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2분기 들어 수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당장 실적에는 긍정적 요인이지만, 이번 특수가 미국의 압박에 따른 중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부장 자급화 차원이라는 점에서는 호재라고 보기는 무리다.
향후 미국의 대 중국 첨단산업 압박이 거세지면 장비 수출이 급감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중국이 자급화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기준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의 대중국 수출액은 2억9100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48% 급증했다. 작년 중국으로의 연간 디스플레이 장비 수출 규모가 지난 2023년 대비 이미 17% 증가한 상황에서 증가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국내 소부장 기업의 장비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은 중국 패널업체들이 약 20조원을 들여 신규 OLED 라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중국 대표 패널 기업인 BOE와 비전옥스는 각각 11조원과 7조원 이상을 들여 8.6세대 OLED 생산 라인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8.6세대 OLED는 스마트폰용인 기존 6세대보다 기판 면적이 넓어 생산 효율이 2배가 넘고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 차세대 시장인 태블릿·노트북·차량용 OLED로 적합하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국내 장비 기업들은 중국에 고사양 장비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선익시스템과 아바코는 지난해 BOE와 협력 관계를 맺고 OLED 증착 장비를 납품 중이며, 올해는 다른 패널업체들과도 수주 확대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LED 증착 장비는 과거 일본 캐논토키가 독점하던 고난도 기술 영역이었으나, 최근에는 국내 장비업체들이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OLED 장비 세대 전환과 중국 내 신규 라인 투자가 맞물리며 한국 장비업체들이 글로벌 수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수출 증가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중국 패널업체들의 기술 내재화와 장비 국산화를 촉진해 한국 디스플레이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어서다. 과거 한국은 LCD 시장에서 세계를 선도했지만, 2020년대 이후 기술 유출과 중국의 대규모 투자에 밀려 주도권을 넘겨준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중국향 수출을 무작정 제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서 OLED 신규 라인 투자를 진행 중인 곳은 삼성디스플레이 뿐이고, LG디스플레이는 8.6세대 OLED 투자를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광저우 LCD 공장 매각 대금으로 OLED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까지 관련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내 패널업체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어, 장비업체들은 중국 수요에 기대지 않고서는 영업을 지속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되면 한국 OLED가 경쟁력을 잃게될 수 있어 정부 차원의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