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석종훈입니다.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을철 컴덱스 2000은 지상 최대의 정보산업 잔치답게 2500여개 기업이 저마다 내로라 하는 신제품을 들고 나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냥갑 크기보다 작은 디지털 카메라, 동영상이 구현되는 PDA, 자연스럽게 주인에게 재롱을 피우는 애완견 로봇, 다양한 무선인터넷 장비 등 전시된 제품 하나 하나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20여만 관람객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오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컴덱스는 1979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컴퓨터 제조업체와 유통업자 등 전문가를 위한 전시회로 출발, 20여년이 조금 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영역이 급팽창하고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점차 규모가 확대돼 1990년대 들어서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최대규모의 대중적인 전시회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당시 각 기업은 컴덱스에 전시할 수 있도록 신제품 개발일정을 잡을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996년 이후 한 때 컴덱스에 대해 회의론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컴덱스 관람객 가운데 컴덱스에 볼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진지한 비즈니스의 자리라기보다는 눈요기거리만 잔뜩 나열한 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등장했던 것도 이즈음입니다.
이러한 비판에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기술개발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던 시절입니다. 1년에 한차례 열리는 컴덱스에 발표하려고 신제품이나 신기술 발표를 미뤘다가는 경쟁자에게 뒤지기 십상이었습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신제품을 발표하다 보니, 정작 컴덱스에서는 재탕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 중심의 전시에 불만을 품은 일부 업체는 아예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컴덱스에서는 시시하다는 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선인터넷, PDA, 블루투스, 리눅스, 초절전칩처럼 앞으로 2~3년간 정보통신업계를 뒤흔들 신기술과 신제품이 그야말로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컴덱스를 취재할 때면 하루는 꼬박 프레스센터에 앉아 각 기업이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뒤적입니다. 화려한 현장을 옆에 두고 발표자료를 뒤적인다는 것이 어리석은 짓 같지만 수차례 취재경험이 쌓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요령입니다.
우선 컴덱스 전시장은 워낙 넓습니다. 2500여개 참가업체 부스를 모두 돌아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업체당 10분씩만 돌아보더라도 2만5000분, 400시간 이상 걸린다는 계산입니다. 때문에 첫 날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요 업체의 전시장을 둘러본 뒤 다음날에는 참가기업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훑어봅니다. 그리고 관심이 가는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소개한 기업이 있으면 따로 자료를 챙겨둡니다. 3, 4일째는 이렇게 걸러진 기업의 전시장을 찾아가는 식입니다. 이렇게 해야 정해진 시간 안에 보다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컴덱스 참가기업이 내놓은 보도자료만 해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웬만한 어른 키를 훌쩍 넘을 정도가 됩니다. 예년에는 이런 자료 중에서 추려내면 보통 서류가방에 가득 찰 정도의 자료가 걸러졌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걸러진 자료의 양이 평소의 두 배는 족히 넘었습니다. 제가 자료를 선정하는 기준이 무슨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번 컴덱스에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가질만한 신기술, 신제품, 신생기업이 많이 나타났음을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컴덱스 주최측이 참가자를 상대로 컴덱스를 찾는 이유를 물었더니 물론 비즈니스를 위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라면,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다른 누가 연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경쟁업체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제품개발에 참고할만한 다른 신기술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평소에도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컴덱스에 오면, 단일 공간에서 짧은 시간내에 세계 주요기업의 신기술과 신제품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 경쟁업체, 또 새로 얼굴을 드러낸 신생기업의 제품을 보면서 자신의 현주소를 가늠하고, 새로운 전략을 짤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입니다. 물론 자신의 제품과 기술, 존재를 알리고 협력파트너와 고객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더 보탠다면, 컴덱스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새로 선보인 신기술과 신제품이 몇 년 후면 실용화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앞서가려는 열정을 가진 전세계의 사람이 모여드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년보다 훨씬 두꺼워진 자료뭉치들 들고 전시장을 나오면서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정보통신산업의 미래, 나아가 인류의 미래는 더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컴덱스를 다녀간 국내의 정보통신 관계자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기를 바랍니다.
석종훈 올림. <실리콘밸리뉴스 편집인 alameda@svnews.com>
컴덱스는 1979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컴퓨터 제조업체와 유통업자 등 전문가를 위한 전시회로 출발, 20여년이 조금 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영역이 급팽창하고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점차 규모가 확대돼 1990년대 들어서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최대규모의 대중적인 전시회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당시 각 기업은 컴덱스에 전시할 수 있도록 신제품 개발일정을 잡을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996년 이후 한 때 컴덱스에 대해 회의론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컴덱스 관람객 가운데 컴덱스에 볼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진지한 비즈니스의 자리라기보다는 눈요기거리만 잔뜩 나열한 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등장했던 것도 이즈음입니다.
이러한 비판에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기술개발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던 시절입니다. 1년에 한차례 열리는 컴덱스에 발표하려고 신제품이나 신기술 발표를 미뤘다가는 경쟁자에게 뒤지기 십상이었습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신제품을 발표하다 보니, 정작 컴덱스에서는 재탕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 중심의 전시에 불만을 품은 일부 업체는 아예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컴덱스에서는 시시하다는 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선인터넷, PDA, 블루투스, 리눅스, 초절전칩처럼 앞으로 2~3년간 정보통신업계를 뒤흔들 신기술과 신제품이 그야말로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컴덱스를 취재할 때면 하루는 꼬박 프레스센터에 앉아 각 기업이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뒤적입니다. 화려한 현장을 옆에 두고 발표자료를 뒤적인다는 것이 어리석은 짓 같지만 수차례 취재경험이 쌓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요령입니다.
우선 컴덱스 전시장은 워낙 넓습니다. 2500여개 참가업체 부스를 모두 돌아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업체당 10분씩만 돌아보더라도 2만5000분, 400시간 이상 걸린다는 계산입니다. 때문에 첫 날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요 업체의 전시장을 둘러본 뒤 다음날에는 참가기업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훑어봅니다. 그리고 관심이 가는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소개한 기업이 있으면 따로 자료를 챙겨둡니다. 3, 4일째는 이렇게 걸러진 기업의 전시장을 찾아가는 식입니다. 이렇게 해야 정해진 시간 안에 보다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컴덱스 참가기업이 내놓은 보도자료만 해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웬만한 어른 키를 훌쩍 넘을 정도가 됩니다. 예년에는 이런 자료 중에서 추려내면 보통 서류가방에 가득 찰 정도의 자료가 걸러졌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걸러진 자료의 양이 평소의 두 배는 족히 넘었습니다. 제가 자료를 선정하는 기준이 무슨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번 컴덱스에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가질만한 신기술, 신제품, 신생기업이 많이 나타났음을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컴덱스 주최측이 참가자를 상대로 컴덱스를 찾는 이유를 물었더니 물론 비즈니스를 위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라면,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다른 누가 연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경쟁업체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제품개발에 참고할만한 다른 신기술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평소에도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컴덱스에 오면, 단일 공간에서 짧은 시간내에 세계 주요기업의 신기술과 신제품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 경쟁업체, 또 새로 얼굴을 드러낸 신생기업의 제품을 보면서 자신의 현주소를 가늠하고, 새로운 전략을 짤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입니다. 물론 자신의 제품과 기술, 존재를 알리고 협력파트너와 고객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더 보탠다면, 컴덱스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새로 선보인 신기술과 신제품이 몇 년 후면 실용화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앞서가려는 열정을 가진 전세계의 사람이 모여드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년보다 훨씬 두꺼워진 자료뭉치들 들고 전시장을 나오면서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정보통신산업의 미래, 나아가 인류의 미래는 더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컴덱스를 다녀간 국내의 정보통신 관계자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기를 바랍니다.
석종훈 올림. <실리콘밸리뉴스 편집인 alameda@sv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