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대응하기 위해 통상 전문가를 전면 배치했다.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 등 그룹의 핵심 사업이 '트럼프 2.0' 체제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선제적 인사 조치로 총력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SK그룹은 5일 정기 인사에서 북미 대외 업무 컨트롤타워인 SK아메리카스 대관 총괄에 폴 딜레이니(사진) 부사장을 선임했다.
폴 딜레이니 부사장은 미 무역대표부(USTR) 비서실장, 미 상원 재무위원회 국제무역고문 등을 역임하다 지난 7월 SK아메리카스에 합류했다. SK아메리카스는 올 상반기 신설된 조직이다. 딜레이니 부사장은 지경학 이슈의 발 빠른 대응을 위해 이번 인사에서 미주 GR(대관) 총괄로 역할이 확대됐다.
SK하이닉스도 이번 인사에서 대외협력과 글로벌 업무 관련 조직에 외교 통상 전문가를 다수 배치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세계 주요국의 반도체 정책과 급변하는 지정학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연구기관(ARPA_E)에서 기후변화, 신재생 에너지 등 관련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김필석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환경과학기술원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지난 2020년부터 최근까지 미 에너지부의 50여개 프로젝트를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경쟁력 강화에 나설 예정이다.
4대그룹을 포함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관 업무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박순철 디바이스경험(DX)부문 경영지원실 지원팀장(부사장)이 신임 최고재무책임자(CFO), 미주총괄(DSA) 자리는 현재 DSA 담당 임원으로 있는 조상연 부사장이 각각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는 미국 현지 공장을 발빠르게 준공하면서 반도체 보조금을 받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임기 내에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를 이끌 것으로 알려진 비벡 라마스와미는 최근 엑스(X·옛 트위터)에 "(트럼프)정권 취임 전에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속도를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해 우려를 한층 높였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북미지역을 총괄하는 호세 무뇨스 사장을 첫 외국인 대표이사에 임명하고, 미 외교 관료 출신인 성 김 고문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대관을 대폭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은 미 현지서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시장 2위를 달리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축소 또는 폐지할 가능성이 거론돼 영향권에 놓인다. 이와 관련해 무뇨스 사장은 "다양한 규제에 유연하게 대응해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는 등 강력한 전동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외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에 오르면서 조선·방산 분야이 '트럼프 러브콜'에 화답했다. 또 조선업이 중심인 HD현대그룹은 정기선 부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대미 통상 대응력을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