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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자 수감 러 구치소, 스탈린 시절 `피의 숙청` 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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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가 스탈린 시절 '피의 숙청' 본거지로 악명을 떨쳤던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됐다고 31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기자 수감은 러시아 스파이들이 잇따라 검거되고 있는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잔재라고도 볼 수 있는 레포르토보는 1900년대부터 정치적 탄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881년 모스크바 동부에 군사 교도소로 처음 설립돼 주로 단기수들이 수감돼왔으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기점으로 옛 소련 비밀경찰 산하의 수용시설로 탈바꿈했다.

특히 1930년대 들어 이오시프 스탈린이 반대파 축출을 목적으로 실행한 '대숙청'(Great Terror)에 발맞춰 '인민의 적'으로 지목된 이들을 임시 구금하며 고문하는 장소로 쓰였다.

소련군 최고위급에 속했던 바실리 블류헤르조차도 레포르토보에서의 고문으로 1938년 사망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에도 레포르토보는 간첩 혐의자와 정치범 등을 가두는 국가보안위원회(KGB)의 구금 시설로 명성을 이어갔다.

스탈린의 둘째 아들 바실리 스탈린은 부친 사망 직후 새로운 지도부에 의해 여러 혐의가 적용돼 이곳에 임시 수감됐다.

대숙청 시대를 담은 '수용소군도'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1974년 레포르토보를 거쳤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집권 당시 반체제 인사 블라디미르 부콥스키와 나탄 샤란스키 역시 이곳에 머문 바 있다.

베레즈네프 사망 이후에는 다시 그의 사위 유리 추르바노프가 부패 혐의로 이곳서 감옥살이를 하며 역사가 반복됐다.

이번에 체포된 WSJ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처럼 미국 언론인이 수감된 경우도 있었다.

미국 주간지 US뉴스&월드리포트 모스크바 특파원 니콜라스 다닐로프는 1986년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가 20일 만에 미국에 구금된 소련 간첩 혐의자와 맞교환됐다.

이밖에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집권 당시 반체제 인사들,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등이 이곳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레포르토보는 2005년 공식적으로 법무부 관할이 됐지만 연방보안국(FSB)이 사실상의 통제 권한을 갖고 있다.

구치소의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러시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대 200명의 수감자가 수용되며 주로 독방에 가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 수감됐던 한 정치범에 따르면 구치소 복도에는 먼지 쌓인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심문실에는 비밀경찰 설립자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한다.

간첩 또는 반역 혐의를 받는 용의자를 변호해온 예브게니 스미르노프에 따르면 레포르토보의 주특기는 수감자를 완전한 정보 격리 상태에 가두는 데 있다.

스미르노프는 "전화, 방문, 신문 등 모두 금지된다"며 "편지를 보내더라도 한두 달씩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AP에 설명했다.

그는 FSB 수사는 일반적으로 1년에서 1년 6개월가량 이어지는데, 간첩·반역 혐의로 무죄 방면된 경우는 1999년 이후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WSJ에 따르면 게르시코비치 역시 지난 5일 오후 4시 연락이 끊긴 뒤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회사가 고용한 변호사도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체포되기 이전 게르시코비치는 러시아 보안요원들의 미행이나 휴대전화 감시 등을 느꼈고, 누군가 자신을 촬영하고 있다는 점도 감지했다고 WSJ은 전했다.

게르시코비치의 부모는 과거 소련에서 탈출해 미국에 망명, 이후 뉴저지에 정착한 유대교 집안이다. WSJ은 "(게르시코비치의) 부모는 고향을 도망 나왔지만, 그들이 과거 두려워하도록 교육받던 감옥에 미국인 아들이 갇히는 것을 보게 됐다"고 적었다.

WSJ은 냉전 막바지부터 러시아를 취재해온 베테랑 특파원인 모스크바 지국장도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체포 이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는 취재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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