입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성만을 놓고 본다면 ‘금융기관 경영 실패 사례집’ 내지는 ‘금융 정책 난맥상에 대한 현장 조사 보고서’라는 편이 나을 성 싶다. 무분별한 경쟁을 일삼던 금융기관들의 행태와 함께 무원칙적하게 집행된 금융정책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가 상당히 말을 아낀다는 느낌. 글을 읽다보면 뭔가 밝히고 싶은 부분이 있는 듯 한데 애써 이를 생략한 흔적이 역력하다. 심지어 기업체 이름이나 사람 이름 조차도 밝힌 경우가 드물다. 아마도 명예훼손과 관련된 법률 조항을 의식해서인 듯 싶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파헤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 특히 화이트 칼라 계층이 많이 소속된 분야의 경우 특별한 사회적 관계가 함의되지 않는 이상, 개인의 내부 고발은 좀체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저자의 용기있는 자성으로 충분히 평가될 만 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성일권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