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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무한 에너지 `ADD 1호 女연구원`… "무시 안당하려 더 많이 공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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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진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문과 공부하다 수학과 지원… 무작정 지원했다 벌써 35년
선입관·편견 맞서 동료로 인정받으려 부단히 연구
여성과기인 회장 맡아 여성 보폭 확대 노력
[오늘의 DT인] 무한 에너지 `ADD 1호 女연구원`… "무시 안당하려 더 많이 공부했죠"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여성을 처음 뽑는다고 해서 무작정 원서를 넣은 게 벌써 35년이 흘렀네요. 그 덕분에 'ADD 1호 여성연구원'이라는 영예롭고 값진 타이틀도 갖게 됐어요. 총, 포 등 무기에 낯설었던 제가 아들을 키울 때 프라모델을 직접 조립해 주고 놀곤 했는데, 그게 지금은 제 취미가 되고 말았습니다.(웃음)"

주성진(58·사진)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호탕하고 솔직했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선한 에너지는 방전될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바쁜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배터리로 충전하듯 삶의 활력을 얻어가는 느낌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국내 최초의 여성과학기술인 단체인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직을 맡아 한층 바빠졌다. 일과의 대부분을 본업인 ADD에서 기술사업화 업무를 담당하며 국방과학기술의 사업화 확산에 노력하는 가운데 협회에 일이 생기면 시간을 쪼개 여성 과학기술인의 지위 향상과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주 박사의 전공은 수학, 그 중에서도 해석학이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해 공부했는데, 수학의 재미에서 벗어나지 못해 대학 진학 때는 과감히 이과로 바꿔 수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수학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문과에서 이과로 바꿔 대학에 진학했지만, 고등학교 때 배우지 않은 이과 교과목들을 뒤늦게 공부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돌이켜 보면 그 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수험생처럼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수학은 그를 ADD와 인연을 맺게 해줬다. 주 박사는 "수학만 공부하던 여대생이 사실 ADD가 어떤 연구를 하는 연구소인지 알았겠느냐"라며 "친구들이 ADD가 처음으로 여성을 뽑는다고 알려줬고, 제가 전공한 해석학 분야 연구자를 채용한다기에 호기로 원서를 낸 것이 덥석 최종 합격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당시 ADD는 병역특례가 주어지는 연구소로, 졸업을 앞둔 이공계 남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꿈의 직장에 속했다.

ADD에 입사해 보니 주 박사는 78명의 동기 중 유일한 여성 연구자였다. 자연스럽게 'ADD 1호 여성 연구자'가 됐다. 하지만 자주국방 실현을 위한 무기개발에 주력하는 ADD 연구환경은 여성인 그에게 매우 생소했고 낯설어 적응이 쉽지 않았다.

주 박사는 "포가 뭐고 총이 뭔지 구별도 못하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무기에 대한 기본개념 조차 알지 못했다"며 "입사해서 맡은 첫 연구가 포를 해석학으로 모델링하는 것이었는데,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동료들에게 열심히 배워가며 연구에 몰입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연구기관과 달리 남성 연구자들이 많은 ADD 특성상 여성 연구자을 바라보는 선입관과 편견에도 맞서야 했다. 그럴수록 여성이 아닌 동료 연구원으로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여성만이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했다.

[오늘의 DT인] 무한 에너지 `ADD 1호 女연구원`… "무시 안당하려 더 많이 공부했죠"
주 박사는 "처음 사격장에 갔는데 사수들이 팀장한테 '왜 여자를 데리고 왔느냐'고 항의하자, 팀장이 '주성진 연구원은 앞으로도 계속 올 거니까 너희들이 생각을 바꿔라'라는 말에 이제는 여성이 아닌 동료 연구원으로 저를 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울컥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주국방의 기틀을 놓고 국가 국방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긍심과 사명감이 마음 속에 가득 채워지자, 여성 후배를 위해 지금보다 나은 여성친화적인 연구소로 만들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마침 연구 업무를 떠나 연구행정 업무를 맡았던 터라 여성 행정직 직원들과 의기투합해 연구원 내 '여성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는 초대 여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성들이 연구소에서 겪는 불편함과 개선사항 등에 한 목소리를 냈고, 이를 제도나 규정으로 실현하고자 여성위원회 역할을 강화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공공연구기관 중 최초로 ADD에 '모성보호실'을 설치할 수 있었다. 모성보호실과 여성위원회는 다른 연구기관의 벤치마킹 모델이 돼 여성 복지 향상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주 박사는 "덴마크 친구가 있는데, 아이와 함께 연구실로 출근해 동료 연구원들이 다같이 돌봐준 덕분에 경력단절 없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고 소개한 뒤 "여성 연구자들은 출산, 육아 등에 관계없이 자신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가장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장인 그는 지난달 설립 3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지난 30년의 발자취와 성과를 되새기고, 미래 100년의 계획을 담은 비전 선포와 30년사 헌정식 등을 많은 회원들과 자축했다.

대한여성과학기술인협회는 1993년 국내 최초로 여성과학기술인 대표 단체로 설립됐으며, 21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덕특구 내 대덕어린이집, 신성어린이집 건립과 여성과기인 육성·지원 법률 제정 등에 앞장섰고, 대전시와 여성과학기술인 과학탐구교실을 20년동안 지속하며 과학대중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글로벌 활동에도 적극 나서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INWES)에서 아시아 최초 회장을 세 번이나 배출했고, 차세대 국제여성과학기술인 캠프, 국내 거주 외국인 여성과학기술인을 위한 '스마트 시스터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국제협력과 과학외교를 펼치고 있다.

주 박사는 "남은 임기 동안 '함께 하면 함께 클 수 있다'는 메시지를 회원들과 공유하기 위한 교류 활동을 확대하고, 고경력 여성과학기술인협력센터를 새로 만들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보다 가치있고,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갖춰 나가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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