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반도체 생태계를 '총성 없는 전쟁'으로 정의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미래 경쟁력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외교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는 지금과 같은 초단기 직접 봉쇄 방식보다는 한국의 제조 역량과 협력해 장기적인 정책으로 중국 반도체를 견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이사장은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세계 반도체 전쟁, 한국은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경제산업 포럼에서 "한국의 주력 산업 중 첨단 부문은 미국으로 그 중심이 옮아져 갈 것 같아 걱정"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한국 정부의 최근 태도를 보면 비전문적 대응으로 민간 기업의 항도가 되기 어렵고 산업자원부의 역량은 크게 위축돼 있다"며 "국내 기업들은 미국 상무부의 눈치를 보고 순응하는 분위기"라고 우려했다.
정 이사장은 미국이 대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세계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점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들의 대중국 수출을 강력히 통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국, 타이완, 네덜란드, 일본 등 분업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반도체 생태계 재편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 산업의 총 부가가치 중 반도체와 그 연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25% 수준이고,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반도체의 비중은 40%에 달한다"며 "우리는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세계 반도체 생태계에 있어서 어떤 위치를 점할 것인지 매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장기 전략을 갖고 미국과 한국의 노하우를 결합해 중국의 기술 발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의 첨단 기술과 대량 생산 능력을 갖고 있는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가 결합한다면 미국의 제조업 회생은 훨씬 빨라질 것"이라며 "반도체 무역과 관련해 미국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하는 것이 경제안보 차원의 범위라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지만 이는 장기 정책이어야 한다. 미 상무부처럼 성급한 초단기 직접 관리 방식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아울러 최근의 산업동향을 복고주의적인 '산업 정책 시대로의 회귀'로 보면서, 미중 분쟁의 경쟁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 이전 세대로 회귀하고, 러시아는 고르바초프 이전으로 돌아가 국토를 회복하려하고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전으로 돌아가 치욕의 100년의 한을 되갚고 세계 초일류 중화민족시대를 열고자 한다"며 "이 복고주의가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한반도와 서태평양 자유항로에 최대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미국식 자유자본주의에 정면 도전하며 서로 충돌위기에 있다"며 "중국은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 '중화민족주의', '시진핑식 중국특색 사회주의', '디지털 공산주의', '과학기술 중국몽'을 4개의 기둥으로 삼아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세계와 정면 충돌하면서 전방위적인 미중 전략 경쟁 시대를 열었다"고 설명했다.장우진기자 jwj17@dt.co.kr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세계 반도체 전쟁, 한국은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경제산업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장우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