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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원가 공개가 아니라 유류세 개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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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칼럼] 원가 공개가 아니라 유류세 개편해야
산업부가 여전히 기름값 원가 공개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유사의 공장도 가격을 지역·주유소별로 공개하면 주유소의 기름값이 떨어진다는 산업부의 해묵은 주장은 정치인·관료들이 고집하는 국민 기만적 억지다. 대표적인 결합 원가 제품인 휘발유·경유의 원가 공개가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오히려 원가 공개가 자칫 기름값 인상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규제를 철폐하고 민간 중심의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대통령의 국정철학까지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9년에 부결시켰던 원가 공개 방침을 원안 그대로 다시 심의해야 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입장도 난처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상황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특히 휘발유·경유의 공장도 가격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영업비밀이라는 정유사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사실 동네 구멍가게도 원가는 공개하지 않는다. 정유사의 영업비밀은 석유사업법 제38조에 따라 산업부가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공장도 가격 공개가 소비자가 원하는 기름값 인하로 이어진다는 산업부의 주장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정유사의 공장도 가격 공개가 기름값의 상향 동조화를 불러올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공개적으로 밝힌 결론이다. 정유사의 석유제품 수출 가격 협상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사실 정유사가 부당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산업부의 주장도 억지다. 오피넷에 공개된 3월 9일의 휘발유 공장도 가격은 생수보다 싼 리터당 815원이다. 배럴당 82달러(리터당 670원)의 원유 가격을 뺀 나머지인 리터당 145원이 모두 정유사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원유를 대형 유조선으로 운반해서, 정제하고, 첨가제를 넣는 비용도 정유사가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휘발유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에 내다 팔더라도 리터당 790원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주유소까지의 배달비도 정유사가 떠안는다.

정작 휘발유로 엄청난 수익을 챙기는 것은 정유사가 아니다. 리터당 697원의 '유류세'를 챙기는 정부의 몫이 훨씬 더 크다. 휘발유값의 43.8%나 된다. 실제로 정부가 거둬가는 유류세가 매년 30조원이 넘는다. 운송·정제비를 부담해야 하는 정유사와 달리 정부는 유류세 징수에 들여야 하는 비용도 없다. 결국 소비자의 입장에서 휘발유가 비싼 것은 정유사의 폭리가 아니라 정부의 유류세 때문이다.

유류세 조정 때마다 불거지는 논란도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정부가 휘발유의 출고 시점에 정유사로부터 유류세를 징수하는 것이 문제다. 주유소의 저장탱크에 들어있는 휘발유는 이미 유류세를 납부한 것이라는 뜻이다. 산업부가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서 소비자의 오해를 풀어주지 않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비겁한 행정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정부가 유류세를 징수하는 방법을 바꾸면 된다. 현재 정유사의 출고 시점에 부과하는 유류세를 주유소에서 소비자에게 기름을 판매하는 시점에 부과하면 된다. 그러면 정부가 탄력세 제도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주유소는 소비자로부터 국세청을 대신해서 부가가치세를 수납해주고 있다.

이제는 유류세의 세액도 소비자에게 분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유사·주유소의 뒤에 은밀하게 숨어서 기름값을 '묘하게' 만들고 있는 산업부·기재부·국세청의 비겁하고 옹졸한 행정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도 정상화·합리화시켜야 한다.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에서 휘발유보다 배럴당 9달러(리터당 73원)나 더 비싼 경유를 거꾸로 휘발유보다 리터당 42원이나 비싸게 만든 것은 명백한 시장 왜곡이다. 환경과 기후를 위해서 소비를 줄여야 하는 경유를 불합리한 유류세 때문에 더 싸게 공급하고 있는 현실은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기름값 원가 공개 시도는 세계 6위의 정유산업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맹목적인 탈원전에 앞장서서 원전산업을 휘청거리게 만든 것도 산업부였다. 국가기간산업 육성이라는 막중한 책임까지 내던질 정도로 영혼을 잃어버린 산업부의 근본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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