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유럽·NATO 국가인 韓 불리
과도한 금융지원 등 부담 커져
"유럽 수출 전략 재검토 필요"
한국산 자주포가 영국의 차기 자주포 사업(이하 MFP)에서 배제됐다. 업계에서는 'K-방산'에 낀 거품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할 만한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현지 외신 등에 따르면 영국 국방성은 지난 24일(현지시간) MFP의 우선협상 대상으로 독일 크라우스-마파이 베그만(KMW)의 원격 조종 곡사포 155㎜(RCH155) 52 구경 차륜 보병 시스템을 선정했다. RCH155는 차륜형 자주포이며 복서(BOXER) 장갑차 차체를 사용했다.
기동하면서 사격이 가능하며 직접 운용 인원은 2명이다. 향상된 사거리와 정확도, 분장 최대 9발의 높은 발사 속도를 제공하며 전술적 및 작전적 기동성이 강력하게 혼합돼 있다는 평가다.
K9A2로 참여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사실상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영국에서 열린 글로벌 방산 전시회에 참여해 세일즈에 나서고, 영국사무소를 개설할 정도로 해당 사업에 공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탈락이 예정된 일이었다는 반응이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했으나 EU 국가와 여전히 강력한 동맹을 맺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에서 리더십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데임 샤론 네스미스 영국 총참모부 차장은 "RCH155를 영국 육군의 모바일 사격 플랫폼으로 개발하기 위해 독일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는 주요 동맹국인 독일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NATO 내에서 우리의 분명한 헌신과 리더십 역할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NATO 무용론을 제기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가 대두되면서 비(非)유럽·NATO 국가인 한국에는 기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계약을 체결한 폴란드가 과도한 금융지원을 요구하는 점도 한국 방산의 한계를 보여준다. 지난 25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천무 72대 등 약 2조원 규모의 2차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단 이 계약은 각각 올해 6월과 11월까지 당국 간 별도의 금융계약이 체결돼야 효력이 발생된다.
국내 방산업계는 앞서 2022년 7월 폴란드와 초대형 무기 수출 관련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총 124억달러(약 17조원) 규모의 1차 실행계약에 서명했다. 당초 1차 계약으로부터 1년 안에 잔여 물량의 2차 계약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한국 당국의 수출 금융지원이 어려워지며 2차 계약으로의 이행이 지연됐다. 2차 계약 목표 금액은 약 300억달러(약 41조원)로 1차 계약의 2배가 넘는다.
국회가 지난 2월 수출 금융 지원 한도를 늘리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당장 약속된 6월이 다가오면서 금융 실탄 장전까지 곧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폴란드 내에서 한국산 수입이 아닌 국산 무기를 쓰자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당국의 금융지원이 폴란드의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수출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지정학적으로 태생의 한계가 있는 한국 방산이 방산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려면 결국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기술력이 중요하다"며 "금융지원 등 감수해야 할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더욱 긴장해 개발에 몰두하고, 유럽 수출 전략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임주희기자 ju2@dt.co.kr
지난해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글로벌 방산전시회 DSEI에 마련된 한화 부스 중앙에 K9A2 신형 자주포가 전시돼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